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학연대, 첫 항해를 위한 안내서’ 가이드북 펴내

“지속가능한 노학연대 꿈꾸며 영혼을 담아봤습니다”

“우리가 인사드릴 때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학생)

“우리를 청소부로 대접하지 않고 같은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존중해 준다고 생각해 좋아요. 그런데 우리가 단체행동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노동자)

“사실 나와 관련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만년설, 나침반 활동하면서 바뀌었고 이제는 연대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학생 )

노학연대 가이드북에는 학생이 노동자에게, 노동자가 학생에게 던지는 물음과 대답이 오갔다. 일상에 대한 재미있는 질문부터 연대에 대한 깊은 고민까지. 어머님? 아버님? 학교 노동자들을 어떻게 부를까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노학연대가 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지도 책에 담겼다. 나침반과 민주노총은 11일 민주노총에서 간담회를 열고 책을 펴낸 계기와 과정, 노학연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침반. 왼쪽부터 연재, 태린, 혜리 ⓒ 김한주 기자
나침반. 왼쪽부터 연재, 태린, 혜리 ⓒ 김한주 기자

 

<기획·사회>

곽이경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국장

<패널>

연재 연세대학교 비정규문제해결공동대책위원회

태린 노학연대 프로젝트 나침반 가이드북 팀장 / 숙명여자대학교 만년설

혜리 숙명여자대학교

<정리>

김한주 노동과세계 기자

 

그때 만약 우리가 연대하지 않았다면…

이경 

먼저 여러분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활동가는 자기 활동에 빠져들게 된 계기와 활동을 시작한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그런 계기를 준 경험이 있나요? 또 노학연대 활동까지 닿은 과정은 어땠나요?

혜리 

저는 먼저 관심이 있던 성소수자 인권동아리에 들었어요. 그러면서 성소수자 인권뿐 아니라 다양한 인권 주제에 관심이 생겼어요.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친구가 총학생회에서 일하자고 해서 함께 했죠. 2019년 학교가 용역업체를 바꿔서 고용승계 문제가 생겼는데 총학생회가 결합해서 투쟁이 잘 마무리됐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때 만약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으면 노동자들이 해고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관심을 두면 뭐가 바뀌긴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침반 활동까지 온 것 같아요.

연재

저는 교지편집위원회를 했어요. 학내에서 잡지를 만드는데 다양한 주제를 다루죠. 학내 노동 이슈도 꾸준히 담았어요. 한 번은 학교에서 하청업체가 큰 투쟁을 벌였고, 우리는 노동자 간담회를 기획했어요. 우리는 노동자의 연락처를 몰랐는데 비정규공대위가 다리를 놔줘서 간담회를 잘 진행했어요. 간담회 기획기사를 쓰고 나서 공대위가 자기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자고 요청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저도 모르는 새 대표가 돼 있네요(웃음).

태린 ⓒ 김한주 기자
태린 ⓒ 김한주 기자

태린

제가 입학할 때 페미니즘 리부트가 한창이었어요. 당연히 관심이 높았고, 그래서 여성 인권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여기서 인권을 포괄적으로 다루더라고요. 동물권, 장애, 노동, 성소수자 인권까지 알게 됐어요. 저는 보수적인 가정에서 특히 노동 인권, 노동조합에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학교에서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을 만났는데 나쁜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니까 너무 좋고 필요하면 연대도 할 수 있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친구가 만년설(숙명여대 노동자와 함께하는 만 명의 눈송이)을 같이 하자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도 갑자기대표가 됐네요(웃음).

 

노동자와 학생은 서로 기대어 가는 존재

이경

나침반 프로젝트가 신선했어요. 노학연대 가이드북은 집필, 편집까지 직접 했다고 들었어요. 가이드북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고, 주안점을 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태린

저는 만년설을 하면서 책임감이 들더라고요. 그 계기가 있었는데 2017년에 경비노동자가 학교 편의점에서 일하는 재학생과 소통 과정에 문제가 있었나 봐요.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며 편의점에서 일하는 재학생이 하루 일급을 후원금으로 보내줬지요. 그때 노동자와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자고 다짐했어요. 만년설이 나이주의, 여성 인권 등에 대한 가이드북을 펴냈어요. 여기서 평등한 호칭을 쓰는 법, 남자친구 여부를 묻는 것도 차별이라는 등 내용을 담았죠.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에서도 이걸 노조 교육자료로 써도 괜찮으냐고 물어봤어요. 2019년에 노학연대를 확장하기 위해 나침반을 시작했어요. 이 자료를 참고해서 나침반의 노학연대 가이드북이 나오게 됐어요.

혜리

저는 간담회나 홍보영상을 기획하다가 나중에 가이드북 디자인에 합류했어요. 새로운 디자인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큰 글씨를 쓰면서도 예뻐 보이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영상촬영에 중점을 둔 것 같아요. 인터뷰도 하면서 생애구술사처럼 노동자의 이야기도 수록했어요. 학우들이 영상에서 만난 노동자를 보고 ‘우리가 많이 마주치는 사람이 이런 분이구나’라고 느꼈으면 좋겠더라고요. 영상으로 노동자와 학생이 서로 접점을 찾고 친숙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재 ⓒ 김한주 기자
연재 ⓒ 김한주 기자

연재

제가 맡은 파트는 학생인권 가이드 쪽이었어요. 학내에서 활동하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에 대한 고민을 담았어요. 호칭 문제로만 많은 지면을 썼어요.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면서 학생인 우리가 노동자를 도와줘야 하는 시혜적 의미로 쓰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역시 누구의 노동으로 일상생활을 하기에 노동자와 학생은 서로 기대어 가는 존재라고 언급한 게 기억나네요.

