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거리에서, 고공에서, 단식농성장에서 보내는 노동자들 이야기

1. ‘정규직 맞다’ 11번째 법원판결 받고도 한 달 넘게 곡기 끊은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하루에 거의 몇 십 번 씩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괜찮습니다’라고 해요. 단식하는 사람들 다 마찬가지겠죠. 배고프고, 민감해져요. 여름엔 더위도 힘들고, 시내 한가운데라 소음 때문에 잠을 잘 못자고, 매연도 있고. 말을 많이 하면 어지럽고…”

8월 29일 오후,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33일 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 김수억 씨가 이야기한다. 그 사이 체중이 20Kg 가까이 줄었다.

김수억 씨는 2003년 경기도 화성에 있는 기아자동차 하청업체에 입사하여 소렌토, 모하비, K3, K5 등의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을 조립 순서대로 배열하여 컨베이어에 공급하는 일을 했다. 하루 10시간 씩 2교대로 근무했고, 연월차를 쓰거나 주말 특근에 안 나가면 해고였다. 장갑을 일주일에 한두 켤레 밖에 주지 않아 정규직이 쓰레기통에 버린 장갑을 주워서 쓰거나 모아다가 빨아 썼다. 관리자가 사람대접 하지 않는 것은 예사였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야 그나마 근로기준법이 지켜졌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건 원청(기아자동차)이 진짜 사장이었다는 거예요. 우리의 근로시간이며 특근을 할지 안할지, 생산량까지 모든 게 원청의 결정과 계획에 의해 이루어져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이 실제 고용 당사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다.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 법원은 11번이나 현대·기아차의 모든 사내하청 공정이 불법파견이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결을 했다. 

법대로 하라는 게 한 달 넘게 곡기를 끊을 이유입니까?

“현대차·기아차는 약 2만 여 명에 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불법으로 사용해 왔어요. 근데 노동자 입장을 대변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15년 전인 2004년 2005년 불법파견 판정을 해놓고 마땅히 해야 할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는 명령을 지금가지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도 판결을 따르지 않고 있어요. 처벌 받지 않기 때문이죠.”

수억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당시에 ‘10대 재벌의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면 좋은 일자리 40만 개를 만들 수 있다’면서 재벌의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약속했었기에 기대가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TF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노동부 장관이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해 법원 판결 기준에 따라 직접고용 명령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유감 표명도 했었다.

“파리바게트, 만도헬라, 아사히글라스도 1심 판결하기 전에 전부 고용노동부가 직접고용 명령을 했어요. 그런데 왜 현대기아차그룹에 대해서는 직접고용 명령을 안 내리냐고요? 소위 5대 재벌 10대 재벌은 법원 판결이 아무리 많이 나도 시정명령 할 수 없다는 건가요? 재벌 편들기 하는 거 아닌가요?”

수억 씨의 숨이 가빠진다. 단식 30일 즈음 되면서 숨이 짧아지고 긴 호흡을 하지 못하는 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법원 판결대로 고용노동부가 현대차·기아차 불법파견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하라는 것,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 그것이 수억 씨가 30일 넘는 단식농성을 하는 이유다. 고용노동부는 ‘장관 면담은 불가, 시정명령은 검토 중’이라는 말만 하고 있다. 

수억 씨는 여름휴가 때 부모님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추석 때는 꼭 뵈러 가겠다고 해서 부모님은 추석만 기다리고 계신다.

“추석 전에 해결이 돼서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요. 미음이라도 먹으면서 복식도 하고 싶고요.”

2. 원래 정규직이었던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

8월 27일 오후, 승용차와 버스 화물차가 쌩쌩 달리는 경부고속도로에 위치한 경기도 성남시 서울톨게이트. 10미터 높이 케노피에서 바구니를 매단 밧줄이 내려온다. 밑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재빠르게 음식이 담긴 통을 바구니에 담자 케노피 위에서 밧줄을 당겨 올린다. 

“배고프지? 많이 먹어.” “고추장 있어?” “기다려봐.”

