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부산 반APEC집중투쟁, 21일 여의도 농민 재집결투쟁

2005년 11월 15일, 겨울 칼바람이 뼛속을 시리게 만드는 드넓은 여의도 공원. 그곳엔 정부의 일방적인 쌀개방 정책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분노가 모아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식량 자급률 26%인 나라가 대대손손 옥답을 일구며 생존해 온 농민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소위 '핸드폰 팔아 먹고 산다'는 방식으로 토종 쌀 생존을 완전히 가로막고 나섰다. 이에 절망하고 분노한 350만 농민들이 결사저항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던 중 결국 30대 농군, 정용품 씨가 정부와 자본의 극심한 반농정 정책에 시달리다 못해 달력에 유서를 써놓고 자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누가 이들의 죽음을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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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3만여 명의 농부들이 전국에서 서울로, 여의도로 모여들었다. 국회가 빤히 바라보이는 여의도 공원은 시도때도없이 터져 나오는 농민들의 절규로 가득하다. 오후 1시, 안타깝게 스러져간 농군, 정용품 열사의 한을 되새기며 농민들은 울음을 참지 못한다. 이들은 서울 명동에서부터 전국 시군구읍면리에 이르기까지 한해내내 자식 키우듯 살피고 수확해낸 쌀을 바깥에 야적시켜 놓고 농민들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노 정권과 국회가 쌀개방을 일방적으로 타결할 경우 불을 지를 태세다. 쌀을 태운다는 것은 농부들의 생명을 태운다는 것에 다름없다. 지금 그들이 더 물러 설 곳은 없어 보인다.

오후 3시, 정용품 씨의 시신을 담은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는 이들 모두 눈시울을 붉힌다. "국회로 가자, 국회에 그를 묻자!" 그들 모두는 정용품 열사의 상주였고 또 하나의 정용품인 셈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중무장한 까만 제복의 경찰들이 몽둥이와 날선 방패를 휘두르며 시위대를 자극한다. 여의도 동서쪽 일대를 전의경 이동차량과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병력으로 가득 채웠다. 국민주권을 위임받은 국회로 다가서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오후 3시 30분, 일단의 농민들이 국회진격투쟁에 돌입했다. 통로를 완전히 차단한 공권력과 물대포를 앞세운 차량이 온종일 추위에 떨며 아우성치는 농민들을 향해 찬물을 퍼붓는다. 이건 인권말살적 진압이다. '정치자금이나 받아 처먹는 놈들, 한나라당이나 열우당이나 농민을 위해 한일이 뭐냐, 아들한테 아비를 짓밟으라고 국가가 나서서 선동하는 나라, 좋다 한번 해보자, 350만 농민 다 죽여봐라."며 농민들은 어금니를 문다. 기자 얼굴 옆으로 공권의 박달 몽둥이와 날선 방패가 춤춘다. 머리위로 깨진 보도블록 조각들이 날아 다닌다. 깃발을 부어 잡은 채 항의하던 늙은 농부를 향해 경찰은 방패로 찍는다. 피가 솟구친다. 농부는 그 자리에 힘없이 고꾸라진다. 바닥에는 선혈이 낭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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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공방은 계속됐다. 페트병에 똥물을 담아온 농민들이 폭력 경찰을 향해 똥 병을 던진다. 경찰은 물대포를 앞세우고 1001, 1002, 1003 살인기동대 후미 지휘관은 "돌격, 압박"을 선창한다. 전의경들은 그들의 아비, 어미를 향해 살인적인 진압을 감행한다. 사복 채증조들이 폭력경찰 돌격대 후미에 위치해 불법 사진 채증에 열중한다. 여기저기 흩어진 농민들이 소리친다. "그래 아비를 때리고 짓밟아라. 전쟁 한번 하자. 제대로 해보자. 여기가 38선이냐. 350만 농민 다 모아 전쟁하자."

"여기 있는 모두가 부모 같고 자식 같은 사람들이여. 지금 자식 같은 애들하고 싸움 붙여 논 거여. 더 못 살어. 우리 같은 사람들 죽으라고 하는데 밟고 지나가 봐."

