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휴게실 실태 증언대회’··· "노동자의 쉼터, 없거나 좁거나 숨겨졌다"
원청의 설치의무 못 박고, 플랫폼·이동노동자에 맞는 휴게시설 대책 필요

13일 휴게실실태 현장노동자 증언대회가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진행됐다. ⓒ 송승현 기자
13일 휴게실실태 현장노동자 증언대회가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진행됐다. ⓒ 송승현 기자

열악한 노동자 휴게실에 대한 증언이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부터 나왔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노동자의 휴게시설 의무화 조항 시행령 제정을 앞둔 가운데,  '쉴 수 없는 휴게실' 환경이 재차 폭로된 것이다. 

13일 휴게실실태 현장노동자 증언대회가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진행됐다. 오전 10시 부터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대회에는 코레일 자회사 노동자, 병원 미화 노동자, 가전설치 및 방문점검 노동자, 면제섬 판매 노동자, 학교 비정규직 미화 및 급식실 노동자, 대학교 청소 노동자의 생상한 증언이 나왔다.

민주노총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인해 내년 8월부터 휴게시설 설치의무화를 앞둔 시점, 시행령 제정을 위해 현장조합원들의 증언과 실태조사를 모으고 있다.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그동안 열악한 휴게시설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좁은 휴게실로 거리두기를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 플렛폼 노동자와 이동노동자의 쉴 수 있는 거점 마련 등 새로운 모든 형태의 노동에 발맞춰 휴식과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고 여는 발언했다.

각 사업장은 다르지만, 이들의 증언은 크게 휴게실 자체의 부재, 지나치게 협소한 공간, 냉난방기 및 세면시설 부적절 등으로 모아졌다. 여기에 고정된 근무공간 없이 자동차를 이용해 가가호호 방문하는 검침 및 설치 노동자에 대한 휴게시설 마련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이태의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이 토론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송승현 기자
이태의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이 토론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송승현 기자

200명이 5평짜리 휴게실 네 곳 나눠쓰고 변기와 소파가 나란히···‘쉴 수 없는 휴게실’

코레일의 자회사인 정명재 공공운수노조의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장은 먼저 모-자회사가 휴게시설 설치의 주체에 대한 공방을 벌이며 설치를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재부 지침으로 운영중인 ‘안전근로협의체’에서 휴게실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강제력이 없어 한계가 크기 때문이다. 정 지부장은 그나마 있는 휴게실도 예산을 핑계로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으며, 철도 내 인프라(부지)를 이용해 휴게시설을 설치하는 것임에도 모회사(코레일)이 과도하게 임대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증언했다.

서울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미화노동자는 “우리가 소속된 하청업체의 직원은 200명이 넘지만, 작게 마련된 탈의실은 네 곳으로, 평균 17제곱미터(약 5평)이라 모두 들어가 서 있을수도 없는 면적이다. 너무 좁고 열악한 탈의실에서 감염이라도 발생할까 걱정하는 것도 노동자의 몫이다”라고 하며 “우리는 계단 밑에서 창고 구석에서 임시로 머물러 있거나 휴식시간마다 내쫓기고 있다. 이런 곳은 이산화탄소 농도도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기 때문에, 나쁜 공기질로 인한 건강도 걱정되는 실정”이라고 했다.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노동조합이 진행한 설문조사.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노동조합이 진행한 설문조사.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노동조합이 진행한 설문조사.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노동조합이 진행한 설문조사. 

가정을 방문해 정수기, 비데 등을 설치하거나 가스를 검침하는 가정방문 및 검침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떨까.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노동조합 박상웅 노안국장은 조합원 816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한 결과, 이들의 거점(창고) 내부에 별도에 휴게 공간이 마련돼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8.9%에 불과했다. 화장실이 없다고 응답한 경우는 87.2%였으며, 성별 분리 화장실이 마련된 곳도 21.6%로 적었다. 또한 방문점검원의 경우, 휴게공간이 없어 방문가정 비상계단 또는 개인의 차에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박 국장은 기업들은 시행령에 앞서 휴게시설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거점별 창고운영(MINI RDC)라는 이름 하에 특정 건물의 지하주차장 주차면 일부를 사업장을 임대하는 식으로, 휴게공간을 만들 수 없게끔 한다는 것이다.

여섯 명이 눕기에 턱없이 좁은 휴게실. 이곳은 총 7명의 노동자가 사용하고 있다. 
한 면세점의 휴게실. 정수기, 의자, 화장실이 한 장소에 구분없이 놓여있다. 
한 면세점의 휴게실. 정수기, 의자, 화장실이 한 장소에 구분없이 놓여있다. 
거점별 창고운영(MINI RDC)을 위해 사측이 임대한 곳. 노란색 화살표가 임대한 사업장이다.  휴게공간은 커녕 제대로된 화장실도 사용하기 어렵다. 
거점별 창고운영(MINI RDC)을 위해 사측이 임대한 곳. 노란색 화살표가 임대한 사업장이다.  휴게공간은 커녕 제대로된 화장실도 사용하기 어렵다. 

