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출산 후 산후조리원을 이용했던 새내기 부모라면 집으로 돌아가 신생아를 돌볼 걱정에 잠 못 이룬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집으로 온 첫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밤을 꼴딱 새다시피했다. 육아는 장기전이라는 지인들의 조언이 꼭 아니더라도 바로 다음 날 부랴부랴 산모·신생아건강관리사(산후도우미)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스케쥴이 가능한 관리사분이 바로 오셨고 2주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아이를 돌봐주시고, 식사준비,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을 해주셨다. 우리 부부처럼 당장 양가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조건이라면 관리사분의 도움은 필수가 아닐까 싶다. 갓 태어난 아이와 산모를 돌봐주는 노동, 우리 사회는 이를 ‘돌봄노동’이라 부른다.

‘돌봄노동’이란 넓게는 대면접촉을 기반으로 개인의 역량을 유지·개선하는 모든 노동(England et al.2002)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국내 연구는 일반적으로 아동, 노인, 환자, 장애인 등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노동자로 규정하고 있다.(함선유 2020; 함선유·권현지 2017; 홍경준·김사현 2014 등) 직종은 7차표준직업분류상 돌봄전문직인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직업상담사, 상담전문가, 청소년지도사 등과 돌봄서비스직으로 요양보호사, 간병인, 방과후돌봄교사, 어린이집 또는 학교 보조교사, 산후조리 종사원 등이 있으며, 돌봄단순노무직으로 가사보조원, 파출부, 베이비시터 등이 해당된다.

돌봄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110만명으로 10년 전인 2008년에는 58만명으로 무려 2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전체 취업자 증가인원(350만명) 중 14.9%가 돌봄노동자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들 중 92.5%는 여성이며 56.9%가 50대 이상으로 돌봄노동의 여성화, 고령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노동조건이 열악한 돌봄서비스직, 돌봄단순노무직으로 갈수록 50대 이상 비중이 높아져 돌봄노동 내에서도 연령에 따른 직업 위계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들의 처우는 어떠한가? 돌봄노동자의 2019년 월평균 임금은 152.8만원으로 전체 취업자의 57.3% 수준에 그친다. 돌봄노동자의 약 20%가 저임금 노동자(중위임금 2/3미만)로 돌봄노동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힘든 상태에 놓여있다. 또한 전체 돌봄노동자 중 임시직(특정 사업을 위해 짧은 기간의 근로계약기간을 정하여 일하는 노동자) 비율이 33.1%로 전체 취업자의 임시직 비중보다 2배 가까이 많다.

단적인 예로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공공성 강화를 위해 설립된 모 지역의 사회서비스원에서 종사하는 요양보호사들은 최소 월 40시간만 보장받고 그 외 시간은 서비스 대상자들이 매칭되지 않으면 일을 하지 못하고 쉬어야하는 일종의 임시직에 해당한다. 따라서 언제 서비스가 중단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그렇다고 급여라도 일정하면 다행이지만 매월 서비스 시간에 따라 급여도 들쑥날쑥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약 1년간의 노사교섭을 통해서 시간제에서 월급제(7시간)로 전환하는 성과를 만들었다.

공공기관이 이러한데, 사설기관들은 어떠한가. 돌봄노동자의 대다수는 신청자의 각 가정으로 방문하여 가사도움, 간병 등을 지원하는 ‘재가서비스’노동자이다. 대부분 노동조합에 가입되지 않은 미조직노동자이다. 얼마 전 이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기 위해 무작정 센터 안에서 가판을 차리고 재계약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돌봄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했었다. 상담내용은 “이제 근속에 따라 연차휴가를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연차일수 계산해드립니다” 였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이제야 되찾은 것이다.

한편 이달 초에 요양보호사 한 분의 상담전화를 받았다. 재가요양센터에서 1년간 일하고 이용인이 서비스 중지를 요청해서 계약이 종료되었고, 이러한 일방적인 계약 종료도 억울한데 퇴직금도 지급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주15시간 미만의 서비스만을 제공한 초단시간노동자였다. 센터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계약을 체결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됐던 퇴직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함 없었고 나는 그 분의 실낱같은 기대마저 포기시켜야했다.

단적으로 위 두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돌봄노동자들의 처우가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돌봄노동은 우리 사회의 필수노동이라는 점을 재차 확인함과 동시에 이들의 열악한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 필수노동자임에도 적절한 사회적 지위나 보상이 따르지 못하고, 매년 해고문제가 발생하여 최저임금에 불과한 저임금을 받는 등 이들의 노동은 매우 ‘불안정’하고 ‘저평가’되어 있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대다수의 후보가 돌봄의 국가책임강화를 언급할만큼 그 사회적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서비스원 사례에서 보았듯이 관련된 인프라를 확충하고 서비스를 확대하는 이름만 ‘국가책임제’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돌봄의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받고 온전한 돌봄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돌봄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돌봄노동자들의 처우를 우선적으로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한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적정 수준의 돌봄임금 보장, 노정교섭 법제화, 산업재해 인정 등의 내용을 담은 ‘돌봄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돌봄의 대상이 되고, 인생의 절반 가까이 돌봄을 필요로 한다. 돌봄문제는 우리 삶의 핵심문제로 자리 잡았다.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타인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결국 노동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타인의 돌봄과 지지를 완전히 배제하면 안 된다”는 어느 학자의 주장처럼 이제는 돌봄노동자들을 향한 사회적 돌봄이 시급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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