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세계 297호- 세상읽기]

장애인의 권리가 확대되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는 게 진보의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노동자의 권리가 더 이상 확대되는 건 우리 사회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운동이나 여성운동에 대해 호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조차 노동자 파업에는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다.

<b>'백의의 천사'가 파업을?</b>
자신을 꽤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병원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백의의 천사들이 파업을 하면 되느냐?"고 못마땅해 한다. 언론보도 역시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 실태와 수술건수, 진료 환자수의 변화를 상세히 전하는 등 의료공백 발생 여부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같은 보도는 병원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시킬 뿐, 사태의 원만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불친절하다고 탓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원인을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서만 찾으려고 한다면 "특별히 성격이 쌀쌀맞거나 인격적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병원에 취업한다"는 말도 안 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격적 결함을 지닌 병원노동자도 있을 수 있으나 대다수 사람이 불친절을 느낀다면 그 원인을 병원노동자 개인한테서 찾을 게 아니라 의료서비스 체계나 의료환경 같은 구조적 측면에서 찾아봐야 한다.
어릴 때부터 '백의의 천사'가 꿈이었던 많은 간호사들은 병원에 취업하면서 절망감을 느낀다. 우리나라 병원의 운영시스템이 간호사들로 하여금 환자와 보호자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서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 중에서 공공의료기관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다수 우리나라 병원은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하면서 자본주의사회 다른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 최소의 시간에 최대한 많은 노동을 시킴으로써 최고의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걸음걸이를 한번 관심 있게 지켜보기 바란다. 그 사람들은 근무시간 내내 종종걸음을 치며 일할 수밖에 없다.
영국은 공공의료기관이 전체의 95%나 된다. 병원노동자들은 수익에 신경 쓸 필요 없이 환자를 진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병원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공공의료 실현'을 가장 중요한 요구의 하나로 계속 내세울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공공의료가 확보돼야만 보건의료인들이 병원에 취업하면서 꿈꿨던 보람 있는 인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b>착시현상을 넘어서</b>
[사진1]병원이 수익을 남기는 돈벌이 중심의 운영을 하게 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한 종합병원에서는 의사 봉급을 그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며 벌어들인 수입에 비례해 지급하는 성과급 방식으로 변경한 뒤, 각종 검사 건수가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병원노동자들의 파업은 결국 국민이 올바르게 진료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대시킨다. 노동운동이 사회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한 예다. 전교조 활동이 무너져 가는 공교육을 다시 살려내고, 공무원노조 활동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몰아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노동운동을 우리 사회에 해로운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착시현상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부당한 권력과 자본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노동운동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을 국민들에게 부추긴 결과다.
<b>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b>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