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화력 사망 고 심장선 유족, 카메라 앞에 서

“사측 브리핑, 거짓말투성이…살릴 수 있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 유족 요구안 발표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이 1일 오후 1시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 정종배 기자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이 1일 오후 1시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 정종배 기자

화력발전소에서 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8일 영흥화력발전소 화물 기사인 특수고용노동자 심장선 씨가 추락사한 것이다. 유족은 1일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가족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하지 않은 일을 해 사망했다고 영흥화력 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고 심장선 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명확한 사고 발생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청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열었다.

유족과 공공운수노조 측은 영흥화력 고인의 죽음이 비용 절감,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고인의 아들은 “아버지는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일했다. 안전띠를 걸기 위한 안전바는 손으로 당겨도 고무줄처럼 출렁거렸다. 또 CCTV 확인 결과 사건 발생 후 제대로 된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생명을 잃어가던 아버지를 방치했다. 아버지는 운전기사다. 운전기사는 화물을 묶고 이동시키는 직업이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물건을 싣고 내리는 일까지 했다. 상하차 담당자는 어디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영흥화력, 지옥의 화물 현장

무릎 높이 안전대, 안전바는 '출렁'

 턱없이 낮은 안전 난간. ⓒ 공공운수노조
 턱없이 낮은 안전 난간. ⓒ 공공운수노조

유족의 이 같은 생각은 지난 30일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사망 사고 현장을 방문하고 더 굳어졌다. 이날 노조가 밝힌 사고 현장을 보면, 안전 난간은 무릎 높이로 턱없이 낮았다. 안전대도 손으로 잡아 흔들었을 때 출렁거릴 정도로 미약했다. 공간은 성인 남성이 똑바로 설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석탄회는 고압, 고온으로 탱크 안에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진으로 바닥이 미끄러웠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작업 후 청소나 미끄럼 방지 등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고인은 의자에 앉아 석탄회가 탱크로리에 가득 차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찰나에 추락한 것이다. 난간이나 안전띠 등 장치가 제대로 있었다면 방지할 수 있던 사고다.

작업장에는 상차 관련 공지사항이 붙어있었다. 공지사항은 하청업체 금화피에스시가 작성한 것이다. 금화피에스시는 반출 차량 업무 담당이다. 금화피에스시는 ‘반출 차량 공지사항’에서 화물 기사에게 탱크에 석탄회가 넘치지 않도록 지켜보고, 넘칠 땐 주변을 청소하라고 적었다. 공지에 따라 일했던 고인은 금화피에스시가 아닌 고려에프에이와 계약을 맺은 화물 기사다. 그러나 사고 현장엔 고려에프에이 인력이나 관련된 공지, 통제는 없었다. 이번 사고에 영흥화력 측은 사고가 고려에프에이 책임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안전 책임이 또 다시 희석되는 모양이다.

지난 9월, 화물기사가 비슷한 사고를 겪었다. 재해자는 남동발전 지원관리팀 관계자에 소식을 전하고, 상차 관련 안전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답변도 들었다. 그러나 현장은 달라진 것이 없었고, 반복된 재해는 사망 재해를 낳았다.

상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진. ⓒ 공공운수노조 
상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진. ⓒ 공공운수노조 
고 심장선의 아내가 영흥화력 관계자를 붙잡고 남편을 살려내 달라며 절규하고 있다. ⓒ 공공운수노조
고 심장선의 아내가 영흥화력 관계자를 붙잡고 남편을 살려내 달라며 절규하고 있다. ⓒ 공공운수노조

 

“인력 늘려라” 정부 용역 보고에도 미이행

인력 부족으로 화물기사가 상차 업무까지

사실 상차 업무는 고인의 업무 범위가 아니다. 고인의 업무는 화물을 결박하고, 운송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흥화력 현장은 화물기사가 운전 업무 외 상하차 업무를 요구받는 상황이다. 더 많이, 더 빨리 화물을 운송해야 생계를 유지하는 화물 노동자들은 배차를 받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 상하차 작업에 내몰리고 있다.

