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 무죄 탄원 운동 동참을 호소하며 

 

가정을 하나 해보기로 합시다. 당신이 한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람도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합의를 기초로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이 일터에 들이닥쳐 다른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사람의 사진을 들이밀며 강압적인 어조로 ‘이 사람을 아느냐, 이 사람과 잤느냐’고 묻습니다. 그 사진은 다름 아닌 당신이 사랑하는 또는 사랑했던 사람의 사진입니다. 경찰은 당신이 그 사람과 성관계를 가진 것이 죄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당신은 일터에서 경찰에게 붙들려 나옵니다. 

이러한 상황이 현실이라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요. 우선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다짜고짜 경찰이 일터에 찾아와 사생활을 물으며 죄를 운운하니 말입니다. 당황스러움은 이내 두려움으로 변할 것입니다. 범죄자처럼 붙들려 나와 홀로 경찰의 다그침을 감내하며 대꾸 한 마디 할 용기조차 내지 못해 고개 숙인 스스로의 모습에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서 적은 내용이 가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점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2017년 대한민국 육군은 성소수자 군인을 조직적으로 유인·색출하여 총 23명의 군인을 쥐 잡듯 수사했습니다. 군형법 92조의6 위반. 그것이 그들의 죄목이었습니다.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라도 동성 간에 이루어졌다면 처벌하도록 하는 그 죄의 이름은 ‘군형법상 추행죄’입니다. A가 B를 추행하고 B가 A를 추행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고 피해자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의 공소장을 근거로 기소된 이들은 군사법원에서 모두 유죄를 받았습니다(민간인이 된 당사자 한 사람은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검찰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피해자들이 상고하여 재판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고, 헌법재판소에도 10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재판은 더디게 진행되고 그 사이 피해자들의 고통은 배가 되고 있습니다. 현역 군인들은 지휘관의 감시 하에 업무 전반에 있어 불이익을 받고 있고, 전역한 피해자들은 진행 중인 재판과 전과로 인해 쉽게 직장을 구하거나 일상을 영위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동료나 친구의 외면과 무관심은 더욱 커지고 일방적인 사회적 비난은 잦아들 줄 모릅니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 이 사건에 대하여 민주노총의 역할을 고민해봅니다. 민주노총은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합입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놓은 법과 제도가 무엇이라 규정하고 발음하는지를 묻거나 따지지 않고, 평등과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투쟁하여 기꺼이 그것을 쟁취하는 조직입니다. 

성소수자 군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피해자 모두는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다가 합의 하에 이루어진 성관계를 이유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받은 처벌이었습니다. 터무니없는 처벌로 인하여 피해자들은 성범죄자와 같은 대우를 받고 계속적인 감시와 승진 누락, 급여 삭감, 부당전환배치 등의 불이익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역 이후에도 낙인처럼 남은 전과 때문에 제대로 이직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경한 풍경이 아닙니다. 노동조합 조직·활동을 이유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내쫓기고, 노동개악 반대 투쟁을 이유로 우리 동지들이 구속되는 것과 결과적으로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다르다고 이야기할 동지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합의 하에 이뤄진 관계라도, 그것이 영외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항문성교’라는 표현이 주는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행위가 아닌 존재로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언제인가 저는 피해 당사자와 인권활동가들이 함께 하는 간담회에 참석하여 어느 피해 당사자가 군을 그만두고 직장에 취업하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평소 노동조합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색출 사건을 경험하며 언제든 부당한 일이 생기면 함께 싸워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그것이 노동조합이라고 믿는다는 이유와 함께 말입니다. 

사랑하는 민주노총 100만 조합원 동지 여러분. 저는 성소수자 조합원으로서 그분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아가서는 그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노동조합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거창한 일을 바라지 않습니다. 군형법 92조의6에 따라 부당하게 기소되어 군사법원 1심과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피해 당사자를 위한 대법원 무죄 탄원 운동에 동참해주십시오. 그리고 연대와 지지의 뜻을 각자 계신 자리에서 힘껏 표시하고 주장해주십시오. 모두 민주노총이 가장 잘 하는 일입니다. 

민주노총이 지금껏 한국 사회에 보여준 바와 같이, 상식 밖의 차별과 혐오로 점철된 법과 제도를 변화시키는 경험은 모든 시민의 용기가 되어 또 다른 변화를 일구어내는 원동력이 됩니다. 민주노총 동지 여러분. 노동자를 옥죄는 악법 철폐 투쟁의 대오를 강고히 유지하고 있는 민주노총답게 군형법 92조의6 폐지와 대법원 무죄 판결을 위한 탄원 운동에 동참해주십시오. 

언젠가 그분을 만났을 때 노동조합이 당신과 함께 투쟁하고 있음을 당당히 말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연대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꼭 승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동지들이 손을 보태어주십시오.  

 

★ 10만인 탄원운동 동참하기

http://bitly.kr/cFM4MY

 

★ 색출 피해 당사자의 호소문 보기 

http://mhrk.org/news/?no=6467

 

★ 대법원 소송 비용 모금 동참하기

https://www.socialfunch.org/queerna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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