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방송 전문서비스> 울산 건설플랜트노조 노동자 가족대책위

<font color=#009933>노가다 마누라도 사람이고, 좀 못배웠다 뿐인데 무시하고, 남편들이 현장에서 정직원 외 출입금지 간판이 달린 식당이나 휴게실이나 화장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까만 얼굴로 차타고 돌아오면서 아이들 앞에 섰을때, 그래도 내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해야지 하면서 다음날 출근을 하겠지만, 우리한테 한마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겪었을 모멸감 있잖아요. 정직원과 나는 노가다라고. 또 그사람들이 알게모르게 무시하는 말들을 많이 했을까.

이런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고, 저는 이런 파업이 남편들이 모멸감 속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들인데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꿈이구요..."</font>


울산 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이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연일 보수언론들은 노조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다못한 노동자들의 가족들이 직접 손발을 걷어붙이고 남편들과 함께 했다.

24일 노동방송국 '우문숙의 시사광장'에 출연한 울산 건설플랜트노조 가족대책위 회원들은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뒀던 사연들과 맺힌 응어리를 쏟아냈다.

[사진1]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씻게 해 달라.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쉬게 해 달라. 그리고 제대로 된 밥을 먹게 해 달라. 이렇게 인간으로써 요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또다시 전원 연행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울산건설플랜트노조 가족대책위 회원들과 한은정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정책차장님 나와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font>

가족일동 - 안녕하세요.

<font color=#0033cc>우문숙 - 우선 소개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font>

채영주 - 안녕하세요. 건설플랜트 조합원 가족. 세살박이 아들과 남편과 같이 상경하게 된 최영주라고 합니다.

김 규 - 안녕하세요. 저는 울산건설플랜트노동조합 가족대책위 회장을 맡고 있구요. 현재 남편이 아까 보고 왔는데,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단식농성 15일째를 맞고 있는 아내입니다.

<font color=#0033cc>우인순 - 같은 가족이구요. 저희 아저씨와 제 동생하고 서울 경찰서에 수감중인 아내이구요. 저는 우인순 입니다. 남편께서 수감중이신가요?</font>

우인순 - 동생과 남편이 어제 연행됐습니다.

원미영 - 안녕하세요. 저는 울산건설플랜트 가족대책위원회 원미영 이구요. 저희 남편은 현재 건설플랜트 노조에서 부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습니다.

한은정 - 안녕하세요. 저는 건설산업연맹 정책차장 한은정입니다. 어제부터 올라온 가족대책위 분들과 일정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어제는 잠을 어디서 주무셨는지요?</font>

한은정 - 연맹 산하에 건설운송노조 조직국장님이 얼마전에 결혼하셨는데요. 저희가 신혼집에서 신세를 졌습니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가족대책위에서 네 분 나오셨습니다. 어제는 채영주씨가 남편의 작업복을 빨아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씀 해 주셨는데요. 그동안 남편들을 보면서 정말 힘들었던 점들. 우선 들어봤으면 합니다.</font>

채영주 - 처음에는 저희 신랑들이 그런 작업에서 일을 하는지... 일을 하는 것이 험하다고는 했지만 휴게시설이라거나 화장실 같은 것.. 이런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그런것은 당연히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 가족대책위라고 825명이 연행되고 나서 저희 가족들이 신랑 소식이 궁금해서 한둘이 나오다 보니까 가족대책위라는 것이 생겼거든요.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지 모르다가 사진보고 남편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들어보고 저희 남편들이 그렇게 살았는지 알았는데, 그동안 한번도 그런 말씀 하신 적이 없어요. 그냥 그런거 하면. 그런것을 말을 하면 저희들이 마음아파 할까봐 말을 아무도 안했는데. 저는 그것을 보고나서 저희 신랑께 자꾸 잔소리 했다는 것이 제일 마음이 아파요. 저에게 임금도 체불이 많이 되고, 작업현장도 그런데 저에게 큰소리 못치고, 잔소리를 제가 했다는게 신랑에게 너무너무 미안하구요. 파업 끝나고 나면 좀 잘해줄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font color=#0033cc>우문숙 - 아마도 울산 플랜트 노동자들이 파업 하는것을 처음 가족들이 겪으셨을텐데요. 매일 매일 일당으로 받기 때문에 생계에 지장이 있을텐데요.</font>

