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의 육필 일기장 원본이 공개됐다. 유가족이 지난 50년간 보관해왔던 열사의 친필 일기는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로 위임된다.

민주노총(위원장 양경수)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태일재단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는 29일 오전 서울 종로5가 전태일다리 앞에서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밝혔다.

전태일 열사의 일기는 그간 <전태일 평전>이나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등의 출판물에서만 일부가 공개됐다.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는 열사의 일기가 정부나 지자체에 의해 왜곡될 우려가 있어 일기장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열사의 외침이 노동자·민중의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날 육필 일기장 원본을 공개하기로 했다.

전태삼 씨는 기자회견에서 “전태일 형이 살아생전 일상에서 도모한 생활을 기록한 육필 일기장을 오늘 사회화하려 한다”라며 “불우했던 한 가족의 슬픔을 넘어 ‘우리’라는 주체적 사회공동체가 곧 미래를 의미를 담은 뜻을 세운 전태일 형의 정신을 구현하고 실천해온 노동대중의 피끓는 50년을 넘어 형의 뜻을 사회에 상정한다”라고 전했다.

이날 공개된 열사의 육필 일기장은 전부 7권이다. 열사의 일기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노동현실과 사회를 보여주는 기록이자 가난한 삶 속에서도 사회의 모순을 자각한 이의 기록이란 점에서 사회사적·역사적 가치가 높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는 “산업재해와 최저임금, 노동시간 등의 문제가 논란이 현재에 전태일 일기는 원칙이 돼야 할 바가 무엇인지 일러준다”라며 “일기에는 열사가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투여한 노력의 경과가 기록됐다. 이 과정에서 작성된 진정서와 실태조사 등에 나타난 노동현실은 한국노동사의 한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관리위원회는 전태삼 씨의 제안으로 구성됐다. 1월 말 제안을 받아 2월 8일 첫 모임을 가진 관리위원회는 일기장 보전을 위해 보존처리를 시작했고, 이후 일기장을 전산화하고 전시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쳐갈 예정이다.

한성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전태일 열사의 일기장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이 ‘노동자의 의무’”라면서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와 긴밀한 연대를 꾸려 열사의 정신과 뜻을 알리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우리가 전태일을 다시 읽는 것은 그의 낙관이 용기를 주기 때문”이라며 “열사는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이어 사회를 변화시킬 것임을 믿었다. 힘이 없어 좌절할 때 용기를 잃지 않고 길을 만들어 가고자 했던 50년 전 선배의 목소리를 지금 불안정한 노동 속에서 권리를 위해 싸움을 시작한 노동자가 꼭 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관리위원회는 노동절인 다음달 1일 오후 6시30분, 동대문 평화시장 옥상낙원 DRP에서 ‘전태일 일기 바보낭독회 : 한방울의 물이 되기 위하여’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