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회, 영결식 전 6일 합의문 공증 거부 파행

부산 양산 솥발산열사묘역 하관식. ⓒ 노동과세계 변백선

마침내 문중원 열사 장례가 치러졌다. 지난해 11월 28일, 열사가 한국마사회의 갑질과 부정부패, 비리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02일 만이었다.

9일 오전 7시, 문중원 열사가 안치됐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대책위, 노동시민사회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식이 열렸다. 

박승렬 NCCK 목사는 발인식 조사에서 "문중원 열사여, 당신의 죽음 헛되지 않았다. 새 역사를 만든 첫걸음이 됐다"라며 "당신의 동료들은 마사회를 청산하기 위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죽어서 사랑을 남긴 당신을 기억하겠다"라고 말했다. 발인에는 유족과 노동시민사회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열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열사의 시신은 운구차로 옮겨져 열사가 생전 일했던 부산경남경마공원으로 향했다. 본래는 열사를 모신 운구차를 앞세워 유족과 상임장례위원장 등이 열사가 지냈던 경마공원 기숙사를 경유하고 오후 2시 본관 옆에서 영결식을 치른 뒤 양산 솥발산 공원묘원에서 하관식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마사회는 열사가 가는 마지막 길마저 파렴치한 짓으로 막았다.

이날은 6일 합의 사항에 대한 공증이 이뤄지는 날이기도 했다. 석병수 공공운수노조 부산본부장과 김홍기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본부장이 오후 12시 법무법인 부산에서 만나 공증을 할 예정이었다. 합의에 이른 6일이 금요일 저녁이었고, 공증은 장례를 치르는 장소에서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오후 12시10분경 공증 장소에 도착한 김홍기 본부장은 태도를 돌변해 대책위가 7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낸 입장문의 '시민대책위를 마사회 적폐청산 위원회로 전환하기로 했다'라는 내용을 문제 삼아 공증을 거부했다. 

김 본부장은 "공공운수노조 홈페이지에 게시된 입장문을 내리고, 내리는 것이 어려우면 앞으로 부산에서 투쟁하지 않겠다는 평화선언을 약속하라"고 요구하며 대화를 녹취하겠다고 협박했다. 석병수 본부장이 합의 이행을 요구했으나 김홍기 본부장은 끝까지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경남경마공원에 모인 노동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노조 조합원들은 오후 1시30분 경부터 장례식을 중단하고 마사회의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본관 진입, 이후 항의 농성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본관에 있던 마사회 경비원들이 불법채증을 하다 일부 조합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본관 앞에서 열린 긴급집회에서 진기영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황망하기 그지없다"라는 심경을 전했다. 

진 수석부위원장은 "오늘 이 상황은 그간 왜 7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이곳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목숨을 잃었는지 증명하는 단적인 상황"이라며 "합의서는 장례를 치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그런데 합의 4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열사가 가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험한 꼴을 보인다"고 마사회를 강력 비판했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대체 기가 막혀 마사회 욕을 하는 것도 아깝다"라며 "마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평화선언을 하면,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더는 죽지 않는 것인지 묻고 싶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부위원장은 "유족과 함께 기숙사를 둘러보니 감옥 같다는 느낌뿐이었다. 지독한 권력을 가진 마사회 정규직들이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옥죄고 무력화하려는 모습이 가득했다"라면서 "우리는 결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이대로 문중원 열사를 보낼 수 없다.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힘차게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싸울 것이다"라고 강하게 마사회를 비난했다.

