7.3 총파업 앞장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였던 2017년 5월 12일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된다. 문 대통령은 인천공항을 찾아 직접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인천공항 1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넘어 학교, 병원, 공기업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1, 2, 3단계로 추진됐던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제로’의 상징적인 장소인 ‘인천공항’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율은 30% 수준에서 멈췄다. 지난해 말엔 사측이 노조와의 합의를 깨고 경쟁채용을 도입을 표명한데 이어 수준 이하의 처우개선 방안을 내놔 지탄을 받았다.

박대성 인천공항지역지부 지부장은 “조합원들에게 정규직 전환이 오히려 고용불안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박 지부장은 “대통령이 한 말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정규직 전환 과정을 인천공항 노사에게만 맡겨두면 절대 되지 않는다고,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정부는 책임지지 않았고,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히려 더 안 좋은 여론 속에서 싸워야 하는 일만 남게 됐다”라고 토로했다.

인천공항 뿐이 아니다. 많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으로 포장된 불안정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총파업에 나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지난 2년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교육이 이래서 되겠느냐

가장 많은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는 곳은 학교다. 약 38만 명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학비연대)는 7.3 총파업을 앞두고 17개 시도교육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올해 교섭의 핵심 요구 사항은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했던 ‘공정임금제’다. 정규직대비 80% 임금을 쟁취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교섭은 초장부터 삐그덕 거리고 있다.

학교비정규직 연대회의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인 이윤희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 인천지부장은 올해 유독 교섭이 어렵다고 말했다.

“학비연대로서 시작한 집단교섭이 올해로 3년 차입니다. 첫해는 9일간 단식을 했고, 지난해엔 삭발을 했고, 지금은 또 이렇게 길 위에서 사는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싸워야만 조금이라도 얻어지거든요. 그런데 올해 집단교섭은 유독 어렵네요. 교섭 절차 합의도 되지 않아 실질적인 교섭이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0여개의 다양한 직종들을 집단교섭에서 모두 다루기 힘들다고 판단한 연대회의는 집단교섭에서 6개 주요 의제를 다룬 뒤 각 시도교육청에서 구체적 교섭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요구 중이다. 그러나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집단교섭 외에 교육청별 개별 직종교섭을 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 

“최저임금 1만 원, 공정임금제 모두 약자들에게 한 약속이에요. 하지만 그 약속들이 절실한 사람들의 기대는 산산조각 나고 있어요. 특히 저는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요식행위로 전락했던 심의 과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눈앞에서 정규직 전환의 당위성과 간절함을 보여준 선생님들의 얼굴을 기억해요. 무기계약직만이라도 되게 해달라고, 정규직 원하는 거 아니라고 호소하던 선생님들입니다.”

인천 지역 학교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율은 0.5%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17개 시도교육청의 평균 전환율도 10% 내외로 미미하다.

서울 지역은 퇴직금 산정 문제가 주된 쟁점이다. 최은정 학교비정규직노조 강서구지회 지회장은 “퇴직금을 계산하는 평균임금 산정을 교육청이 자의적으로 하고 있다”며 “서울은 방학 때 근무를 못 하는데 퇴직금 정산 평균임금을 9.5개월로 나누지 않고 12개월로 나누어서 계산한다. 200만 원으로 계산돼야 할 평균임금이 150만 원으로 깎여 계산된다”고 지적했다.

최 지회장은 “20년 넘게 일하고 퇴사하는 분들은 3~4천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며 “교육청은 예산 얘기를 하지만 노동자에게 퇴직금은 정당하게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 이 돈으로 살아보십시오

국립대병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고용을 주장하며 이번 총파업에 앞장서고 있다. 전국 14개 국립대병원 중 8개 병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 중이다. 전국 국립대병원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5,000여 명에 이른다. 상시‧지속 업무로 분류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직접 고용된 인원은 없다. 더구나 대표적인 국립대병원인 서울대병원은 자회사 전환을 강하게 추진 중이다.

