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노동자의 안전한 활동공간을 위한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평등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최소한의 약속”
‘평등수칙 종이 한장 읽는 게 무슨 소용’이냐면···산별노조 개선 사례 증언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불평등 '개선'을 촉구하는 참석자들. ⓒ 김준 기자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불평등 '개선'을 촉구하는 참석자들. ⓒ 김준 기자

113만 민주노총 조직 구성원 간 평등 실천을 위한 다짐이자, 나아가 모든 노동자의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약속인 ‘민주노총 평등수칙’이 발표됐다. ‘모든 노동자의 안전한 활동공간을 위한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이 17일 오전 11시 민주노총 12층 회의장에서 열렸다.

‘민주노총 평등수칙’은 지난 8월 18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채택된 바 있다. 평등하고 안전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실천의 내용을 담은 이 수칙에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국적·인종·나이·성적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고, 성 역할에 근거한 업무 배분, 권위주의적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수칙은 민주노총의 회의와 행사, 수련회 등에 적용될 예정이다.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 김준 기자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 김준 기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여는 발언을 통해 “민주노총이 발표하는 평등수칙은 평등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함께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라며 “모든 회의나 행사시 자료집에 명시하거나 부착하고, 시작할 때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5분 정도의 시간만 내도, 행사 내내 사람들의 입에서 평등은 회자됐다. 부적절한 언행이 있으면 누군가 지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변화가 시작되는 모습이었다.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성차별을 포함한 모든 차별에 반대하고 인권이 존중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 낡은 사고와 습관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양 위원장은 전했다. 아울러 민주노총부터 바꾸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며 더욱 적극적이고 전면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을 낭독하는 민주노총 박희은 부위원장. ⓒ 김준 기자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을 낭독하는 민주노총 박희은 부위원장. ⓒ 김준 기자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노동 현장에서 누구도 차별과 혐오로 고통받지 않고 존재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를 민주노총은 구체적인 평등수칙을 발표한다”며 “평등수칙은 단순한 제정과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노동조합 활동에서 이행됨으로써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사회를 바꿔나가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평등수칙의 의미는 민주노총 밖에서도 의미를 갖는다고도 설명했다. 이들은 “정부는 여성·장애인·성소수자·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타파와 성평등을 투쟁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역할은 이로써 더욱 분명해졌다”면서 “민주노총 조합원의 일터에서부터 구조적 차별을 깨고 연대로 나아가겠다”고 방향을 설계했다.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 ⓒ 김준 기자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 ⓒ 김준 기자

‘평등수칙 종이 한 장 읽는 게 무슨 소용’ 이냐면···산별노조 개선 사례 증언
‘아줌마, 아가씨, 이모님’ 사라지자 남성 향한 ‘김씨, 이씨, 어이’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평등수칙의 적용은 어떤 방식으로 실제 현장을 바꾸어 낼까. 앞서 평등수칙을 제정해 활용하거나 평등 실천을 진행해 현장을 개선한 산별노조의 증언이 이어졌다.

건설산업연맹은 2년 전 ‘조직문화 개선 및 호칭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시행했다. 현장이나 조직 내 여성 노동자 호칭에 대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남한나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수도권남부지역본부 여성위원은 이 캠페인을 통해 “아줌마, 아가씨, 어이, 이모, 여사님 등으로 불리던 여성 건설노동자들이 이 활동을 통해 ‘제대로 불러달라’고 말하게 됐고, 이제는 000씨, 목수님, 00반장님 등으로 불리게됐다”고 설명했다.

더해 남 여성위원은 “비단 여성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김씨, 이씨, 어이 라고 부르면서 하대하던 건설현장 전체의 이름 부르기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증언했다. 한 집단의 평등이 모두의 평등으로 이어진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제시된 것이다.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건설노조 수도권남부지역본부 남한나 여성위원. ⓒ 김준 기자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건설노조 수도권남부지역본부 남한나 여성위원. ⓒ 김준 기자

최근 산별 평등수칙을 채택한 금속노조도 발언에 나섰다. 권수정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성별, 나이, 직책에 따른 차별이 우리(노조) 안에도 있고, 저는 이것이 부끄럽지 않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주류인 2022년 한국사회에는 온갖 차별과 혐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뒤 “이것이 기본값이다. 금속노조의 평등수칙은 차별과 소외가 ‘제로’인 조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우리 안에 차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 오류와 한계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해서 성찰하겠다는 결의”라고 짚었다.

이어 “평등수칙을 채택한 ‘이 수칙을 위반하면 징계하나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면서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아울러 “평등수칙은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람을 발본색원해 징계하기 위함아니라,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고 수평한 관계를 만들어 조직을 강화할 것인가의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수칙은 금속노조의 모든 공식회의 회의자료 표지 뒷면에 첨부돼있다. 12개국어로 작성된 수칙과 수어통역으로 제작된 동영상은 금속노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전교조 손지은 부위원장. ⓒ 김준 기자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전교조 손지은 부위원장. ⓒ 김준 기자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금속노조 권수정 부위원장. ⓒ 김준 기자
17일 민주노총 12층에서 열린 민주노총 평등수칙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금속노조 권수정 부위원장. ⓒ 김준 기자

박시현 공무원노조 부위원장은 “평등수칙 하나 만들어서 무슨 효과가 있을 수 있겠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수칙을 읽기만했는데도 조심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려는 태도가 보였다. 적어도 수칙을 만들고 시행하기 전에 행해지던 반말, 욕설, 발언독점 등은 없어질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손지은 전교조 부위원장도 “어찌 보면 종이 문서에 불과할 수도 있을 약속문이 효과가 있을까 우려도 했지만, 생각보다 언어의 힘은 강력했다”며 “고성을 지르거나 위압적인 태도로 타인을 억누르는 발화를 하지 않도록 서로가 감시하고 조심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고 보탰다. 전교조는 평등의 약속문을 대의원대회, 조직 내 주요 의결단위 회의, 각종 연수 때마다 자료집 앞장에 첨부하고 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은 평등의 취지에 맞춰 수어통역이 제공됐다. 민주노총 행사 가운데 대규모 집회 외에 수어통역이 배치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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