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만의 NOT TODAY
홍석만의 NOT TODAY

19세기 말 미국 서부에서는 술을 일정 한도 이상 마시는 손님에게 점심을 공짜로 주는 술집 마케팅이 유행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공짜점심(free lunch)’이라는 말이 나왔다. 공짜점심으로 술집에 많은 사람이 몰렸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자신이 내는 술값에 점심값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짜로 점심밥을 먹으려면 그만큼 술을 많이 마셔야 했고 술값도 많이 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공짜처럼 보이지만 공짜점심은 없다는 것이다.

시장자유주의 또는 보수진영에서 복지 제도나 공공서비스 확대를 문제시할 때도 ‘공짜점심은 없다’는 이 격언을 쓰곤 했다. 시장자유주의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이 말을 자신의 책 제목으로도 썼다. 정부가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국민들에게 주겠다고 하니, 시장자유주의 진영에서는 ‘공짜점심은 없다’며 후손들에게 빚더미를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다. 요컨대, 재난지원금이나 복지 제도, 공공서비스 제공은 공짜점심 같아 보이지만 결국 정부가 빚을 지고 막대한 국가부채를 남겨 후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공복지가 정말 공짜점심과 같은 것인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는 것을 ‘공짜’라고 한다면, 국가의 재정지출이나 공공복지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국가의 재정은 기본적으로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세금으로 재난지원금과 여러 복지 제도를 시행하고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을 운영한다. 이렇게 국민이 낸 세금을 집행하는 것인데 공짜라니...

복지가 공짜냐?
시장자유주의자들은 술집의 공짜점심 마케팅 사례와 같이 세금은 술값이고 복지야말로 술값에 따른 공짜점심이라고 말한다. 이들 말대로 복지가 공짜점심 같은 것이라면 가령 세금환급도 공짜점심이 된다. 정부가 세금 많이 낸 사람들은 연말에 정산해서 세금을 더 많이 돌려준다는 공짜점심을 내걸고 소득세를 높게 받은 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공짜점심은 없는 셈인데, 세금환급을 많이 받으려면 그만큼 세금을 더 내야하고 이미 낸 세금에 환급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손해보험을 들었는데 사고가 나서 보험금을 받게 되면 그것도 공짜점심이 된다. 물론 여기서도 공짜점심은 없다. 사람들이 내는 보험료에 이 보험금이 포함되어 있고, 더 많은 보험금을 내걸어 더 많은 가입자를 모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낸 세금보다 지출해야 할 돈이 더 많아져 정부가 빚을 졌으니 공짜점심처럼 (숨어 있는) 대가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맞다. 복지를 받던, 공공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하든 세금보다 더 큰 비용이 들었다면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는 것은 맞다. 이 때문에 ‘공짜점심은 없다’라는 경제학 격언은 기회비용의 의미를 일컫는 이야기가 됐다. 여러 선택지가 있을 때, 특정선택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다른 선택의 가치를 기회비용이라고 한다면, 공짜점심이 없다는 얘기는 반드시 기회비용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술집 사장이 돈을 더 벌기 위한 ‘공짜점심’과 국가의 ‘공공복지’는 성격과 목적이 완전히 다르며, 이 경우 (주류 경제학에서) 기회비용은 서로 헤아릴 수조차 없이 크다. 공짜점심의 기회비용은 기껏해야 전날 더 마신 술값 정도의 가치이지만, 공공복지의 기회비용은 더 늘어난 국가부채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 손실이나 생활 파탄이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부채 즉, 세수를 초과한 정부지출의 증가가 기회비용이라면 이때에는 공짜(점심)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증세 문제가 된다. 세수를 초과한 문제는 세수를 더 증가시키면 되고, 결국 누가, 어떻게 대가를 지불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이론적으로도 공공복지 지출의 기회비용을 추가 지출, 국채 증가로 본 것은 잘못됐다. 이것은 기회비용이 아니라 비용 그 자체이며, 비용을 화폐로 표현한 ‘회계비용’이다. 즉, 회계비용을 기회비용인 것처럼 바꿔놓아 공공복지를 공짜점심으로 혼동시켜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복지를 술집의 공짜점심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복지 지출을 반대하기 위한 레퍼토리이며, 복지 지출의 추가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부자와 시장자유주의 진영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주식·코인·부동산, 공짜점심인 줄 알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 그러나 정작 공짜이기를 바란 것은 공공복지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주식, 코인, 부동산 시장에서는 시장 참가자 누구에게나 공짜점심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리딩방에 잘 들어가 투자만 잘하면 나도 한몫 챙겨 나올 수 있는 대박 시장으로 보였다.

