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홈리스, 이주노동자에게 공평한 백신 접근권을 보장하려면

명숙의 인권프리즘
명숙의 인권프리즘

“누가 더 과감한 오조준을 하느냐가 관건이죠.”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도쿄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과녁을 맞히기 어려운 날씨에는 어떤 방법이 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양궁계에서는 바람이나 비가 오는 등의 날씨의 변동이 있을 때 과녁의 정중앙이 아닌 바람 부는 쪽으로 쏘는 등의 오조준을 활용한다고 한다. 비가 오면 빗방울에 화살이 쳐지기 때문에 일부러 조준점을 좀 더 바꾸거나 조준점의 위를 쏘거나 한다고 했다. 바람의 속도, 방향, 비의 무게를 읽고 활시위의 방향을 옮기는 것이다. 한국 양궁선수들은 오랜 훈련으로 쌓은 감각 덕에 ‘오조준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페미니스트몰이로 괴롭힘을 당했던 안산선수도 ‘소심해지면 화살은 바람을 이기지 못 한다’며 과감한 태도를 강조했다.

‘맞아, 코로나대책도 이래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정부가 시행하는 코로나 방역대책이나 백신대책을 보면서 답답했던 내 마음을 양궁이 말해주는 듯했다. 코로나 펜데믹 이전에 공고화된 차별의 구조나 불평등함 때문에 더 위기로 내몰린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말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 일상적 시기가 아닌 감염병시대에 과거와 같은 차별적이고 인권보다 이윤을 좇는 방식으로는 모두의 일상 회복은 불가능하기에, 소수자에 대한 대책은 우리 모두를 위한 대책이기도 하다.

여전히 차별적인 코로나 대책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 만큼 우리의 대응도 바뀌어야 한다. 방역물품지급이든 백신접종이든 평등한 조치여야 한다. 평등한 조치란 획일적 조치를 뜻하지 않는다. 실질적 평등을 위한 기본 방법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이다. 같은 시험을 보는 수험생일지라도 시각장애인에게 보장되는 시험시간이 비장애인인 청인과 동일해서는 평등하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백신접종에 있어 노인이나 장애인, 기저질환자,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 등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악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우선 접종하는 것에 사회는 동의했다.

그러나 재난위기 상황에서도 정부와 기업은 차별을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 초기인 작년에는 마스크와 같은 방역물품 지급에 차별을 두었다. 일례로 간병노동자에게 고용관계가 다르다고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은 병원도 있었다. 콜센터 상담사나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을 방역조치 없이 대규모로 밀접하게 일을 시켜 집단 감염된 사업장이 한두 곳이 아니다. 장애인 활동지원시간을 늘리는 등의 제도 변화 없이 자가 격리 지침만 내려 집에 있는 재가중증장애인들은 먹고 움직이는 최소한의 생활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생존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필수노동자가 아닌가

장애인, 홈리스,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으로 권리가 박탈당한 소수자집단에 대한 차별은 백신접종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유지 필수업무를 하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백신접종에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을 제외한 경우가 잇따라 발생해 논란이 됐다. 전기를 만드는 필수노동을 하고 있는 발전노동자 중 비정규직은 백신접종에 뺐다. 심지어 코로나 확산방지를 위해 KTX공항리무진으로 유럽 등 해외입국자들 수송을 전담하고 있는 코레일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백신접종에서 제외시켰다. 단지 한국철도공사에 직접고용된 것이 아니라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에 고용됐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는 비정규직 당사자들만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시민들도 위험해지는 일이므로, 방역의 관점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그럼에도 이에 대해 원청인 철도공사도, 자회사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코로나시대 과감하게 근본적 차별 시정조치가 있어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업무를 해도 임금이나 노동조건, 복지제도에 차별을 두었던 관행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홈리스나 이주노동자들의 백신접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홈리스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주민등록증이나 비자가 없는 현실, 본인 명의의 핸드폰이 없는 등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접종예약시스템 때문이다. 모바일을 통한 본인 인증절차나 한국어로 된 접종 예약 시스템이라는 언어장벽으로 백신접종받을 권리는 막혔다. 그들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여기지 않는 단속 위주의 대책을 하던 관행은 백신접종을 포기하게 만든다. 어느 보건소 앞에 등장한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원이 뜨기까지 했으니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강제추방되느니 차라리 코로나에 감염되는 쪽을 선택하자는 쪽으로 가지는 않았을까.

소수자들의 백신이나 방역에 대한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하려면 과감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사회적 거리두기조차 할 수 없는 비좁고 비위생적인 쪽방에 사는 홈리스들이 아프면 쉴 수 있도록 주거를 제공해야 한다. 서울시에서는 홈리스들에게 주거를 제공하고 있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않은 만큼 전국적으로 홈리스 주거대책이 집행되어야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추방의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코로나 시기만이라도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합법화를 실시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 결과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양산하는 고용허가제를 근본적으로 없애는 제도개선을 논의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원청이든 하청이든 누구도 비정규직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제도, 파견법을 없애는 방향도 공론화되어야 한다. 코로나시대, 모두가 안전한 삶을 살 수 있으려면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온전한 주거권, 온전한 노동권을 보장하는 과감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재난이라는 비상시기에 불평등을 시정하는 과감한 대책을 내놓아야만 모두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이라는 과녁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소심해지면 화살은 바람을 이기지 못 한다’는 말처럼 ‘임시방편적인 차별적인 제도로는 코로나를 벗어날 수 없다.’ 과감하게 근본적으로 오조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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