김수현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서비스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 사무국장은 “우리 노동자들은 하나에 2000만 원~3000만 원하는 고급 제품을 만지다가도, 쉬는 시간만 되면 턱없이 좁은 휴게실에서 우리의 노동이 얼마나 서러운지 느껴야 한다”고 했다. 김 사무국장은 “화장실과 소파 등 휴게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곳도 있고, 30분 쉬는 시간 중 10분 이상을 이동에만 써야할만큼 사업장과 멀리 떨어진 곳도 있다”고 한 뒤 “일부 면세점은 감염확산 방지를 이유로 휴게시설을 폐쇄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더 좁은 락커룸이나 창고에서 쉬게 되며, 오히려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의 공간인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변인선 서비스연맹 전국학생비정규직노동조합 인천지부 미화분과장은 학교야말로 허울좋은 울타리 안에 최악의 노동조건이 자리잡은 곳이라고 토로했다. 아예 휴게실이 창고에 마련된 경우가 허다하고, 사람이 아닌 물건이 쓸 목적으로 만든 곳이니 냉난방기가 설치 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환복 및 탈의가 필수인 여성 청소노동자에게 별도의 휴게실을 마련하지 않은 채, 가림막도 없이 남성 경비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당직실을 함께 사용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서울시 내 학교 1364곳의 급식실 노동자의 휴게실 실태를 전수조사한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학교급식지부의 발표가 이어졌다. 문영심 지부장과 박문순 전국민주일반노조 서울본부 법규정책국장은 전체 급식실 중 1인당 1제곱미터 이하의 협소휴게실이 있는 곳이 167곳이며, 송파구 잠신고등학교의 경우 9명의 급식노동자가 3.7제곱미터(약 1.1평)에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대량으로 조리하는 과정에서 땀과 물에 젖어 환복이 필수적인 급식노동이지만, 아예 샤워실이 없다고 곳도 152개였으며, 607개교가 급식노동자를 위한 샤워시설이 부족한 상태(3인당 1개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종익 민주일반연맹 전구민주일반노동조합 동국대시설관리분화 사무장은, “동국대학교 대부분의 휴게실이 지하 또는 계단 밑에 있고, 혜화관 6층 화장실의 경우, 장마철만 되면 비가 계단을 타고 내려와 빗물이 들어차고 항상 습해서 곰팡이가 핀다”고 했다. 또한, 2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휴게실이 턱없이 좁아 한 사람만 이용하고, 나머지 한사람은 빈 강의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오 사무장은 또, 근 2년간 서울대학교에서 발생한 노동자의 사망사건을 언급하며 “청소노동자의 휴게실 문제는 꼭 사람이 죽거나 다쳐야 주목을 받는다. 사람이 다치기 전에 미리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학기가 되면, 각종 비품과 학용품으로 가득차는 창고 한켠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휴게공간으로 쓰고 있었다. 이들 노동자들은 비품이 가득할때면 먼지로 고통받고, 비품이 사라지면 외풍이 들어 추위로 고통받는다고 했다.  

산안법 개정 ‘휴게시설 의무화’로 드디어 바뀌나
원청의 설치의무 못 박고, 설치관리 기준 세워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가장 먼저 “노동자에게 휴게실이란, 반드시 법에 명시돼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휴게시설 의무화 조항이 없었다는 이유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자행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사업장의 파견노동자, 하청노동자에 대한 휴게실 설치 의무 주체가 원청 사업주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못 박았다. 여깅 “논의에 참가하다보면 벌써부터 몇 인 이하 사업장은 적용제외하자, 특종 직군에 한해 적용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휴게시설의 설치 기준을 차등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절대 불가하며, 이는 사회적으로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동 노동자, 장소 임대 사업장 등의 휴게시설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요건을 정해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여해야지만, 이동노동에 대한 휴게시설이 실질화 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1인당 면적기준, 동시 사용인원 등을 고려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준이 없다면, 지금까지의 형식적인 운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휴게실 설치장소 등을 정할때는 현장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돼야하고, 설치 이후 관리 및 유지보수에 대한 기준도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고 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이 이날 토론회에서 ‘휴게시설 설치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대한 의견’을 발제했다. ⓒ 송승현 기자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이 이날 토론회에서 ‘휴게시설 설치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대한 의견’을 발제했다. ⓒ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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