 

지속가능한 노학연대가 필요했어요

 

이경

나침반을 운영, 활동에 함께하면서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태린

초기부터 이 모임에 어떤 목표를 둘지 논의만 두 달 동안 한 것 같아요. 단순히 투쟁하는 곳에 더 결합하는 연대체를 만들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노학연대 목표를 가진 모임을 만들 것이냐를 뒀고, 후자를 선택했죠.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노학연대를 나의 일로 느끼도록 하는 점이었어요. 그리고 모임의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했어요. 책 제작도, 영상 편집도, 연대 활동도 특별한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하는 게 아니고, 모두의 일을 모두가 하자는 인식을 주고 싶었어요.

연재

저는 지속가능한 노학연대를 고민했어요. 저에게 운동 선배는 거의 부재했어요. 지금도 나침반이 이런 투쟁을 했고,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정리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같은 사람이 언제나 이 현장에 있을 수는 없어요. 현실의 구성이 달라져도 연대가 끊이지 않고 발전하는 게 중요해요. 연대 지속을 위해 저희는 공대위 활동을 하며 연대회원과 집행위원으로 회원을 구분해 진입장벽을 낮춰보려 했어요. 그런데 납부 비율이 너무 낮더라고요. 의무를 낮추면 더 쉽게 연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마음이 떠난 것만 같았죠. 연서명을 조직할 땐 연대회원이 아닌 사람의 비율이 더 높아서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도 왔고요. 그래서 폭이 넓으면서도 효과적인 연대를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혜리 ⓒ 김한주 기자
혜리 ⓒ 김한주 기자

혜리

나침반에서 진행한 노학연대 실태조사를 마치고 진행한 간담회에서 나왔던 내용이 기억나는데요. 노동 의제가 학생과 분리되지 않기 위해 학생의 노동에 더 다가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근로장학생, 행정 인턴, 조교 등 학생 노동권도 노학연대가 관심을 둘 사안이라는 거죠. 이렇듯 학생들이 노동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노학연대가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반가운 노동자의 조끼

 

이경

여러분은 민주노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혜리

최근에 친구가 민주노총(가맹조직)에 취업했어요. 민주노총은 크고, 어렵고, 매일 운동하던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민주노총도 면접 보고, 취업하는 곳이구나 생각했어요(웃음). 저는 나침반을 담당하던 노조 간부도 직접 만나고,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성평등위원회도 외부위원으로 함께 했는데 좋은 조직이라고 생각해요.

태린

민주노총하면 금속노조, 건설노조였어요. 이 생각이 바뀐 건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에 있을 때 ‘섬식이’를 만들고 인스타그램을 했을 때부터예요. 최근 팝업스토어나 타투유니온을 보면서 젊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저 말고도 다른 사람도 신기하게 생각할 정도죠.

연재

저도 처음에 남성적인 이미지를 많이 받았어요. 1학년 때 송도캠퍼스에서 빨간 조끼 입은 사람들이 투쟁한 적이 있었는데 ‘왜 저렇게 하지?’ 했는데 지금은 조끼를 보면 반갑기만 하더라고요. 나도 민주노총과 교차하는 지점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어요.

곽이경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국장 ⓒ 김한주 기자
곽이경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국장 ⓒ 김한주 기자

이경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는 모든 후보가 ‘청년’을 강조했어요. 그만큼 민주노총에서는 청년 리더, 청년의 노조 활동 참여, 청년 조직화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와요. 청년을 말하는 민주노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태린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권이 청년을 얘기해요. 청년을 정치로 끼워주지 않으면서 ‘청년 정치 부문’만을 만들었죠. 지금 청년 노동자가 없는 게 아녜요. 청년 리더 만들어야 한다면서 정작 청년이 리더로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아요. 그 전에 청년에게 평등한 조직이었나 먼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혜리

저는 청년 정치 토론회에 간 적이 있어요. 라운드테이블에 한 정치인도 앉았죠. 그런데 저는 실제로 소통한다고 느꼈던 적이 없어요. 제 의견에 ‘뭘 몰라서 이상적인 말만 한다’는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손편지를 써서 정치인에게 의견을 갖다 바치는 느낌이었어요. 정치가 청년을 소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청년과 대화하려면 왜 청년을 얘기하는지, 청년 담론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성찰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재

지금 얘기되는 청년이란 집단은 배제하는 사람이 많아요. 서울, 대학생 이미지를 상정하고 청년을 말하죠. 우리가 상정하는 청년은 누구고, 실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은 누구인지 섬세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김한주 기자

 

나에게 노학연대는 내 세상을 넓힌 활동

 

이경

노학연대를 어쩌면 낡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요즘 노동운동에 관심 있는 학생도 적어졌다고 하고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노학연대’는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어요.

태린

노학연대는 내 세상을 넓힌 활동이에요. 노학연대가 연대와 공감, 존중이 뭔지 느끼게 했거든요. 어느 때부터 대학 사회에서 인권과 페미니즘을 많이 얘기하지만 ‘운동으로 가면 안 된다’는 반응이 많죠. 사회변화에 대한 단절과 배제가 일상화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마지막 희망으로 노학연대를 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혜리

노학연대가 우리는 모두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려줬어요. 노학연대가 학생과 노동자를 꼭 분리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학생도 노동자고, 노동자는 학생이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 아닌 거에요. ‘사람은 모두 노동자라는 점에서 만난다’ 이것이 노학연대가 제게 알려준 답인 것 같아요.

연재

저에게 노학연대는 관계 맺기의 연속이에요. 같이 살아가는 사람과의 관계를 고민하게 하죠. 개인적으로는 노동자와 연대를 넓히면서 학생과는 단절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도 그 연결 지점은 있어요. 이를 어떻게 나의 언어로 바꿔서 더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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