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변경 제한, 농업노동자 착취, 산업재해 피해, 퇴직금 회피 등 사례 증언돼
인간이자 노동자 권리인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하는 노동허가제 실시 촉구
4년 10개월간 경기도 소재 한 도금공장에서 일한 네팔노동자 나라얀 라우트 씨는 2년 전 병원에서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철 제품을 자주 들어야 하는 도금공장에서 계속 일할 경우 재발 가능성이 높아 사장에게 이직서를 써달라 요구했으나, ‘계약기간이 남아있다’란 이유로 거절당했다. 관할 고용노동센터도 ‘소견서로 우리가 사장에게 얘기할 수 없다’고만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무사 씨는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6개월간 치료를 받는 동안 일할 수없다는 이유로 기숙사에서 나와야 했다. 5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는 동안 외국인이란 이유로 6개월까지 받을 수 있는 치료도 2개월밖에 받지 못했다. 회사는 수술비를 주지 않았고 산재치료도 그대로 종료됐다.
네팔노동자 카플레 씨는 퇴직금(출국만기보험) 지급을 앞두고 회사가 강제로 사직서에 서명하게 했다. 회사는 계약기간과 달리 며칠 늦게 카플레 씨에게 일을 시키고 1년이 되기 전 사직서를 받아 퇴직금 및 연차휴가(수당) 등을 무력화했다.
캄보디아에서 온 께오짠티 씨는 지난 7월 중순까지 약 2년여간 밀양시 산외면에서 깻잎 재배 수확노동을 했다. 매일 10시간 노동을 했으나 임금은 8시간만 산정해 지급됐다.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숙소비로 월 20~24만 원을 착취당했다. 욕실과세탁공간은 사업주의 창고에 마련돼 있다.
민주노총(위원장 양경수)과 이주노조, 이주노동자평등연대가 22일 민주노총 12층 중회의실에서 연 이주노동자 증언대회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이주노동자를 고통 속에 던져 놓은 고용허가제를 폐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고 고용에 관한 모든 권리를 사업주에게 준다.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아무런 행동도, 요구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이 이런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업장 이탈로 불법체류자가 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도 노동자고 사람”이라며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조차 짓밟는제도다. 이주노동자를 쉽게 착취해 사장들이 많은 이윤을 챙길 수 있게 하려고 실시하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우다야 위원장은 “오늘 발표된 사례는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상황 중 극히 일부”라며 “사업장 변경 제한, 농축산어업 노동자 착취와 차별, 만성적인 임금체불, 높은 산업재해, 열악한 숙소, 사업장 내 차별과 인격 무시 등이 더는 계속돼선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91년 해외투자기업연수생을 시작으로 이주노동자가 국내에 온 지 30년이 됐다. 차별과 착취에 대항한 투쟁으로 1993년 도입된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했으나 자본과 정권의 탄압은 만만치 않았다. 현재는 고용허가제 폐지를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새로운 투쟁을 시작했다.
이날 증언대회에 쇠사슬을 몸에 묶고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은 매 주말 청와대 앞에서 쇠사슬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통해 현실을 드러내고 주체를 조직하기 위한 장이 더 많이 기획되고 만들어져야 한다”라며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쟁취하기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싸움에 민주노총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