"이게 뭔 일이여. 인간이라면 대화해서 문제를 풀어야지, 서로의 고통을 알아야 하는 법이지, 이 도로를 경찰이 점령할 수 없는 것이지. 세상을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서러움에 복받친 농민들,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든 위정자들의 위선에 분통을 터트리는 농민들이 차라리 죽여 짓밟고 지나가라며 윗옷을 모두 탈의한 채 폭력경찰들과 맞선다. "농민들 고통이 뭔가 알기는 아는가, 왜 부모와 자식사이를 이렇게 잔인하게 만드는 것이냐" 그러나 폭력경찰들은 오히려 항의하는 농민들을 강제 납치, 연행한다. 은행 길 쪽을 가로막은 빈 전경차량 한 대에 불이 치솟기 시작했다.

오후 4시 47분, 격렬한 공방은 쉼 없이 전개되고 있다. 물대포와 방패, 박달곤봉 등을 앞세운 경찰의 잔인한 폭력에 항거하는 농민들이 모래를 던진다. 보도블록을 깨 투석전을 벌인다. 여의도 은행 길 쪽으로는 무장한 경찰병력에 맞서 농민들이 연좌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그 자리에 위치한 1003중대는 '밀고 들어가"라는 한 마디의 지시에 연좌시위를 벌이는 농민들을 밟아버린다. 비무장 농민들을 군화발로 밟아버렸다. 그 와중에 1076중대는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본대회가 열린 여의도 열린공원 쪽으로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간다. 본무대를 겨냥한 폭력 침탈이 시작된 것이다.

17시 24분, 폭력경찰들이 본대회장 쪽으로 급습해 들어왔다. 보다못한 농민들이 가스통에 불을 붙였다. 경찰은 그들 앞에 보이는 농민들을 향해 막무가내로 방패를 휘두른다. 사방에서 머리, 눈이 방패에 맞아 터지고 찢어진 농민들이 쓰러져 낙엽처럼 뒹군다. "119, 119"를 외치지만 차량은 보이지 않는다. 정수리 쪽을 가격당해 계속 피를 뿜어내는 농민이 혼절한 상태다. 본무대 쪽에서 환자를 돌보던 여성농민에게까지 경찰은 방패를 찍는다. 갈비뼈가 으스러진 모양이다.

17시 39분, 더 기댈 곳 없는 절박한 농민들의 저항은 저항의 수준을 넘어 거의 항쟁으로 바뀌는 추세다. 이 곳은 그들의 마지노선이던 셈이다. 사방에서 투석이 시작됐다. 경찰은 한 손으로 들기 어려워 보이는 큰 돌멩이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저항하는 농민을 겨냥해 찍어 날린다. 또한 취재하는 기자들을 향해 경찰들이 돌을 던진다. 기자들이 집단 항의한다.

이 시각 동편, 서편 양방향에 진지를 구축한 폭력경찰들이 또 한 차례 기습적으로 본무대를 향해 돌격을 감행한다. 특공중대라는 1001 기동대를 다시 전격 투입한 것이다. 기자 옆으로 돌이 스쳐 지나간다. 토끼몰이 진압이 시작된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건 모두 쏴라!" 지난 역사의 종심에서 이유도 모른 채 진압군에 의해 학살당한 무고한 시민들이 떠오른다. 너무 많은 중상자들이 속출했다. 의약품도 부족하다. 단순히 지혈압박을 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그러나 경찰의 폭력진압은 멈추지 않는다. 정권과 자본의 힘에 당한 것도 모자라 자식 같은 전의경들을 앞세운 정권의 개, 권력의 시녀에 불과한 공권 폭력 앞에 스러지는 농민들이 급기야 경찰 차량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17시 51분, 국회로 향하는 은행로 쪽에 장벽용으로 세워둔 전경차량 두 대가 불타기 시작했다. 서강대교에서 서울교로 이어진 여의도대로 쪽을 농민들이 점거했다. 정권과 공권의 무자비한 폭력실태를 어떻게든 알려보려는 농민들의 절규인 셈이다. 어느새 하늘은 황혼으로 물들었다. 농민들의 선혈을 닮은 황혼이 붉어지고 별이 떴다. 지상에서는 여전히 경찰의 강경폭력진압이 난무하고 무대 쪽으로 점차 늘어나는 농민 부상자들이 옮겨지고 있다. 부상자들로 채워진 무대앞쪽은 발디딜 틈이 없다. 중상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비상의료용품이 바닥났다. 그러나 중상자들이 누워 미동조차 하지 못하는 이 곳까지 경찰이 치고 들어와 부상자들을 밟아 버릴 기세다.