서울대병원에서 10년간 일한 남순 씨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민들레분회 조합원으로 서울대병원에 민들레분회가 생길 때부터 함께한, 노조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조합원이다. 남 씨는 2009년 25일 간의 파업으로 세탁된 옷 지급과 점심 한 끼를 쟁취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남순 씨와 노조가 10년 간 투쟁하면서도 바꾸지 못한 것이 용역회사 신분과 그로 인한 최저 수준의 임금이다. 200만 원 남짓한 월급을 어제 들어온 사람이나 10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받는다.

서울대병원 비정규 노동자가 직접고용 피켓을 들고 있다.

남 씨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정규직 전환이 늦어질 뿐, 언젠가는 반드시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자회사 전환을 강행하려 하고, 이에 대한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지난 5월 말 취임한 새로운 서울대병원장 역시 이들의 물음에 묵묵부답이다. 남 씨는 자회사는 절대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회사는 또 다른 용역업체잖아요. 서울대병원장하고 똑같은 위치일까요? 먼저 자회사 간 노동자들이 찾아와서 이야기해요. 처음엔 개선되고 나아지는 것 같아도 2, 3년 지나니까 전보다 더 나빠진다고요. 자회사로 들어가면, 10년 싸움이 수포로 돌아가는 겁니다.”

용역업체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다보니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의 피해도 입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에 따르면 1,745,150원을 기본급으로 받아야 하지만 월 1,695,199원 이하의 기본급만 받고 있다. 위험수당과 직무수당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돼 기본급이 삭감된 것이다.

남 씨는 “이명박근혜 때는 공포감만 조성했는데, 문 정부는 아예 법을 바꿔놨다”라며 “대통령부터 최저임금 받고 살아봤으면 좋겠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도 다 적용해서 쥐꼬리만한 돈도 적어지고 하는 것을 직접 느껴봐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자회사 거부하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대량 해고 위기에

6월 10일, 한국도로공사 고덕영업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정규직 전환은커녕 대량 해고 위기에 몰렸다.  한국도로공사는 용역계약이 만료된 노동자들에게 자회사 전적을 강요하고,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하며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일반연맹 3개 노조(민주연합노조/공공연대노조/경남일반노조)와 인천지역노조 소속 요금수납원 조합원들은 물론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 조합원들까지 약 2천여 명의 대량해고가 눈앞에 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이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 2심에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돼 대법원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정규직 전환을 시켜주기 싫은 회사의 꼼수일 것”이라는 입장이다.

박순향 전국민주연합노조 톨케이트본부지부 서산지회장은 자회사로 들어갈 이유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릴 시간도 없다고 말한다.

“1, 2년마다 바지사장들한테 고용을 하소연하며 비굴하게 살아왔어요. 점심시간에 보도블록의 잡초를 맨손으로 뽑아온 조합원도 있고, 매일 사장에게 돌솥으로 밥을 지어 아침을 차려준 조합원도 있어요. 이제 이렇게 못 살겠다는 거예요. 이미 우리는 직접 고용 정규직 전환 대상이고, 법원은 그것을 확인해준 것 뿐이에요.”

한편, 한국도로공사는 요금수납원들이 거부하는 자회사 자리에 6개월짜리 기간제 노동자를 채용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해 만든 자회사에 또 다시 비정규직이 채용돼 일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일자리 만큼은 반드시 해결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지금 공공부문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주체는 대통령이 아닌 노동자들이다. 외주화된 일자리가 만드는 노동자ㆍ시민의 위험을 말하고, 자회사가 ‘기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구조화하는 것’이라고 짚으며 무늬만 정규직이 아닌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껍데기만 남은 공약에 당사자들의 분노도 수위를 넘어섰다. 박순향 지회장은 “7월 3일 총파업 뿐 아니라, 끝까지 싸우는 어떤 투쟁이라도 할 것”이라며 “이 정부의 기만적인 정책을 알리고 정규직을 쟁취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윤희 지부장 역시 “학교 안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는 건 무겁고 신중해야 할 문제지만 그럼에도 나서는 것은 자식세대들의 비정규직 굴레를 끊기 위한 것”이라며 “좋은 일자리, 좋은 학교, 좋은 나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