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본부

지난 21일 아침 09시,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이영자 국장의 승용차를 타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회의실에 도착했습니다. ‘대구지역 여성노동운동의 이해’를 시작으로 해가 질 무렵까지, 이제는 그 흔적조차 희미한 노동운동 현장을 찾아다니며, 아프고 필연적인 노동운동의 역사를 반추해 본 것은 이제 1년차 조합원인 제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

도시락 점심을 먹은 후 걸어서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 대구지방평의회’ 옛터에 도착, 1945년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 결성 과정부터 1950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파괴되기까지의 전국평의회(전평) 역사를 배웠습니다.첫 강의를 통해 1960~1990년대 대구 섬유산업의 구조적인 특성, 중소 영세기업과 대기업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현장 생활, 특히 단순인격적인 통제를 일삼던 중소영세기업들에 비해, 1980년대 대기업에서 만든 기숙사와 산업체 학교는 ‘교육이데올로기와 가족의 성차별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국가와 기업이 공모하여 여성노동자를 통제한 노동통제장치의 일환’이었으며 임금착취의 수단이었습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강요당했던 일방적인 인내와 희생뿐만 아니라, 산업체 조직체계 안에서도 기사 등 비교적 상위에 있는 남성노동자에 의한 언어폭력, 성희롱·성폭력 등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반인권적인 폭력이 계속되어도 감히 대응조차 못하는 노예 같은 삶을 재조명해 볼 수 있었습니다.

ⓒ 대구본부

이어, 대구시 중구에 위치한 ‘자갈마당’ 입구에서 대구여성인권센터 대표 신박진영 외 두 분을 만나 철거 직전의 ‘자갈마당’을 으러볼 수 있었던 것은 여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상담·지원 업무를 하는 제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된 ‘유곽’이 대구 중구청장의 성매매산업 장려 정책에 힘입어 도심에서 100년 동안 버젓이 건물외관을 바꾸어 가며 지속적으로 운영된 ‘여성인권 착취 현장’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자갈마당’쪽 도로에는 ‘청소년출입금지’표시 및 입간판과 현금인출기가 있고, 초등학교 쪽 도로에는 ‘아동보호구역’ 표시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또 정기적인 성병검사를 위한 보건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자갈마당’으로 인해 돈을 버는 산부인과, 세탁소, 화장품점, 미장원, 슈퍼, 드레스제작소, 가구 및 소품 가게, 커피배달점 등 아직 영업을 하는 곳도 보였습니다. 그 지역 주민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자갈마당’에 대해 어떻게 말했을까요?

‘자갈마당’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매개로 한 ‘개인사업자인 동시에 노동자’였다는 인도자의 설명에는 동의도 부인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여성노동운동의 장이 확장되어져야 하고 성평등의식 및 여성폭력예방 교육을 더 활성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울산지역연대 1366지부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울산지부 소속의 다양한 노동현장 맞춤형 ‘찾아가는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예방교육’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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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에서도 1946년 8월 대구 전매국 노동자들이 임금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여 당시 심각했던 노동자의 생활을 폭로했고, 9월 대구·부산 철도노동자의 총파업이 10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과 그 전개 과정 중, 경찰에 의해 십 수 명의 노동자들이 사살 당하면서 학원가의 분노가 폭발했으며, 노동자의 투쟁으로 시작된 10월 항쟁이 시민항쟁으로 전환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1956년 대한방직 집단해고 거부 투쟁에서 1989년 남선물산의 임금인상 파업까지의 역사를 통해, 시대별 노동운동의 양상은 다르나, 현장이 어디든 그 원인과 배경은 거의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자갈마당’현장, ‘1909자갈마당 기억공간’을 뒤로 하고, 대한방직, 제일모직, 한국경전기, 태양어패럴, 남영섬유, 염색공단(남선물산, 태화염공, 대하염공)을 중심으로 대구 섬유사업단지노동운동의 현장들을 둘러보았으나, 인도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정도로 많이 변해 현장감은 떨어졌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상담자인 저는 감정노동자입니다. 24시간 365일 3교대로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피해자를 상담·지원하는 ‘여성긴급전화1366 울산센터(이하 1366)’에서 센터장으로 근무하던 중, 지난 1월 1일자로 저를 포함한 7명이 해고되었습니다. 당시 1366 종사자는 총 15명이었고 노조원은 6명이었는데, 해고자 중 노조원은 4명이었습니다. 6개월째 복직투쟁 중, 지난 6월 13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고, 판정문과 복직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승소의 기쁨은 잠깐, 복직이후의 상황도 순탄하지는 않으로 여겨진 상황에서 자민 참여한 ‘대구지역 여성노동역사 기행’은 제가 다시 힘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같은 날,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되어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날이 되었습니다.

‘대구지역 여성노동역사 기행’을 기획·실행 하신 여성위원회와 대구지역본부,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우리 본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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