잠시 후 고추장이 바구니에 담겨 케노피로 올라간다. 밧줄을 내리고 올리는 이들은 한국도로공사(사장 이강래) 톨게이트에서 요금수납 업무를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20년 가까이 해온 여성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지난 6월, 한국도로공사가 만든 자회사 ‘(주)한국도로공사서비스’로 전적하지 않고 한국도로공사 직접고용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전국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354개 영업소 톨게이트 요금소에서 근무하던 6천 5백 명 중에 같은 이유로 해고를 당해 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는 현재 케노피 고공에 있는 25명을 포함해 총 1,500명이다.

관리자, 고객들의 갑질, 성희롱…

케노피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김미이 씨는 20대 중반이던 2003년에 어린 딸 둘을 키우기 위해 구인광고를 보고 한국도로공사 서안성 톨게이트 요금수납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미이 씨는 요금소에서 통행권 발행·회수와 통행료 수납업무, 하이패스 관련 업무, 입구에서 과적단속과 적재불량 단속, 미납차량 적발 업무 등을 5년 간 했다. 그 뒤에는 사무실에서 고객 민원 전와 방문고객 응대 등 톨게이트에서 하는 거의 모든 업무를 16년 동안 해왔다. 그 외 요금소와 요금소 지붕 청소, 눈 치우기, 영업소 광장 청소, 화장실 청소, 식사준비와 설거지도 했다. 심지어는 영업소 소장이 하는 텃밭 가꾸기며 개와 오리 키우는 일까지 했다. 입사하고 채 1년이 안 된 어느 날, 출근을 하니 관리자가 탁자 위에 있는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 

“업체로 넘어가는 거였더라고요. 그때는 다들 비정규직 개념도 없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을 했어요. 같은 데서 일 하는 거고, 월급도 잘 나오겠지 싶어서.”

사장이나 간부 회식 자리가 있으면 수납노동자들에게 운전을 요구하거나 회식 자리에 오게 해 성희롱을 하는 일도 있었다. 용역업체가 바뀔 때면 전 사장이 다음 사장에게 해고 대상자를 찍어주기 때문에 부당한 일이 있어도 수납노동자들은 참고 일해야 했다. 또, 고객들의 갑질과 횡포, 성희롱도 견디어야 했다. 

“여기는 1년 지나나 10년 다니나 최저임금으로 월급이 다 똑같아요. 업무에 필요한 고무줄 지우개 칼도 안 사줘서 본인이 사서 필통 들고 다녔어요. 도로공사에서 유니폼 피복비가 1년에 두 번씩 나오는데, 그것도 안사주고 퇴사자가 반납한 옷을 물려 입었어요. 그 돈이 다 누구 주머니로 들어갔을까요? 돈이나 통행권 주면서 손 잡거나 쌍욕 하는 건 일도 아니에요. 바지 벗고 오는 사람들도 여러 번 봤어요. 전화번호 줄 때까지 안 간다고 차 안 빼는 사람도 있고…”

대법원도 정규직 인정, 고용불안 없이 일하고 싶을 뿐

도로공사 요금수납노동자들은 2013년 2월에 자신들이 도로공사 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을 확인해달라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다. 이들이 소송을 제기하자 도로공사는 영업소에 있던 도로공사 직원들의 자리를 빼고 공간을 분리했다. 이즈음 그 단체 카톡방도 없어졌다. 2015년 1월 1심 승소에 이어 2017년 2월에는 2심 승소 결과가 나왔다.

2년 6개월만인 지난 8월 29일, 대법원에서는 한국도로공사가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업무수행에 관해 직접 지시를 하였으며, 수납노동자들의 업무처리 과정에 관여하여 관리·감독 하였다고 판결했다. 요금수납노동자들이 한국도로공사의 정규직이라는 판결이다.

케노피 위에서 두 달 넘게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도명화 씨(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 지부장)는 대법원 판결 이후 해고된 노동자 1,500명이 모두 함께 직접고용으로 돌아가는 것을 결의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추석 전까지 전체 해고노동자가 정부와 도로공사를 압박하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안 되면 여기서 추석을 보내야죠. 길어지면 겨울을 날수도 있다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시험 봐서 한국도로공사에 들어온 일반직 직원과 똑같은 처우를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임금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그저 우리가 일하던 이 자리에서 고용불안 없이 일하면서 거기에 맞는 임금과 처우를 해달라는 거예요. 우리도 가족과 같이 명절 보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추석 때 고공농성과 노숙농성을 해야 하는 이유를 시민 여러분께서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3. 영남대병원 해고 13년, 살기 위해 70m 옥상에 올라간 두 간호사

