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의 사람들. ⓒ 도서출판 보리
문밖의 사람들. ⓒ 도서출판 보리

“오늘도 일곱 명이 퇴근하지 못했습니다.”

2016년 핸드폰 공장에서 일하던 청년들이 실명했다. 삼성과 LG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하청 공장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다 뇌와 시신경을 다친 노동자는 모두 6명. 그해 1월부터 연달아 4명의 피해자가 생겼다. 메탄올 실명 산업재해였다. 사건이 세상이 알려지고 열 달이 지나자 또 다른 피해자 2명이 드러났다. 이들은 실명 이유도 모른 채 혼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스마트폰 부품 하청 공장에서 하는 일은 단순하다. 화학약품을 이용해 똑같은 공정을 반복한다. 그러나 누구도 이들에게 어떤 약품을 쓰는지, 얼마나 위험한지 말해 주지 않았다. 어떤 설명도, 안전 교육도 없었다. 노동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장비를 써야 하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원청인 삼성과 LG는 ‘아웃소싱’이란 이름 아래 가장 위험한 일을 가장 싼 임금으로 하청에 맡겼을 뿐이다. 청년들의 실명에 대해 원청과 하청,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12월 새로 출간된 르포 만화 〈문밖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대기업 하청 공장에서 파견 노동으로 일하다 시력을 잃은 청년 노동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노동자 건강권을 지키는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박행’과 피해 당사자 ‘이진희’의 이야기다.

〈문밖의 사람들〉은 메탄올 실명 피해 당사자 이진희를 통해 하루아침에 실명한 청년 노동자 6명의 아픔과 현실을 드러냈다. 더불어 주인공 박행을 통해 섬처럼 고립됐던 메탄올 실명 당사자와 연대하고 이를 사회적 사건으로 공론화한 이야기도 함께 풀어낸다. 주인공 박행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로 동시대의 또래가 무너지는 현실에 대해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다.

〈문밖의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어떤 노동 현실에 처하게 되는지를 두 청년의 이야기로 보여 준다. 우리와 멀게만 느껴졌던 산업재해 피해자와 시민단체 활동가를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였다. 책을 쓴 르포 만화가 김성희, 김수박은 “구시대적인 사건이 여전히 발생하는 사회를 내버려둔 우리의 책임이 있다”라며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일터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렸다”라고 술회했다. 두 사람은 파견 노동으로 노동자들의 위험한 노동이 기록되지 않는 것을 만화로 기록해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으로 이 책을 그려냈다.

매해 2,400여 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하루 7명꼴이다. 2013년 성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 2013년 이마트 냉동고 사망 사건,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2019년 이천 한익스프레스 냉동창고 화재 사망 사건, 2020년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 사건…….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인 김미숙 씨와 고 이한빛 PD 아버지인 이용관 씨, 그리고 이상진 민주노총 비대위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 11일부터 국회 본청 계단에서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이들은 더는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지 않게, 일하다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했다”라고 말한다.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법이 허술해서 기업이 책임지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21대 정기 국회에서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던 보수 양당은 끝내 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국회가 시간을 흘려보내는 중에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추락, 끼임, 질식 등 똑같은 산업재해가 오늘도 되풀이된다. 진정 우리 사회에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는 없는지,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기업은 어떤 처벌을 받고 국가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문밖의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문밖의 사람들〉, 김성희·김수박 지음, 보리 펴냄, 1만5천 원

문밖의 사람들. ⓒ 도서출판 보리
문밖의 사람들. ⓒ 도서출판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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