영흥화력이 비용절감 차원에서 상하차 인력을 배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는 또 있다. 2019년 정부 용역보고서(발전5사 발전설비 적정 운영인력 산정–연료환경 설비, 2019.11, 한국능률협회컨설팅)는 위험요인에 대해 2인 1조 구성 또는 업무량 등을 반영한 인력 증원 등을 통해 노동자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영흥화력은 인력을 충원하지도 않고, 2인 1조를 실시하지도 않았다. 고인은 혼자 일하다 떨어졌고, 긴 시간 방치돼 목숨을 잃었다.

화물노동자가 수행하는 상하차 작업은 고유한 업무가 아니라는 점은 정부 지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6월 ‘계약 내용과 다른 업무 수행 중 발생한 화물자동차 운전자 사고처리 지침’을 발표했다. 계약 외 업무를 하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 재해발생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로 간주해 산재보상을 진행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지침이 발표된 배경엔 화물노동자의 업무시간 중 상하차 작업 등에서 발생하는 산재사고가 그만큼 많았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상차 작업 모습 ⓒ 공공운수노조
  상차 작업 모습 ⓒ 공공운수노조

 

CCTV가 밝힌 영흥화력의 거짓말

책임 지우려 산재 은폐?

노조와 유족은 CCTV를 입수해 사고 당시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영흥화력의 브리핑은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영흥화력 측은 사고 브리핑에서 오후 1시 1분에 재해가 발생, 오후 1시 5분에 제어실 근무자가 최초 발견, 오후 1시 7분에 제어실 근무자가 현장에 도착해 119 신고 및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CCTV 확인 결과 오후 1시 5분 지나가던 운전자가 고인을 발견해 접근했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 오후 1시 6분 또 다른 기사가 접근해 어딘가로 전화했다. 이때 전화가 영흥화력 쪽인지 119인지 밝혀지진 않았다. 또 사측이 밝힌 오후 1시 7분 심폐소생술은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 심폐소생술은 119구급대가 도착한 오후 1시 16분에 이뤄졌다.

다른 산재 은폐 정황도 있다. 노조와 유족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재해자가 앉았던 의자는 없었고, 혈흔도 상당히 지워졌다. 또 상당량의 분진도 깨끗이 치워졌다. 태안화력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때에도 사측은 물청소하는 등 산재 은폐를 시도했다.

사고 현장을 설명하는 공공운수노조 조성애 노동안전보건실장 ⓒ 정종배 기자
사고 현장을 설명하는 공공운수노조 조성애 노동안전보건실장 ⓒ 정종배 기자

 

15시간 달하는 화물 노동시간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해야”

2019년 상반기 화물운송시장에 따르면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화물 노동자의 1일 평균 운행시간은 12.9시간, 1일 평균 운행 외 업무시간은 2.1시간에 달한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5시간이다. 화물노동자의 업무상 질병 사망만인율은 평균에 4배에 달하고, 사고 발생률은 9배에 이른다.

이 같은 화물노동자의 장시간 과로 노동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신분 때문이다. 개인사업자 취급을 받는 특수고용노동자는 고정급이 없다. 더 많은 화물을 처리해야 이에 따른 운임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공공운수노조는 안전운임제를 요구해 왔다. 안전운임제를 적용받으면 과속하지 않아도,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하지 않아도 적정 임금이 보장된다. 국토교통부와의 협상 끝에 안전운임제가 시범 운영 중이나 적용대상이 제한됐다. 시멘트 등 소수 화물 품목만 적용되고, 고인이 운송했던 석탄회도 그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를 요구했다. 또 고용노동부에는 발전소 긴급 점검, 작업중지명령 해제절차를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이 1일 오후 1시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 정종배 기자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이 1일 오후 1시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 정종배 기자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이 1일 오후 1시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 정종배 기자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이 1일 오후 1시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 정종배 기자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이 1일 오후 1시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 정종배 기자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이 1일 오후 1시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 정종배 기자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이 1일 오후 1시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 정종배 기자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사고 유가족 기자회견이 1일 오후 1시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 정종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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