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나면 당신 부인 옆엔 다른 남자가 누워 있고 당신의 보상금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인권 유린, 여성 비하, 건설 안전 책임 전가, 건설 직업 무시...갑질 종합판

“사고나면 당신 부인 옆엔 다른 남자가 누워 있고 당신의 보상금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2017년 현대건설 대구 힐스테이트 아파트 현장에서 저질 광고판 제보가 들어왔다. 2019년 중흥건설 경기도 아파트 현장에서도 같은 광고판이 걸렸다. 3년뒤 2021년 태영건설 부산국제아트센터 현장에도 내걸렸다. 내로라 하는 재벌 건설사 현장이었다. 명품 아파트, 글로벌 건축물을 짓는 곳에서 건설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명백히 드러났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2030 건설노동자들과 서울 도심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며 노동 권익 개선을 위한 활동을 펼치는 ‘청춘버스’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청춘버스’는 저질 광고판 퇴출을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4월 22일(목) 오후 2시 개최했다. 
 
기자회견에 나선 양효주(35) 조합원은 “건설노동자 뿐만 아니라 그 가족 역시 무시하는 처사”라며 분개했다. 임인철(33) 조합원은 “광고판은 안전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없고, 되레 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수년간 지속적으로 건설노동자들을 무시하는 광고판을 내건 건설사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설노조는 4월 1일부터 6일간 783명의 노동조합 2030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을 벌였다. ‘광고판을 보면 어떻냐’는 물음에 건설노동자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답변이 45.1%(353)로 가장 많았다. 여성 차별 문제가 있다(4.7%) 스스로 자괴감이 든다(8.4%)는 답변도 있었다. 확 와닿는 문구라는 답변(17.9%)이 있긴 했으나 대체로 2030 청춘 건설노동자들은 앞선 답변에서 보듯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광고판은 크게 세 가지의 문제를 갖고 있다. 
첫 번째 건설사가 바라보는 건설노동자에 대한 천박한 인식이다. 광고는 전체 건설노동자를 싸잡아 저질표현으로 낮추어 보고 있다. 건설노동자들은 건설사와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지 노예계약을 맺은 게 아니다. 또한 전산업 노동자 중 건설노동자는 10%에 달하는 중추적인 직업군에 속해있다. 광고판은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하는 건설노동에 대한 존중은커녕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번째는 건설사가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수준 낮은 인식이다. 광고 전체 여성을 싸잡아 사회적으로 낮추어 보고 있다. 생산의 주체이기보다 가정에 종속된 속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건설현장 노동자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유령 취급한 결과물이다. 더 나아가 전체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부정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의 결과다. 

세번째는 건설사가 바라보는 안전에 대한 파렴치한 인식이다. 광고는 사고의 책임이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있는 것처럼 돼 있다. 건설노동자는 하루2명꼴로 현장에서 죽어나간다. 전산업 추락사망재해의 절반 정도가 건설현장에서 벌어진다. 죽으려고 일하는 노동자는 없다. 죽음의 근본적 원인은 건설사의 책임 방기와 ‘중층적 다단계하도급’이라는 건설현장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 문제의 광고는 사고의 근본적 원인을 가리고 노동자 개개인의 실수가 사고의 전부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기자회견 후 2030 조합원들은 저질 광고판 퇴출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청춘 건설노동자들은 “사회적 천대와 멸시의 대명사가 돼 버린 건설 일이지만, 노동조합을 통해 우리들은 건설현장에서 직업전망을 찾고 있다. 전사회적인 사회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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