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연구원 ‘산업재해 조사표 문제점과 개선과제’ 이슈페이퍼 발행
정부가 강조하는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체계”에 노동조합의 자리는 협소

민주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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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며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체계의 효과적 운영’을 핵심 기조로 삼았지만, 산업재해 조사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조사로 전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지난달 30일 ‘산업재해 조사표의 문제점과 개선 과제’ 이슈페이퍼를 발행하며 산업재해 조사표의 문제점과 해외 국가 사례 분석을 토대로 산업재해 보고 제도를 개선하고, 산업재해 조사표 양식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의 로드맵 내용은 노동조합 참여에 관한 내용이 부실하게 담겨있다.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체계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영국을 비롯해 주요 선진국들은 자율적 안전관리체계의 효과적 작동을 위해 노동조합의 참여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고로부터 학습하고,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보건 활동은 바로 산업재해 조사인데, 한국은 산업재해 조사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배제돼 반쪽짜리 조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사업장에서 산업재해 조사표를 작성·제출 시 노사 공동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노조 참여 없이 조사표가 제출된 경우, 산재 미보고로 간주해 과태료 부과 ▲관리적 요인, 작업·환경적 요인, 설비적 요인, 인적 요인으로 재해 원인 작성란을 재구성하는 등 양식을 개선해 산재 상황의 정확한 기술 및 원인 분석 유도 ▲사업자로 한정된 산업재해 보고 주체를 노동자, 노동조합까지 확대 ▲중장기적으로 산업재해 조사표에 근거한 국가 산재 통계(산업재해 발생보고 현황)의 분석 방식 다변화 및 활성화를 4가지 개선과제로 제시했다.

현행 산업재해 조사표에 대해서 이 연구위원은 우선 ‘형해화된 노조 대표 참여’를 지적했다. 산업재해 조사표에 노동조합 대표의 서명을 받게끔 법적으로 의무화됐으나, 현실에서 이는 담보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의무대상인 사업장에서는 과반수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중대재해의 원인 조사 및 재발 방치대책 수립에 관여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사업장에서조차 일반 산재의 원인 조사에 노조가 개입할 법적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현행 산업재해 조사표는 재해 원인 규명을 저해하는 부적절한 보고 양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봤다. 산업재해 조사표는 크게 사업자 및 재해자 정보, 재해 발생 개요, 발생 원인, 재발 방치 대책 등으로 구성되는데, 재해 발생 원인을 빈 칸 하나에만 작성하도록 돼있다. 재해 원인 조사는 산재 발생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다음 사고를 예방하는 학습 과정이어야 하나, 지금 방식으로는 작성자가 주목한 내용을 중심으로만 단편적 원인을 분석할 개연성이 크며, 대부분 사업주는 작업자 과실을 원인으로 작성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서구 여러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산업재해 발생 보고의 주체를 사업주로만 한정하고 있다는 비판도 따랐다. 산재의 공상 처리를 비롯해 산재 은폐로 인한 산업재해 미보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누적된 사회적 병폐로서 보고 주체를 노동자와 노동조합으로 확대함으로써 산재 은폐를 막고, 사고 원인 규명이 보다 정확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 해외 국가들의 산업재해 보고 사례 분석도 내놨다. 산업재해 보고 양식이 가장 체계화된 영국의 경우에는, 재해 발생 상황의 구체적 장소, 재해 당시의 구체적 작업 유형, 15개의 재해 발생 유형, 16개의 노동 과정 유형, 사고 배후 원인에서의 핵심 요인 등 작성자가 사고 원인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작성할 수 있게 돼있었다. 재해자 정보에는 생산과정에서 피해 입을 수 있는 훈련생, 자영업자, 일반 시민까지 재해 대상 확대하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했다.

독일과 캐나다는 산업재해 보고 양식에 노동조합의 확인 과정이 있는 사례로서, 이들 국가는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산재 조사 체계가 확립돼 있음에도 산재 보고 양식에 노동조합 내지 노사협의회, 직장평의회 등의 서명(확인 절차)을 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은 한국과 달리 산업재해 신고 주체를 다변화한다는 점도 지목했다. 미국은 사업주가 산재 보고를 하고 있으나, 산재 추적 강화를 위해 모든 노동자에 의한 보고 제도 역시 시행중이다. 특히 미국은 법에 따라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보복’에 대한 우려 없이 산업재해를 보고할 권리가 있음을 고지해야 한다고 연구위원은 전했다.

영국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의한 산업재해 및 사업장 위험에 관련된 보고 제도를 운영 중이며, 일본도 노동자가 직접 노동관서에 노동안전 문제에 관련해 사업주의 법적 위반 보고할 수 있는 제도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은 산재 의사 제도를 통해 의사가 산재 노동자 진료 후 관련 정보를 정리해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 연구위원은 “산업재해 조사표는 국가 산재 통계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사업장 내 사고 조사 및 재발 방지에도 기여하기에 철저하게 작성돼야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 참여를 배제한 채 사업주 단독으로 작성 및 제출해도 무방한 현행 제도상의 문제, 부적절한 보고 양식 등으로 인해 산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자료로서 보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해 “정부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통해 천명한 것처럼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정착과 발전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노동조합을 안전보건활동의 주체로 인정하고, 실질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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