김 규 - 처음에는 저희 남편같은 경우는 중공업 하청에서 일을 하다가 그쪽으로 옮긴지 얼마 안되고, 하청에서 도급하는 형태가 아니라 4대보험도 되고 시간제로 위치가 바뀌면서 이제 무언가 안정적으로 일을 하나 싶어 조금 기쁘기도 하고.. 중공업 하청으로 일할때 일이 있으면 한달 내내 일요일도 없이 일을 하고, 없으면 한달 내내 쉬고 하면. 이런게 서로가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고 해도. 자고 일어나면 일을 할때는, 일요일에 "아빠 나랑 놀러가자" 이랬는데, 아빠가 계속 쉬고 있으면 학교갈때 "아빠, 오늘도 회사 안갔나" 이런 말을 하면 아빠도 애 보기에 미안하고, 저도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그런 생활을 계속 하다가 조금 안정됐는데, 파업하지 말고, 들어간지가 얼마 안됐는데 돈벌어야 하지 않나. 이러니까, 우리는 이때까지 정말 지긋지긋하게 살았고, 그래서 이번에 다른곳도 다 단체협약 해서 조건이 많이 개선되니까 우리가 한 한달만 하면 다른곳도 된다. 걱정하지 말고 한달이면 된다. 그러더라구요. 한달 정도면 괜찮겠지. 이런생각 하면서 기다려보지.. 이랬는데 그게 지금 두달로 가고.. 저도 그냥 어느날 부턴가 차 위에서 마이크 잡고 그래도 한달을 보냈는데 타워까지 올라가고 이러니까 되게 당황스럽고 힘들고.. 같이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런 마음까지 들 정도로 힘들었는데, 가족대책위 가족분들 만나면서 서로가 너무 힘이 되고, 요즘 안나오면 궁금해서 못견디겠다 이런 얘기도 하고. 아침에 저기가서 얼굴보고 오니까 마음도 아프고. 다들 울지마라고 다짐을 해놓고, 저 빼고 다 울더라구요. 제가 울면 다 울것 같아서.... 계속 아저씨들이 우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어요. 마음이 아직도 너무 아파요. 빨리 해결되서 단축이 됐으면 좋겠어요.

<font color=#0033cc>우문숙 - 김규 회장님께서 웃으면서 말씀은 하셨지만 고공농성 하는 남편의 얼굴을 봤을때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울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생각이 듭니다. 우인숙님은 남편과 동생이 함께 연행되셨다는데요.</font>

우인순 - 우선은 저 개인적으로 여기에 같이 아저씨에게 동참하게 된 이유부터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요. 저희 아저씨가 지금 53세 입니다. 여기서 일한지 30년이 넘은 사람이구요.

<font color=#0033cc>우문숙 -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font>

우인순 - 이기춘 입니다. 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자기가 잘못해서라기 보다 다른 이유로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거든요. 신혼초에 저희 아저씨가 일하는데 위에서 물체가 떨어져서 허리를 다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산재보험도 안되고 의료보험카드도 없는 상태였고. 그래서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계속 시간이 많이 지나니까 일당도 못받죠 치료도 해야돼죠 그런 과정에서 저희 친정엄마가 똥물을 됫병에 걸러가지고 오셔서 그것을 큰 양푼에 절반쯤 따라놓고, 회충약을 하나 갖다놓더라구요. 그것을 다 마시고 바로 회충약을 먹었었어요.

그런일이 있었구요. 사람들이 말하는 "느그들 IMF 오기 이전에 돈 많이 벌어 먹었다 아이가, 그때는 암말 안하더니 왜 지금에 와서 이러노" 이렇게 말씀들 많이 하더라구요. 저희 아저씨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사람이 여기서 돈 많이 준다고 옮겨가고 저기서 돈 많이 준다고 옮겨가노. 사나이의 세계는 그게 아이다" 그 말들이 너무 속상해예. 사람들이 말하는 무식한 노가다. 뭐 느거 배부른 뭐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들이 저희 아저씨가 외쳤던 사나이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적어도 내 아저씨가 살아온 날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에 제가 여기에 같이 나오게 된 이유이구요.

4월 28일날... 시청에.. 항의방문을 갔는데.. 거기에서 식사같은 것을 가지고 온 사람들 까지도 강제로 차에 싣고 갔는데요. 저는 제 아저씨가 간 것은 그래도 제가 이것을 보고 같이 동참하는 입장에서는 가슴이 덜 아픈데, 제 남동생이 같이 갔으니까. 저는 제 올케에게 너무 미안한거예요. 왜냐하면 없는 집에 시집와서 남편이 저렇게 파출소마다 끌려가서 있는데... 올케한테 어떻게 얘기해줘야 하나.. 이런 마음이 들어서 너무 많이 슬퍼서 '아내라는 이름으로 당신께 바치는 글' 이라고 게시판에 보면 있거든요. 그때 그 글을 올리게 됐구요.