8월 19일, 70m 높이 대구 영남대의료원 응급의료센터 건물 위에서 박문진 씨와 송영숙 씨가 손을 흔든다. 고공농성 50일 집회가 있는 날, 바람이 세게 불고 빗방울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박문진 씨와 송영숙 씨는 지난 두 달 동안 태풍 ‘다나스’를 견디고, ‘대프리카’ 폭염을 견디며 고공농성을 해왔다. 이들은 노조 기획탄압 진상조사, 책임자처벌 및 재발방지, 노동조합 원상회복, 해고자 원직복직, 영남학원 민주화,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한참 더울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더라고요. 밤에는 열대야 때문에 뒤척이고. 너무 더울 때는 강아지가 혓바닥 내밀고 축 늘어지는 것처럼 있었어요.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었죠.”

한여름 고공농성장 온도계는 오전 10시~11시만 되도 49.9도가 찍히면서 까맣게 되었으니 낮에는 55도가 족히 넘지 않았겠냐고 한다. 요즘은 일교차가 심해 점퍼를 입었다 벗었다 한다. 더위도 힘들었지만, 바람과 30~40cm 높이 밖에 안 되는 난간은 생명을 위협하는 강력한 요인이다. 대소변은 강아지 배변패드를 이용하며 두 달을 보냈다.

이 긴 투쟁의 시작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남대의료원 사측은 창조컨설팅 심종두 노무사와 단체교섭 수임 계약을 했다. 그리고 고의적으로 교섭을 파행시켜 노사 갈등과 노조 파업을 유도하고, 조합원 950명이던 노조를 70여 명의 소수 노조로 만드는 등 기획된 노조파괴와 노조탄압을 했다.

“정말 잔인하게 조합원들을 노조 탈퇴 시켰어요. 부서이동 같은 인사권을 갖고 흔드는 거죠. 나이트 끝나고 나면 탈의실에서 수간호사나 팀장이 와서 탈퇴서에 사인할 때까지 안 보내줘요.”  (박문진)

“간호사 가운 꼭 입고 싶어요”

두 사람은 영남대의료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2007년 해고돼 13년 째 원직복직 투쟁을 해오다가 지난 7월 1일 결국 고공농성을 시작하게 된다.

“정년이 2년 남았어요. 올라오기 전에 고공에 안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매일 기도 했어요. 반드시 복직해서 간호사 가운 입고 병원을 다니고 싶어요.” (박문진)

2012년 국정감사와 청문회를 통해 창조컨설팅이 영남대의료원과 유성기업 등 14개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168개 기업에 노조파괴 컨설팅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창조컨설팅 대표 심종두 씨 등은 최근 노조파괴(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를 한 죄로 대법원에서 1년 2개월 징역 확정 판결을 받았다. 영남대의료원에서 발생했던 일련의 과정 역시 사측과 창조컨설팅의 노조탄압 기획에 의한 것이었음이 드러났지만, 현재까지도 영남대의료원 사측은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복직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술은 마셨어도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이야기한다. 또, 영남대의료원이 그동안 늘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실망할 것도 없고, 그저 묵묵히 버틸 거라고 했다. 고공농성 장기화에 대비해 겨울 파카도 준비해서 올라왔다.

가족들에게는 차마 고공농성을 하러 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박문진 씨는 연로한 어머니께 캄보디아 봉사활동을 간다고 얘기하고, 송영숙 씨는 병원에서 농성하게 되어 당분간 집에 못 온다는 얘기를 하고 왔다. 바람이 선선해지니 가족들이 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큰 변화가 없는 한 두 사람은 70미터 고공에서 추석 보름달을 보게 될 것이다.

“잘못은 노조파괴 노무사 고용해서 노조 탄압한 사측이 했는데, 피해는 노동조합만 보고 있잖아요. 노조활동의 끝이 해고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시민들께서 단순히 고공농성을 하는구나가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관심 가져 주시면 큰 힘이 될 거 같아요.”  (송영숙)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환한 보름달처럼 풍성한 한가위 같은 세상이 올 것입니다. 시민여러분, 몸과 마음 아프지 말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의 건강권을 위한 이 투쟁에 관심 가져 주세요.” (박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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