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료 짜깁기·멋대로 해석 ··· 금속노조 팩트체크, “악마의 편집, 언론에도 있다”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최근 현대차 등 재벌 대기업이 대주주인 <한국경제>를 비롯한 보수 일간지들이 일제히 반대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 보수언론은 노동이사제 무너뜨리기에 급급해 언론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야 할 ‘팩트체크’를 등한시하고, 빈약하거나 잘못된 근거를 버젓이 게재해 자본의 대변인으로 전락했다. 금속노조는 1월 6일 이들 자본 편향 언론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사실을 따져 발표했다.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이 지난 1월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했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비상임 이사 한 명이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고,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국회가 이 법을 1월 11일 본회의에서 의결하면, 공공기관 120곳은 하반기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

<한국경제> 곽용희 기자는 1월 5일 ‘노동이사제 원조’ 獨은 없애는데 … 韓, 강성노조에 ‘경영개입 칼자루’라는 기사를 냈다. 곽 씨는 ‘노사공동결정 본산인 독일에서 노동이사제가 감소추세인데, 한국이 무슨 노동이사제를 시행하느냐’라며 아직 본회의에 올라가지도 않은 법안에 초를 쳤다.

한국경제 1월 5일 기사. 한국경제 홈페이지
한국경제 1월 5일 기사. 한국경제 홈페이지

곽 씨는 ‘독일의 산업계는 노동이사제 채택을 줄여나가고 있다 … 주주 중심의 주식회사엔 노동이사제가 적합하지 않다는 자체 진단에서다’라고 주장했다. 곽 씨는 ‘독일 금속노조 산하 한스뵈클러재단’ 자료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기사만 보면 곽 씨가 참고했다는 한스뵈클러재단의 보고서가 정확히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알 수 없다. 진짜 존재하는 보고서인지, 꾸며낸 말인지도 알 수 없다. 이래서는 검증이라 할 수 없다

다행히 한 달 전 <문화일보>에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가 쓴 ‘노동이사제, ‘모국’ 獨서도 2000년대 들어 퇴조·회피 … 韓 도입은 시대착오‘ 기사에 힌트가 있었다.

이 기사 본문의 도표와 수치, 인용 문구가 <한국경제> 곽 씨의 기사와 일치했다. 최 씨는 ‘공동결정제도 연구재단인 한스뵈클러재단의 2020년 4월 「공동결정제도의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인용했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보고서 간행 시기와 제목을 근거로 한스뵈클러재단의 홈페이지를 검색해, 두 기사가 공통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공동결정제의 미래 Mitbestimmung der Zukunft」라는 보고서를 찾았다.

금속노조가 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한국경제>에 곽 씨가 쓴 ‘공동결정제도가 생명을 다했다’라는 주장과는 정반대의 내용이 있었다.

보고서는 ‘2004년 유럽연합 질서 안에서 기업이 독일의 국내법을 회피할 수단이 생겼고, 그 영향으로 실제로 적용 기업 수가 줄고 있으니 제도적 대안을 시급히 마련하고, 공동결정제도를 지켜야 한다’라는 노동조합의 주장을 담고 있었다.

위 도표는 「공동결정제의 미래 Mitbestimmung der Zukunft」 원본 13쪽의 그래프다. 그림은 2004년 유럽법원의 개입이 없었다면 유지했을 것으로 예상한 공동결정제도 시행 독일 기업의 수(상단 붉은 실선)를 보여주고, 실제 줄어든 기업 수를 막대그래프로 나타내 비교하고 있다. 재단은 자료를 통해 ‘독일 공동결정제도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을 하루빨리 막아야 한다’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그림=한스뵈클러재단
위 도표는 「공동결정제의 미래 Mitbestimmung der Zukunft」 원본 13쪽의 그래프다. 그림은 2004년 유럽법원의 개입이 없었다면 유지했을 것으로 예상한 공동결정제도 시행 독일 기업의 수(상단 붉은 실선)를 보여주고, 실제 줄어든 기업 수를 막대그래프로 나타내 비교하고 있다. 재단은 자료를 통해 ‘독일 공동결정제도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을 하루빨리 막아야 한다’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그림=한스뵈클러재단

<한국경제>와 곽 씨는 이런 팩트와 설명을 생략하고, 마치 독일 금속노조의 싱크탱크가 노·사 공동결정제도를 포기했다는 듯이 서술했다. 곽 씨는 보고서의 결론과 주장은 무시하고 필요한 부분만 따와 원래 취지를 왜곡했다. 나아가 곽 씨와 <한국경제> 편집국은 왜곡 기사의 논조에 끼워 맞추기 위해 아예 도표를 재편집했다.

한국경제는 위 그래프에서 단지 네 개 연도의 수치만 따서 보고서 내용을 왜곡했다. 악마의 편집이 예능 프로그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한국경제
한국경제는 위 그래프에서 단지 네 개 연도의 수치만 따서 보고서 내용을 왜곡했다. 악마의 편집이 예능 프로그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한국경제

장석원 금속노조 언론부장은 “이제 한국 언론은 외국 매체나 학자를 인용해 기사의 권위를 얻으려는 식민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면서 “나아가 그 권위가 사실이 아니거나 자본을 위해 의도적으로 뒤집은 것이라면 윤리 책임까지 져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장석원 노조 언론부장은 “한국 경제지들이 목 놓아 외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독자가 외국의 보고서 하나 찾아내는 일은 일도 아니다”라며 “한국 언론은 그런 검증작업을 하는 독자가 한 명도 없을 것이라는 착각과 안이함을 새해에 버려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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