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부산대병원 미화원·시설 비정규직 노농자들 현장 밀착 취재

# 온갖 감염에 노출된 ‘병동의 세계’

8일 오후 2시 부산대병원 본관은 북적였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한쪽에는 지부장·분회장 단식농성장이 12일째를 알리고 있었다. 125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는 부산대병원 비정규직지부 허경순 지부장을 따라나섰다.

어느 곳이 가장 힘드냐고 묻는 질문에 허 지부장은 “병동에서 근무하는 미화원이 가장 힘들 거예요”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복도와 건물을 청소하는 미화원이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또 한 분의 조합원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매독에 감염된 청소 노동자는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이며 일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지난 5월 주삿바늘에 찔려 매독에 감염된 조합원이라고 소개했다. “용역에서는 '감염됐나보다' 정도로 취급하고, 그냥 주사 한 두 대만 놔주고 일을 시킨다”고 허 지부장이 말을 꺼냈다. 노동자들은 쉬고 싶어도 못 쉰다는 것이다. “치료 주사가 독해 얼굴이 빨래판처럼 돼서 하루 쉬게 조치해서 그나마 쉬게 했다”고 혀를 찼다. 매독은 잠복 기간이 긴 병이다. 단계별 면역력을 회복시켜야 하기 때문에 치료 기간이 길다.

“쉬는 자리가 따로 없어요”라고 조합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계단이나 화장실, 복도 등에서 대충 식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쓰레기 처리하면서 밥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허 지부장은 지적했다.

그 조합원을 따라 나섰다. ‘PS CE-2-W1’이라는 명패로 된 문이 보였다. 그 문을 열자 컴컴한 내부가 드러났다. 간이 탈의실로 이용되는 이 공간은 1평 남짓 전깃불도 없었다. 문을 열자 바닥은 병원 의료약품 포장박스 여러 장이 바닥에 엇갈려 깔려 있었다. 벽은 시멘트로 노출돼 있고 옷걸이가 막대에 걸린 채 옷이 몇 벌 힘 없이 걸려 있었다.

청소 노동자는 병원 공조장치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좁은 공간을 휴게와 탈의 용도로 이용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불도 없는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밥도 먹는다고 했다. “명색이 부산을 대표하는 병원이 이래서 되겠냐”라며 “이곳 라인의 노동자들은 다 이렇게 깜깜한 탈의실을 이용하고 있다”고 허 지부장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 좁은 탈의실에는 환풍시설 덕트 같은 통로가 절반 이상의 공간을 차지한 채 상하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쿠르릉 쾅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청소하는 병동은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소변 지린내가 많이 나요”라며 조합원은 고충을 털어놨다. 이 조합원은 9월까지 매독 감염을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주삿바늘을 쓰고 나면 뚜껑을 덮고 버려야 하는데, 간호사들이 그럴 시간조차 없는 게 문제죠”라고 허 지부장은 안타까워했다.

“병원은 적자 타령을 하지만, 땅도 보러 다니고 주변에 건물을 많이 짓고 있는데 절대 적자가 아니”라면서 “월급 많이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용역에 나갈 돈을 우리 보고 쓰라는 것인데, 병원은 직접고용 하게 되면 요구하는 것이 많아진다고 안 들어주고 있다”라며 허 지부장은 답답해했다.

# 병원 시설을 제어하는 ‘지하의 세계’

환자와 보호자로 시끌벅적한 본관 안쪽 무대 벽면에는 ‘따뜻한 치유, 나누는 사랑, 더하는 행복’이란 병원 측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번에는 손상량 분회장을 따라 시설 노동자들이 일하는 일명 ‘지하의 세계’로 나섰다.

시설 노동자들이 A동 지하 기계실에서 배관 공사를 하고 있다. 안전장치와 환기 등 환경 개선이 필요한 공간이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A동 기계실로 들어서자 철계단이 나왔다. 무거운 걸음으로 내려서자 ‘웅~’하는 기계음이 귀를 압박했다. 각종 배관 시설들로 즐비한 좁은 통로를 따라가자 배관교체 공사 현장이 나왔다.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적혀 있는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땀을 연신 훔쳐내며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시 통로를 나오자 한구석에 조그마한 ‘휴게실’이 나왔다. 휴게공간이라고 하기에는 그냥 작은 방이었다. “병원에서는 이곳에서 쉬라고 하는데 모기가 많고 쉴 곳이 못 된다”고 손 분회장이 털어놨다. 방 옆으로는 폐수로 흘러나온 물이 꽤 고여있었는데, 모기 서식처로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비교적 배관이 적은 이곳 벽으로는 몇 개의 옷장들이 놓여있었다. 말이 옷장이지 가정에서 이사할 때 내놓은 폐기용 옷장처럼 보였다. “병원에서 사주는 것이 없어요. 밖에서 주워와 대충 보수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옆으로 조금 이동하자 얼룩진 아크릴판으로 대충 가려진 샤워부스가 나왔다. 시멘트 바닥이 파이고, 회색 벽이 그대로 노출된 채 배관에 연결돼 달린 샤워 꼭지만이 샤워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시설 노동자들이 지하 구석에 만든 샤워실이다. 샤워기만이 그 용도를 알 수 있는 하는 공간이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수술실에 온도 조절, 가스 공급을 해주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이곳 지하에서의 노동이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도 못한 채 일을 하고 있다”고 손 분회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환경’ 업종에서 일하는 지하세계를 가봤다. 지하 5층으로 내려서자 악취부터 풍겨 나왔다. 암모니아 냄새 같기도 하고, 무슨 약품 냄새 같기도 한 꺼림칙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병원의 온갖 오물들이 내려와 부분 정수처리 돼 나가는 곳이다.

병원 오수 처리 시설장엔 약품과 오물 등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별도의 환기 시설은 없다. 노동자들은 잦은 고장때문에 임시 방편으로 배관에 망을 씌워 필터처럼 관리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이곳에서는 5명이 일을 하고 있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악취는 도를 더했다. 내려온 오물들이 망에 걸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더 안쪽으로는 마스크를 쓰고 가야지, 암모니아 가스가 독해서 못 들어간다”면서 “이곳에서 일한 동료들이 암에 많이 걸려 죽기도 한다”면서 그들의 나이가 62세 전후라고 손 분회장은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번에는 응급 병동이 있는 지하실로 향했다. 사무실 한 칸으로 된 전기실에서 노동자들이 모여 일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샤워실이나 휴게실이 따로 없이 이곳에서 24시간을 지내는 형편이라고 했다. 1일 단식을 함께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한 젊은 조합원이 인사를 했다.

“가장 열악하고 월급도 낮은 비정규직들이기에 지부장이 이번엔 꼭 정리하고 가야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2년 만에 모든 걸 다 해보고 가는 분회장이 될 것 같아요” 12일째 단식 중임에도 손 분회장의 걸음은 기운에 차 있었다.

단식 중인 손상량 시설분회장이 직접 시설 안내를 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A동 지하 기계실의 몸자보를 한 시설 노동자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기술이 좋은 시설 노동자들은 필요한 물품을 손수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시설 노동자들의 지하 사무실이다. 몸자보를 한 노동자들은 하루 릴레이 동조 단식을 이어 가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단식 중인 손상량 시설분회장이 직접 시설 안내를 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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