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법 대책위, 5일 기자회견 열고 헌법소원 청구

민주노총과 반올림,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 등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알권리와 건강권을 침해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헌"이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국민의 알권리와 건강권 침해하는 산업기술보호법, 위헌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과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가 5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요구,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8월 2일 국내산업기술을 보호한다는 취지를 내세워 산업기술보호법(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된 법안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없고, 산업기술을 포함하는 정보는 취득목적과 달리 사용하고 공개할 경우 처벌받는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개정된 법안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해 필수적인 알권리를 고려하지 않는 법"이라며 "산업기술보호법 위헌을 확인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라고 말했다.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법률로써 해야 하고(포괄위임금지원칙) 그 법률은 집행당국의 자의적인 법 집행이 가능하지 않도록 명확해야 하며(명확성원칙) 과잉금지원칙(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핵심기술' 지정 방식이 매우 추상적이고 광범위해 '관련성'에 대한 판단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비공개 정보의 대상 범위를 예측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또 국가핵심기술 보호라는 목적은 정당할 수 있어도 기술 보호와 무관한 정보까지 비공개될 수 있어 적합한 수단이라 보기 어렵다.

임자운 반올림 변호사에 따르면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은 청구인들의 알권리와 생명·건강권,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은 시민단체 반올림과 삼성 직업병 피해가족, 과거 삼성 반도체 작업환경 자료 정보공개 청구인 및 대리인, 반도체 공장 안전보건 문제연구자와 지역주민 등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20대 국회는 사회가 무관심하고 의원들의 무능함을 틈타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산업기술보호법을 통과시키는 폭거를 자행했다"라며 "이 법안을 많고 많은 법안의 하나로 치부하며 제대로 관심을 갖지 않고 통과시킨 데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부위원장은 "개정된 법안은 기업의 영업비밀을 더 알기 어렵게 만든다. 기업이 어떤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산재가 발생할 경우 자료를 받는 것조차 국가비밀로 규정해버렸다. 수은중독을 비롯해 반도체 산재 피해노동자, 가습기 참사 등 노동현장에서 발생한 많은 죽음은 기업이 죽이고 국가가 방치해서 생긴 일"이라며 "민주노총은 노동안전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법을 철폐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한 삼성전자LCD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 씨는 서면을 통해 "산재 신청하고 알려달라 해도 영업비밀이라고 주지 않았다"라며 "이제라도 위험을 알려야 다른 사람들이 안전해질텐데, 그렇게 하면 처벌받는다더라. 잘못된 법을 바로 잡아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지난달 20일 한국산업보건학회, 대한건설보건학회,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한국환경보건학회는 "산업기술보호법 시행을 보류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한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또 김종대 정의당 의원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등 국회의원 15명 또한 "사업장의 위험성에 관한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알권리가 '국가핵심기술과의 관련성' 한 마디로 가볍게 제압당할 수 없다"라며 "이 법이 올바르게 다시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연서명을 발표한 바 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은 유해물질에 대한 알권리와 사업장의 유해환경에 대해 공론화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이라며 "국민들의 알권리와 건강권 실현을 위해 산업기술보호법을 제대로 바로 잡아달라"고 호소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반올림에 제보된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는 683명으로, 이 가운데 197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산재를 인정받은 사람은 64명에 불과하다.

민주노총과 반올림,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 등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터안전 위협하는 산업기술보호법은 위헌이라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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