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의 영화직설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1988년 12월 22일, 브라질 아크레 지역의 작은 도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당시 44살이던 치코 멘데스는 샤워를 하러 뒷마당으로 가다 산탄총을 맞고 고꾸라졌다. ‘아마존의 간디’라는 애칭을 가진 남자의 피가 뒷마당 진창을 적셨다. 며칠 후 그의 장례식에서 젊은 룰라(브라질 전 대통령)가 관 앞에서 비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치코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이 나라 전체의 신앙고백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 진보정당, 노동조합 운동의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코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브라질 노동계급 해방의 시작입니다.”

아마존 열대우림 문제를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치코 멘데스, 그는 고무 채취 노동자였다. 9살 때부터 고무 채취 일을 했고 농장주들이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을 불태우는 끔찍한 광경을 보며 자랐다. 글을 읽으면 저항할까봐 노동자의 자식은 학교가 금지돼, 읽고 쓰는 법도 몰랐다. 뒤늦게 그에게 세상의 지식을 속삭여준 이들은 군사독재 탄압을 피해 정글로 숨어 들어온 해방신학자들과 좌파 엘리트들이었다.

1960년대부터 브라질의 고무 산업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동남아 쪽으로 고무 산업이 옮겨가고 국제 고무 가격이 폭락하면서 플랜테이션 자본은 대거 축산업으로 옮겨갔다. 밀림이 불타오르고 고무나무가 밤낮으로 쓰러졌다. 아마존 파괴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1985년 브라질 전역의 고무 채취 노동자들의 평의회가 결성됐는데, 축산업과 광산 개발 등으로 인한 밀림 파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고무나무와 밤나무가 우거진 풍요로운 공유지는 원주민과 노동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지만, 목장에서 기른 소는 오직 목장주와 대기업에만 이윤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평의회 결성에 앞장섰던 치코 멘데스는 노동자들과 함께 전기톱과 불도저에 단호히 저항했다. 전기톱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벌목 노동자들에게 생태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설파할 정도로 강인한 뚝심의 소유자였다. 지주들의 온갖 협박에도 국제 환경운동과 연대하며 아마존 문제를 세상에 알렸고, 당시 막 건설된 노동당(PT) 지역 지부를 조직하며 룰라를 비롯한 젊은 좌파들에게 아마존과 생태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생태적 경계 안에 인간의 삶과 노동의 조건을 착근시켜야 한다는 명료한 자각.

“처음엔 고무나무 때문에 싸우는 줄 알았습니다. 그 다음엔 아마존을 구하기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인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끈질긴 비폭력 저항 끝에 치코 멘데스는 해당 지역에서 벌채와 광산 추출을 금지하는 ‘채굴 보존 지역’ 법제화의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었다. 결국 분노한 이웃 목장주 아들이 산탄총을 들고 그를 찾아왔던 것이다.

1994년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과 라울 줄리아가 의기투합해 제작한 HBO TV영화 <The Burning Season>은 치코 멘데스의 일대기를 다룬 유일한 극영화다. 불타오르는 아마존을 헬리콥터 위에서 뿌듯하게 바라보던 백인 대지주가 ‘저 불길은 미국과 유럽의 소고기를 위한 미래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내내 전기톱과 불도저의 윙윙거림, 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이미지로 점철되어 있다.

우여곡절 많은 영화였다. 브라질 지주들과 축산 기업 협박으로 멕시코에서 촬영됐다. 게다가 은퇴를 앞둔 거장 프랑켄하이머 감독은 기력이 쇠했고, 위암으로 고통 받던 주연배우 라울 줄리아는 줄곧 창백한 기색으로 생의 마지막 연기를 펼쳤다. 뛰어난 수작은 아닐지언정, 또 TV영화라는 한계로 인해 금세 잊혀졌지만, 아마존 파괴와 치코 멘데스라는 존재를 세상에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95년 이 영화를 비디오로 처음 봤을 때의 전율의 여진이 여전하다. 소고기와 콩을 위해 열대우림이 불타오르다니, 가난한 원주민과 노동자들이 산탄총과 전기톱에 쫓겨나다니. 아마존과 생태 문제, 그리고 치코의 치열한 삶을 배운 처음의 텍스트였다.

비극은 현재진형형이다. 치코 멘데스처럼 아마존을 지키다 살해된 사람이 지금껏 천 명이 넘는다. 올해에도 27명이 희생됐다. 보우소나루 집권 동안 수십 명이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룰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었다. 2002년 대통령이 된 후 아마존 담당 부처를 신설하며 치코 멘데스의 이름을 따왔다. 또 치코 멘데스의 동지였던 마리나 실바를 환경부 장관에 위촉했다. 룰라 재임 기간, 아마존 열대우림 훼손은 80% 급감했다.

반면, 육군 대위 출신의 보우소나루는 집권하자마자 아마존 담당 부처를 가장 먼저 제거했다. 아마존 수호라는 치코 멘데스의 전설을 끔찍히 증오했다. 임기 내내 목장주와 기업농, 다국적 금융자본을 위해 아마존을 불태웠다. 자그마치 한국의 면적 크기. 카본 브리프에 따르면, 보우소나루가 재집권하면 아마존 밀림의 90%가 황폐화된다. 한국 면적의 7배 이상의 열대우림이 사라지게 된다.

엊그제 룰라의 근소한 승리로 마감된 브라질 대선 1차 결선. 파시즘와 군부 쿠데타 염려 속에서 2차 결선을 치뤄야 하는 형국이다. 세계는 이를 두고 ‘기후 대선’이라고 말한다. 지구에서 바다 다음으로 탄소를 가장 많이 빨아들이는 게 아마존. 기온 상승과 삼림벌채 스트레스로 이미 탄소흡수를 포기하고 외려 탄소배출원으로 흑화되고 있다. 아마존이 끝내 사바나로 변하면 기후재난의 폭발력은 상상을 불허하게 된다.

올 4월 치코 멘데스의 동상이 훼손됐다. 파시스트들의 사보타지였다. 분노한 룰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치코 멘데스를 살해했지만 그의 사상마저 죽일 순 없습니다.” 아마존을 다시 복원하겠다 공언했다. 현재 브라질 유권자의 81%가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아마존 문제를 지목한다. 이 선거 결과에 아마존의 운명이 달려 있다. 보루소나우라는 탄소폭탄을 제거하고 파시즘의 도화선을 절단하며 민주주의와 아마존을 지켜야 되는 전 지구적인 선거다.

지금 현재에도 남반부 땅과 숲을 지키다 매주 3명 이상의 원주민과 환경운동가가 살해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무려1,733명이 희생됐다. 자본의 탐욕과 북반부 부자 국가들의 수요를 위해 마지막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다. 자본 축적을 위한 식민지 수탈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다. 소고기, 콩, 목재, 팜유, 원유, 금속, 희토류…… 10분마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 면적의 열대우림이 쓰러진다. 열대우림의 경계를 따라, 생명과 자본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경계선이 환경-기후운동의 알파일 것이다. 일찍기 치코 멘데스는 우리에게 그 진실을 이렇게 증언했다.

“계급투쟁 없는 환경운동은 그저 정원가꾸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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