18시, 국회진격 투쟁이 다시 시작됐다. 더 이상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누가 시키거나 뭐라 하지 않아도 농민들은 그들끼리 대오를 형성해 국회진격 투쟁을 벌이고 있다. 18시 8분, 다시 무대뒤쪽 차도를 점거했다. 푸른색으로 물들인 대형 전농 깃발, 한농 깃발이 대오 선두에 솟았다. 18시 43분, 여의도 네거리쪽, 영등포서 정보과 형사로 보이는 연락책이 농민들 틈에 끼어 현장 상황을 타전하다가 발각돼 붙잡혔다.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사복조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우람한 몸매를 가진 흰 파카 잠바를 입은 남자가 기습, 주변에 서있던 농민과 시민들을 끝까지 붙잡고 늘어진 채 강제 폭력 연행한다. 이 상황을 보던 기자들이 신분증을 요구하며 연행 사유를 묻는다. 현장을 지휘하던 전의경 지휘관이 "경찰관 납치폭행 협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상황을 바로 그 자리에서 지켜보며 취재하던 기자의 눈에는 경찰관을 납치하지도 폭행하지도 않았다. 신분을 묻고 왜 이 자리에 왔냐는 성난 농민의 항의만 있었을 뿐이다.

분노한 농심은 사방에서 불타오른다. 서울교로 이어진 차로 한 편에 전경차량 한 대가 불길에 휩싸였다. 수분 후 그 옆쪽으로 농민차량의 출입을 막고 서있던 경찰 미니차량 두 대에 불이 붙었다. 차량은 완전히 전소됐다.

여의도에 솟아 오른 농민들의 절규와 원망, 분노와 저항은 오늘 날 정권과 자본이 이 나라의 농민들을 어떻게 간주하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물러 설 곳 없는 농민들을 몽둥이와 방패로 찍고 때려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자본의 배를 채우려는 정치자본 권력의 반인간적인 마각을 드러낸 셈이다. 11월 15일, 여의도는 반인륜적인 정치자본 권력의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피에 물든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다. 농민들의 피로 물든 여의도에 항쟁의 바람이 분다. 억압받는 민중이 견디다 못해 목숨을 거는 시대가 바로 오늘이다.

11.15 여의도 농민대회에는 단식중인 민주노동당 강기갑의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비대위 대표와 민주노동당 의원단 일동, 민중연대 정광훈 의장, 문경식 전농의장, 정재돈 농민연대 상임대표, 서정의 한농연 회장, 민주노총 전재환 비대위 위원장 등이 함께 했다. 한편 농민단체와 민주노총 등은 오는 18일 부산광안리에서 반APEC투쟁을,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또 한 차례의 대규모 농민대회를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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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식량주권 사수와 근본적 농업회생을 위한 10대 요구사항</b>

농민단체와 민주노총 등은 11월 15일 <식량주권 사수와 근본적 농업회생을 위한 10대 요구사항>을 채택했다.

하나. 우리 농업의 근본 회생 및 쌀 대란 해소 대책이 없는 졸속적인 쌀 협상 국회비준 강행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농민단체-국회-정부 3자간 협의기구’를 조속히 구성하여 실효성 있는 농업 회생 및 쌀 대란 해소 대책을 즉각 수립하라!
하나. 각종 농업통상협상에 농민 대표의 협상 참여를 보장하여, 실질적인 협상 전략 수립과 대책 마련이 이뤄지도록 하라!
하나. 농업?농촌기본법을 전면 개정하여 식량자급율 목표치를 법제화하라!
하나. 쌀소득보전직불제를 실질적인 농가소득 지지가 가능토록 전면 개편하고, 밭농업직불제를 즉각 도입하라!
하나. 총체적 난맥상에 빠진 양곡 정책을 전면 개편하여 쌀값 보장 및 수급 안정을 도모하라!
하나. 매년 3백만석 이상의 대북 쌀 지원을 법제화하여 통일농업의 기틀을 마련하라!
하나. 학교급식법 개정 및 지자체별 급식조례 제개정을 조속히 추진하라!
하나. 신규 정책자금 금리를 1%로 인하하고 상호금융 저리 대체자금 조건부 지원 조항을 삭제하라!
하나. 식품 업무를 농림부로 일원화하라!

2005년 11월 15일
고 정용품 동지 추모 쌀협상국회비준저지 전국농민대회 참가자일동
[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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