어제 같은 경우에는 저희 아저씨들이 아침에 주먹밥을 먹고, 또 점심에 주먹밥을 먹었는데, 그 주먹밥 두 덩어리를 먹고.... 말 한마디 못하고 모두 다...... 강제로 다 끌려갔습니다...... 제 가슴이.. 너무.. 밥먹은 것들이 가슴을 치더라구요..... 그래도 어떻합니까.. 저희들이 마냥 슬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고, 우리들이 밥이라도 먹고 힘을 내야만이 진실된 그 마음들을 여러사람들께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용기를 내서 같이 동참하게 됐습니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이기춘(53세) 노동자의 아내입니다. 우인숙 가족께서 절절한 말씀 해 주셨습니다. 따뜻한 밥 한끼를 못먹이고 주먹밥을 먹여 차가운 경찰서 유치장에 보낸 아내의 마음이 읽혀집니다. 가족대책위 부위원장님 원미영씨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font>

원미영 - 처음에는 저희 아빠가 하신다 그랬는데 가족들께는 미안하고 마음아픈 소린데, 제가 같이 안살겠다는 마음을 먹을 정도로 반대를 하고 말렸었거든요. 워낙 성격이 한가지를 하면 해야한다는 고지식하고 곧은 분이예요. 결국 제가 졌는데, 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저도 동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일단 애들도 버리고. 내가 내 자신이 마음으로 이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대책위에 나간다는 그 자체가 용납이 안되더라구요. 그런데 아빠 모습 보면서 이게 결코 나쁜일이 아니고 누군가 해야하는 일이라면. 그리고 우리 신랑이 해야된다면 내가 미미하나마 힘이라도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서.. 지금은 그냥 담담하게 우리 아빠가 어떤일을 당해도 웃으면서 하시라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고 싶어요.

<font color=#0033cc>우문숙 - 지난주 언론에서 보면 울산에서 노동자대회 했었죠. 울산플랜트노동자들을 폭도다. 이렇게 매도하는것을 보셨을텐데 어떤마음이 드셨었어요?</font>

김규- 저희들이 울산에 있으면서 울산 언론들은 완전히 꽉 막혀서 사실을 보도한 적이 한번도 없고, 심지어는 없던 일도 꾸며서, 조작해서 언론에 퍼트리고 이런일도 겪고 하면서 언론에 대한 불신이 너무 많아서 처음에는 서울에서 취재를 오고 해도 응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날 현장에 있었는데, 실제 물대포를 두 대 갖다놓고 쏘는데, 처음에는 흙탕물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화학냄새같은 것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퐁퐁 같은.. 온몸에 거품이 묻더라구요. 제가 차를 타고 나오면서 보니까 경찰들이 페인트통을 들고 왔다갔다 하는 모습도 보고, 곳곳에 돌을 이렇게 놓고, 돌 던져서 부상당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었는데, 실제로는 그러면서 그날 시위를 마치고. 워낙 교통을 다 막아버리고 한곳만 틔어놓고 검문검색을 한 스무명 서른명이 해서 차가 한 두 시간정도 밀려서 조합원들이 차를 놓고 왔는데, 거기에다가 차 주소확인을 해서 소환장을 다 날려보냈거든요.

그렇게 경찰들이 폭력적으로 진압을 했고, 집회장소가 허가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폭력시위에 참가했다. 차를 조회해서 소환장을 날리는 경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하고 항상 우리를 폭도로만 내밀고. 그리고 우리들의 요구가 얼마나 소박하고 순박하고 정말 가장 기본적인 요구인데, 그것은 무시하고 계속 폭력성만 부각하는 것에 대해서 언론에 대해서 정말 불신감도 많이 생기고 어떻게 이렇게..... 이건 어쩌면 SK에서 언론에 돈을 너무 많이 퍼다준건 아닌가. 이런 느낌이 들 정도로. 지역 언론이든 전국 방송도 그렇게 나오니까, 전두환 시대때 보도지침 이런걸 내리는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자꾸만 이렇게 보도가 되니 아, 정부가 개입하는구나, 경찰이 개입하는구나. 이렇게 눈 뜨게 되는 계기가 된것 같아요. 어제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그렇게 내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언론이 바로서지 않으면 정말 이문제 해결할 수 없고, 앞으로 국민들에게 등 돌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똑바라 보도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혹시 어제 울산에서 올라올때 연행될 것을 예상했었습니까?</font>

