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2017년 1월 1월, 롯데그룹은 대기업들 가운데 처음으로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남성 노동자들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장면을 TV광고로 내보이는 등 가족친화적 기업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법적으로 육아휴직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회사 눈치를 보느라 마음껏 이용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의무적으로 출산 1-2년 안에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제도가 시행되고 난 후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의 배우자 10명 중 7명이 ‘매우 도움이 됐다’고 답하는 등 긍정적인 평가가 90%에 달했으며,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 육아휴직 문화가 자리잡는데 효과를 준 것은 사실이다.

2022년 8월, 육아휴직 뒤 복직을 8일 앞두고 있는 한 남성은 기업의 인사 담당자로부터 서울의 한 지점으로 발령날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문제는 이 노동자는 부산에 거주하고 있었다. 차로 5시간, 400km 넘게 떨어진 거리의 지점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육아휴직 사용을 이유로 불이익을 준 것인지 대한 의혹에 회사측은 복직 시점에 해당 노동자가 근무할 수 있는 곳 중 유일한 곳이었고 육아휴직과는 무관한 인사발령이었다고 해명하였지만, 부득이하고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하기에는 상식적인 범위를 넘어섰다. 당사자와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회사의 모습에서 육아휴직과 관련한 조직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논란이 된 회사는 위에서 언급한 남성 육아휴직이 의무화되어 있는 롯데그룹의 계열사인 롯데쇼핑이다. 

2015년에도 롯데쇼핑은 육아휴직 뒤 복직한 노동자를 기존 보직보다 낮은 직급으로 인사 발령하였고, 부당전직 소송에서 1·2심은 회사의 손을 들었지만 올해 7월 대법원은 부당한 전직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였다. 남녀고용평등법이 금지하고 있는 부당전직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 기준을 밝힌 첫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본의 아니게 특정기업만을 비판하게 되었는데, 롯데그룹을 겨냥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고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가족친화적 기업을 표방하고 있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이러한데, 다른 기업들은 어떠하겠는가 불보듯 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역시나 통계청 자료(2021.12.21.)에 의하면 출생아 부모 중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직장인이 실제 육아휴직을 한 비율은 24.2%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2011년 14.1%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직 전체 출생아 부모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치이다.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보면 여성은 63.9%인 반면 남성은 3.4%에 불과했다.

직장인들이 육아휴직을 할 때, 법과 제도의 유무보다 경영진의 인식과 직장의 분위기가 더 많은 영향을 준다. 기업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격차도 매우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성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나마 마련되어 있음에도, 조직의 문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구성원들 인식의 문제도 있겠지만 법과 제도를 위반함에도 처벌되는 사례가 적기 때문이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 제3항과 제4항에서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으며, 육아휴직 종료후에는 휴직전과 동일한 업무 또는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노동청에 어렵게 신고를 하더라도 사업주의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직장갑질119’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모성보호 관련 노동청 신고 처리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9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접수된 신고 1천385건 가운데 처벌받은 경우는 121건으로 전체의 8.7%에 그쳤고, ‘신고의사 없음’이나 ‘법위반 없음’, 각하 등으로 별다른 처분 없이 종결된 경우는 82.3%인 1천 140건에 달했다. (참고기사 “10월 출산·육아로 직장내 불이익 신고해도 처벌은 8.7%뿐”, 연합뉴스. 2022.10.16.) 더욱이나 위에서 언급한 400km 떨어진 지점으로 발령난 노동자의 경우는 지점배치 등 인사발령과 관련한 모든 정보는 회사가 가지고 있기에 불이익 여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육아휴직제도를 비롯한 모성보호와 관련된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기업홍보용 보여주기식이 아닌 경영진 뿐만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가족친화적 조직문화로의 개선이 이루어져야한다. 그리고 남녀고용평등법과 관련된 분쟁의 사용자 입증책임을 엄격히 적용하여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려는 시도를 차단하고, 사업장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등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이태원 사고로 사망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