게다가 이 시장의 공짜점심 마케팅은 옛날 미국 서부시대보다 더 특별했다. 일정액 이상의 술을 마신 사람은 공짜점심을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 마신 술값도 모두 외상으로 해줬다. 1억 원을 빌리면 주식과 채권, 코인, 부동산으로 떼돈(공짜점심)을 벌 수 있고 원리금을 몇 년(길게는 40년)에 나눠서 상환해도 된다는 것이다. 돈 안 가져가면 바보, 집 안 사면 벼락거지가 될 것처럼 떠들어 대는 약장수들이 전국에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가계의 금융화가 진척될수록 가계부채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만 갔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 1600조원이던 가계부채가 2021년말 1862조원으로 코로나 2년 동안 260조원 넘게 늘었다. 260조원은 전국의 1천만 가구가 가구당 2600만원씩 빚을 졌다는 얘기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을 더한 주택 관련 대출은 전체 가계대출의 67%를 차지하고 기타대출 중 증권사를 통해 주식과 채권시장에 대출된 것도 10%가 넘는다. 즉, 가계대출의 80%가 주식, 코인, 부동산 등 금융과 자산시장에 대출됐다. 그만큼 가계부채가 금융, 자산시장 대출로 이루어졌다.

역시 공짜점심은 없었다. 아니 이곳은 공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점심도 아니었다. 잘 차려진 맛있는 밥상처럼 보여 대박 수익을 얻을 거라 기대했지만 막상 숟가락을 들고 입에 넣어보니 이것은 음식이 아니라 썩고 비린내 나는 생선 대가리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식은 2021년 6월 종합주가지수 3,313으로 정점을 찍은 후 추락을 거듭하며 현재 2300대에 있다. 비트코인도 2021년 11월 8100만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해 현재 2500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금리가 오르면서 주택시장도 매물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하고 있고, 벼락거지를 피하고자 영끌로 아파트를 구매했던 이들은 대출 이자가 치솟으면서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고 있다.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르고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하고 깊어질수록 이 시장들은 날개 없는 악마처럼 더 추락할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 공짜점심의 외상값 청구서
에너지, 식량 가격을 필두로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고 이제 수요까지 줄면서 경기침체의 그늘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교란과 여파도 그다지 해소될 전망이 없다. 무엇보다 기업이 경기침체의 전망이 짙어지면서 투자가 늘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공급은 수요보다 더 위축될 전망이다. 그렇게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전망이 커지면서 통화당국은 금리를 계속해서 올리고 있다. 통화량을 줄여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라는데, 이건 통화량 감축보다 부채를 조정하는 역할이 더 크다. 금리인상으로 통화량이 조정되는 범위가 넓지 않다. 기업대출에서 이자율을 올린다하더라도 어차피 기업이 투자를 꺼리고 있어서 금리인상이 대출 규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가계대출의 80%도 주택담보대출과 주식과 채권을 담보로 한 금융, 자산시장 대출이기 때문에 금리인상에 따른 통화량 수축이 실물시장보다는 자산시장, 금융시장 쪽에서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결국 금리인상은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물시장에는 큰 영향을 못 미치거나 제한적이고 부동산, 금융 등 자산시장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다(물론, 자산시장 위축과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부담의 증가가 가처분소득을 줄이고 실물 수요를 약화해 물가를 낮추게 하는 간접효과가 있다). 금리인상에 따라 직접적으로 유동성이 위축되는 것은 자산시장이며 여기에 대출된 자금들은 자금 회수나 마진콜(증거금 인상, 강제청산) 대상이 된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할수록 금리는 더욱 올라가며 이에 따른 대출조정, 부채조정은 훨씬 더 큰 규모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바로 공짜점심을 위해 먹은 외상 술값의 청구서이다. 그리고 이것이 서민 가계와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올라탄 대가다. (언젠가 현금이 될 것 같은 미래 수익에 기반한) 가공자본으로 자본간 경쟁에서 지고 이제 청산의 대상이 되었다. 현금이 될 줄 알았던 가공자본의 헐벗은 소유주들에게 이제 거꾸로 이를 결제하라며 현금청산을 강요받고 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금융화는 노동자 가계소득 증가 수단이 아니라 ‘수탈의 도구’이다. 경기가 활황일 때 시장으로 모아 놓고, 불황일 때 쓸어 담는다.

공짜점심은 없다. 특히 이윤을 놓고 경쟁하는 자본끼리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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