우인순 - 전혀 못했어요. 합법적으로 서울에서 집회하고, 집회신고가 났었다 해서요. 법은 있잖아요. 약한자를 위해서 있는게 법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게 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하루였거든요. 지금 우리 나라의 건설을 이끌어 가는 모든 아저씨들의 귀중한 손이 묶여 있으면, 이 아저씨들이 일구어 낸 모든것들이 눈에 환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다 이 사람들이 이루어낸 곳에서 생활을 하는데, 이사람들 말을 들을 생각도 안하고 다 잡아가 버리면 이 대한민국의 건설은 누가 이끌어 갈 것이며, 자제분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이 되는지 그게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제발 이 귀중한 손들을 하루빨리 놓아주셔서 자기가 하던곳에 가서 열심히 기능을 발휘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font color=#0033cc>우문숙 - 한달 임금이 사실 많다. 이것을 정규직처럼 여러가지를 요구하는 것은 과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font>

채영주 - 제가 몇번 인터뷰를 받으면서 한달 평균임금이 얼마냐 물어볼 때가 제일 곤란해요. 그게 많이 들어올 때가 있고 안들어올 때가 있으니까. 특히 파업기간에 우리 노가다 에서는 제일 호황이라 해야되나. 제일 일도 많고 벌이가 제일 많을 때거든요. 그래서 저희들이 그동안 겨울에 일이 없다가 봄만을 위해서 기다렸는데, 봄에 파업을 두달 넘어 석달을 하니까 생활고가 더 절박한게 사실이구요.

플랜트 직업상 사무직처럼 매일매일 일이 있는 것이 아니고, 비가 온다던가 아니면 회사에 자재가 없다던가. 그러면 아침에 모르고 일하러 갔다가 자재부족해서 못한다 그러면 다시 와야돼요. 그러면 일하러 간 것으로 쳐 주지 않거든요. 겨울이 되면 또 일이 별로 없고. 항상 일이 불특정 한게 거기서 일을 나누다 보면 보통사람들이 말하는 임금은 한달이나 빤짝할때 임금. 그런데 그것을 석달 넉달로 나누다 보면 최소한 모자라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생계를 유지하기가 집에서 제가 살림을 하기가 정말정말 곤란할때가 많아요.

<font color=#0033cc>우문숙 - 산재를 당해도 치료가 어렵고, 작업환경도 열악하기 때문에 건강문제도 노동자들에게 있을거 같은데요.</font>

원미영 - 저희 남편은 용접을 하거든요. 눈이 원래 많이 충혈되는 편인데 용접 하시는 분들은 다들 그럴 것 같아요. 용접안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개인적으로 다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안경을 봐도 선글라스 처럼 얇더라구요. 그걸 끼고하다 보니까 저녁에 보면 눈이 벌개서 밤에 잘때 얼음을 비닐에 넣어서 놓고 자고. 몇번 갈아주고. 그렇습니다. 유독물질 이런것도 많기 때문에 위험하고 다치고. 우리 남편도 40미터에서 한번 떨어졌대요. 사람들이 다 죽는다 했는데 1,20분 만에 깨어났다고. 이런 얘기도 해요. 가끔 시간이 많이 지나면 얘기를 해 줘요.

옆에서 그런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물탱크 공사를 하면 가스를 다 빼고 해야하는데 바쁠때는 확인을 안하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구요. 하루는 아침에 출근했는데 두세명이 가스를 마셔서 질식을 해서 사람들이 업고 병원으로 달렸는데 누구는 죽었다 라던가, 폭발사고. 저는 일반적으로 병 이런걸 떠나서요. 산재사고가 죽음으로 이어지니까 그게 너무 두렵고 안타깝더라구요. 내 남편이 그런걸 겪는 것을 보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불안감 있잖아요. 너무 끔찍해요.

<font color=#0033cc>우문숙 - 노동자들이 집단교섭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죠.</font>

한은정 - 울산건설플랜트노조는 노조명칭에도 나타나듯 지역업종 노조거든요. 이미 개별기업을 뛰어넘는 노동자들로 조직이 되어있구요. 따라서 개별기업의 교섭방식이 의미가 없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플랜트 노동자들은 임금이나 노동시간이나 이런 노동조건이 개별 기업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이나 기능에 따라 차이가 나거든요. 용접이 얼마 배관이 얼마 이런식이지 어느 회사나 현장에 따라 임금차이가 나는것이 아니거든요.