그 사이 양측 교섭대표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김종국 한국마사회 경마본부장이 전화 통화에서 '마사회는 6일의 모든 합의가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과 '합의안 공증을 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본부와 부산경남경마본부가 수일 내 마무리할 것'을 재차 합의했다. 김종국 경마본부장은 김홍기 본부장에게 공증 이행을 재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위는 유족과 논의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한국마사회는 영결식 당일 벌인 이 만행에 사과하고, 3월 6일 모든 합의를 그대로 지켜라"라고 경고했다. 이어 "오늘 열사를 보내지만 100일간 전심전력했던 투쟁 그대로 나아갈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영결식은 본래 예정됐던 부산경남경마공원 옆 주차장에서 오후 5시가 돼서야 치러졌다. 영결식은 진기영 수석부위원장이 조시를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공익제보자가 보내온 조시. 문중원 열사 동지들이 지혜를 모아 장례자료집에 게재했다. ⓒ 문중원 열사대책위

"고 문중원 조교사님 잘 가시오. 오늘만큼은 당신이 마땅히 가져야 할 그 이름 '조교사'님이라 부르고 싶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조시는 한국마사회 공익제보자가 보내왔다. 열사의 죽음이 너무 안타깝고 죄스러워 파면을 각오하고 내부폭로를 한 마사회 정규직 노동자다.

영결식은 유족과 노동시민사회 관계자, 민주노총 조합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사 및 호사 낭독, 진혼무, 헌화 및 분향 등으로 치러졌다. 고광용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지부 지부장의 문중원 열사 약력보고 뒤 각계각층의 조사가 잇따랐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당신의 가족과 동료와 살아남은 우리는 마사회의 썩은 적폐를 끝장내고 열사의 염원을 이루어 내는 길에 두 손 굳게 잡고 걸어가겠다"라고 전했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또한 "열사의 죽음을 추모하며 맞잡았던 손 놓지 않겠다. 한국마사회를 바꿔내는 그 순간까지 열사의 뜻을 가슴에 새기고 늘 부산경남경마공원에 시선을 고정하겠다"고 말했다.

문중원 열사 부친 문군옥 씨는 "유가족은 남편과 아들을 잃은 슬픔의 눈물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의 눈물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다"라며 "억울하게 죽은 중원이가 한을 풀고 장례를 치러 경쟁도 비리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별이 돼 편히 쉴 수 있게 해줘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양산 솥발산 공원묘원으로 이동해 1시간여 하관식이 치러졌다. 

유족들은 열사의 무덤 위에 흙을 덮고 절을 올리며 눈물로 문중원 열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장인어른 오준식 씨는 허토를 하는 내내 "중원아, 좋은 데 가라, 좋은 데 가라"고 되뇌었다.

 

부산 양산 솥발산열사묘역 하관식. ⓒ 노동과세계 변백선

 

부산 양산 솥발산열사묘역 하관식. ⓒ 노동과세계 변백선

 

ⓒ 노동과세계 변백선

 

부산 양산 솥발산열사묘역 하관식. ⓒ 노동과세계 변백선 

 

부산 양산 솥발산열사묘역 하관식. ⓒ 노동과세계 변백선

 

마사회의 합의 파기 소식이 알려지자 영결식 참여한 노동자, 시민사회단체들이 분노하며 항의행동을 진행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마사회의 합의 파기 소식이 알려지자 영결식 참여한 노동자, 시민사회단체들이 분노하며 항의행동을 진행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부산경마공원 영결식. 2시에 예정이었던 영결식은 마사회의 합의 파기로 인한 항의가 진행되면서 5시 경에 거행됐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부산경마공원 영결식. 2시에 예정이었던 영결식은 마사회의 합의 파기로 인한 항의가 진행되면서 5시 경에 거행됐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부산경마공원 앞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부산경마공원 영결식. ⓒ 노동과세계 변백선

 

부산경마공원 영결식. 문중원 열사 아버지 문군옥 씨가 유족발언을 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문중원 열사를 추모하는 진혼무가 진행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부산경마공원 영결식. ⓒ 노동과세계 변백선

 

문중원 열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제.. ⓒ 노동과세계 변백선

 

문중원 열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제.. ⓒ 노동과세계 변백선

 

문중원 열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제.. ⓒ 노동과세계 변백선

 

문중원 열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제.. ⓒ 노동과세계 변백선

 

문중원 열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제.. ⓒ 노동과세계 변백선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