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톡의 노동자 마음건강
통통톡의 노동자 마음건강

우리가 잊고 사는 게 있다. 일에 쫓기고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고, 죄 없는 아이들은 학교 짱의 눈치를 보며 등교하고 있고, 상사의 이유를 없는 폭언에 아무 소리 못하고 당하고 있는 직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사건의 배경이 우리가 늘 지나던 그곳과 아무리 비슷해도 눈에 힘 하나 들어가지 않은 자신을 익숙하게 만나곤 한다. 폭력은 이미 폭력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무심하게 지나치려 해도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만성이 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데 에너지가 모자랄 판이다. 폭력에 대응할 여력은 없다. 화를 낼 기운조차 아껴 써야 하기 때문이다.

화는 정말 잘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은지(가명)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는 할 말을 못하니까, 진짜 열 받아요. 고객들은 자기 할 말 다 하고 그러니까. ‘고객님 제가 그럼 뭘 해드릴까요?’ 하면, ‘야 이 X아, 너 사표 써’ 이러는 거에요. 진짜 그럴 때는 자존심 엄청 상하죠.”

은지씨는 당시 인간관계나 환경, 또는 자기 자신에게 무언가 잘못된 일이 일어났다는 신호(‘화’라는 감정)가 왔지만 어떤 대응도 못할 처지에 놓여있었다. 지나간 이야기니까 자존심이 상했다는 말을 할 수 있었지 ‘너 사표 써’라는 말을 직접 들었을 당시에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다스리느라 숨만 몰아쉬었다고 한다. 동료들도 콜 받느라 정신이 없어 은지씨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고, 은지씨 역시 다음 콜 받느라 자기를 보살필 여유가 없었다.

노동자가 폭력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화라는 감정과 연관이 있다. 화는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리게 해주는 신호인데, 그냥 두면 마음이 망가지니 화라는 에너지를 이용해 전투를 시작할 수 있다. 기술도 필요하다. 힘을 집중해야 할 때는 집중하고, 아껴야 할 때는 아끼고, 여러 곳을 동시에 보살펴야 할 때는 관심을 나누어야 한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참거나 지르지 않고 균형을 잡는 것이다.

임금을 받고 일하거나 대기업의 하청구조 아래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은 말 못 할 상황에 놓이게 될 확률이 아주 높다. 제도 자체가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고, 말 잘 못 했다가 낭패를 본 경험도 말문을 막는다. 화병이 생기기 정말 좋은 환경이다. 이때 화를 내 입맛에 맞게 이용해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참고 넘어가는 기술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할 말을 하는 용기 모두 화가 가진 에너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폭력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에너지가 오히려 동료들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에너지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애정을 가지고 살피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쉬는 시간에 주변에 동료들에게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미친 놈이 그런 놈이 있어?’라고 같이 욕해주고 고생했다고 위로도 해 주었어요. 막 이렇게 옆에 직원하고 얘기하다 보면 어느 정도 좀 풀려요. 서로 그런 걸 아니까. 집에까지 가져가면 좀 그렇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조언도 해 줘요. 교육 시간에는 절대 안 나오는 노하우도 알려줘요. 그런 것들이 되게 영향이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근로시간 면제라는 거를 썼어요. 노조를 통해서. 두 시간인가 세 시간 일찍 퇴근해서 상담받고 바로 퇴근했어요. 내 마음을 표현하면서 안정되는 걸 느꼈어요. 내가 막 자꾸 사람들 눈치도 보고 자꾸 아파한다라는 걸 알게 됐어요. 내 마음을 나쁘고 좋고 간에 표현을 해야 되는데, 그러지 않고 자꾸 가다듬듯이 그렇게 하는 거 같아, ‘내가 그런 사람이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화는 참는 것도 지르는 것도 아닌 균형을 잡아 잘 써야 하는 소중한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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