저희는 현실에 맞게, 그리고 현실을 반영한 교섭방식을 요구를 하는 것이구요. 사측이 이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 개별교섭을 주장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저희같이 교섭상대가 72개 업체가 넘거든요. 72개 업체 개별로 해라. 그러면 노조는 70명 이상의 조합원들이 교섭에 매달려서 일년 내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공사가 보통 7,8개월 진행이 되는데 공사가 끝나면 그 현장에는 조합원이 없어서 교섭을 한참 하다가 우리는 더이상 교섭의무가 없어진다. 이런것을 노리는 것이다 이렇게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울산건설플랜트노조가 작년 1월에 생기고 나서 올해 3월에 파업에 들어갔는데, 작년 내내 이 과정을 반복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집단교섭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주요회사가 SK에 대해서 인데요.</font>

한은정 - SK가 주요 발주 원청사구요. 그 아래 72개 하청이 있고, 저희가 지금 하청에 직접고용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72개 업체와 교섭을 요구하고 있는데, 하청업체는 그렇게 말을 합니다. 사실 교섭을 하고싶어 하는 업체도 있거든요. 그런데 교섭을 해서 도장을 찍으면 SK에서 일을 못한다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응할 수 없다고 저희에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플랜트노조가 울산 외에 다른곳도 있습니까?</font>

한은정 - 여수산업단지, 포항, 그리고 전남동부, 광양지역에 있습니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다른지역은 파업이라던가 집단교섭을 한 경험이 있는지요?</font>

한은정 - 파업을 한 경험이 있구요. 노조들은 처음부터 집단교섭이 아무런 문제없이 이루어 졌습니다. 마찰이 없었던 이유가 이미 개별기업의 의미가 없는 것이거든요. 지역에 있는 업체일 뿐이지 기업에 따라서 달라지는 현상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업체들도 원합니다. 언제 우리가 노조 하나하나 다 교섭을 하나. 업체도 원하고 업체들도 동일한 조건에서 임금이 체결되기 때문에 아무런 마찰없이 집단교섭, 통일교섭 방식이 이뤄져 왔습니다.

하청 72개 업체중 여수나 포항, 광양에서 이미 집단교섭을 응하고 도장을 찍은 업체가 다수 속해 있습니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울산플랜트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font>

한은정 - 연맹으로서도 당황스러운데요. 대표적인 것이 노조가 파업을 하겠다고 찬반투표를 하자 그 다음날 체포영장이 날아온다던가 구속영장이 떨어진다던가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구속자가 28명이 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탄압이 심하고 비상식적인 일이죠. 850명이 집단으로 연행되고 700명이 집단으로 연행되고 평화적인 집회에서 이런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 저희가 보기에는 울산이라는 지역이 산업단지에서는 가장 큰 단지거든요. 거기에서 더 이상 노조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 있고, 특히 비정규직 노조가 확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극명하게 보이구요.

주요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여수에 7천명, 포항 천오백명, 광양에 3천명. 대규모 산업단지다 보니까 대규모 비정규직들이 조직돼서 단체협약으로 권리를 찾아나가는 것에 더 이상 울산으로. 그리고 산업단지가 충남에도 있고 경기도에도 생기고 있거든요. 이렇게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에 방침이 섰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건설현장이다 보니 SK가 언론, 경찰, 검찰, 노동부와 유착되어 있는것 아닌가 말씀하셨는데 건설현장은 대표적인 비리, 부패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촘촘하고 윗선 아랫선 까지 연결이 되어 있구요. 현장의 노조를 통해 불법다단계하도급이 없어짐으로써 비리구조가 하나하나 끊어져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정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 특성. 이런것이 또 하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여러 말씀을 들어 봤습니다. 남은 일정은 어떻게 되시는지요?</font>

김 규 - 저희들이 경찰청 앞에서 같이 항의에 참여하는 것도 저희들 판단이 그렇더라구요. 어제 연행된 소식 들으면서 우리 아무것도 하지말자. 이렇게 열심히 해도 울산에서도 그렇고 여기와서도 다 연행되는데 우리가 뭐 할 수 있겠나. 심한 좌절감을 느꼈었는데, 이럴 때일 수록 우리가 이기고, 사람들에게 다 알려내야 됩니다. 너무나 정당한데 이렇게까지 탄압한다. 그래서 오늘도 단체들 찾아다니면서 저희 마음 호소드리고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러 이곳저곳 다니려 합니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서울에는 언제까지 계시는지요?</font>

김 규 - 5월 27일 노동자대회 하는 날 같이 참석하기 위해서 목요일까지 있을 예정이구요. 혹시라도 그 뒤에 더 높으신 분이나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한두명 정도 남아있을 생각이구요.

<font color=#0033cc>우문숙 - 끝으로 한말씀씩 해 주신다면요?</font>

채영주 - 제일먼저 살아보겠다고 하는데 공권력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구요. 쥐도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거든요. 몇십년 동안 현장에서 당한 굴욕과 설움에 반항하는 것이라 봐주시고, 원래 노가다가 다 그런것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들. 원래라는게 없거든요.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 우리의 잘못이라 생각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당할 수 만은 없다 생각해서 노조를 하게 된 것이구요. 가족들이 나서는것은 비리라던가 그런걸 캐 내고자 하는것이 아니라 내가족 내가 지킨다는 각오로 나오는 것이고, 빨리빨리 우리가 일을 해야 위에 계시는 분들 한끼 밥이나 죽이나 입으로 들어갈 수 있게되기 때문에 힘을 내서 애기와 애기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는게 지금 제 바램이고 결심입니다.

김 규 - 저는 파업에 가족이 같이 나오면서 느꼈던 것이 시청을 가던 노동부를 가던 너네는 노가다 마누라다. 이런 느낌으로 많이 대하더라구요. 공무원들이. 되게 자존심,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노가다 마누라도 사람이고, 좀 못배웠다 뿐인데 무시하고, 남편들이 현장에서 정직원 외 출입금지 간판이 달린 식당이나 휴게실이나 화장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까만 얼굴로 차타고 돌아오면서 아이들 앞에 섰을때, 그래도 내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해야지 하면서 다음날 출근을 하겠지만, 우리한테 한마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겪었을 모멸감 있잖아요. 정직원과 나는 노가다라고. 또 그사람들이 알게모르게 무시하는 말들을 많이 했을까. 이런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고, 저는 이런 파업이 남편들이 모멸감 속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들인데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꿈이구요.

한가족이 일년동안 월급봉투를 모아보니 735만원이더래요. 이거 떼고 저거 떼고 하다보니 생활비가 한달에 10만원도 안나오더라.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울었던 기억도 납니다. 정말 아빠 오늘은 왜 회사 안가. 회사 안가도 좀 편히 쉴 수 있고. 그런 마음으로 좀 안정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 만들어주고 싶은 말씀 뿐입니다.

우인순 - 세상에 진실은 언젠가 알게될 것이다 생각을 하구요. 아저씨 같은 경우는 아직도 교통수단이 이륜자동차 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 많이 주는데 오라 해도 안가고. 그런것으로 아저씨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 신문지를 가슴에 안고 바람막이를 삼아서 달리고, 비올때 비를 맞으면서 일하러 갈때 모습이 정말 안타깝구요. 남들이 일요일, 공휴일 쉴 때 저희도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 안해가면서 남들이 쉬는 의미에서 우리도 같이 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원미영 - 저희 아빠 같은 경우는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여태까지 일을 보시다가 교섭단으로 남아 있어서 체포영장이 안떨어 진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서울로 상경하기 전날 체포영장이 떨어져서 애기 아빠도 피신을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딘가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여기와서 타워크레인도 가봤고 여러 엄마들이 말씀하신 것 처럼 내 남편이 선택한 길이 결코 나쁜길이 아니고 정당하고 옳은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몸 상해 하시지 말고 어디서든 혼자라는 생각으로 마음부담을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 혼자가 아니고 8백명, 천명의 조합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건강 챙기시고 굳굳하게 잘 견뎠으면 좋겠어요.

<font color=#0033cc>우문숙 - 앞으로 투쟁계획 듣고 마치겠습니다.</font>

한은정 - 평화적인 집회에서 3보 1배의 평화적인 행진을 하려 했던 것이 7백명 전원 연행사태로 나타나서 어제 노숙농성을 했구요. 가족대책위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 처럼 제단체를 방문을 해서 이런 실상을 알리고 여러 단체들이 한목소리로 울산건설 플랜트노조 해결을 위해 나서줄 것을 호소드릴 예정에 있습니다. 더 구체적인 투쟁 계획과 방법은 조금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것 같구요. 27일에 울산에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있습니다. 그때 많이 오셔서 울산이 정말 외롭고 힘든 투쟁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font color=#0033cc>우문숙 -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노동방송에서 항상 가족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font>

가족 일동 - 고맙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