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의 제조업체 '아사히글라스'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불법파견(파견법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한 4개의 재판을 뒤엎고 대구지법이 사측에 무죄선고를 내렸다. 소홀한 증거검증과 기존 판례에 대한 제대로된 검토도 이뤄지지 않은 채 윤석열의 노동개악에 발맞춘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판이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나왔다.

22일 오전 11시 대법원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주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의 회견은 지난 17일 아사히글라스 파견법 위반 혐의에 대해 대구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이영화)가 무죄 판결을 내린 데에 따른 것이다. AGC화인테크노코리아(아사히글라스)는 구미공단에 위치하고 있다. 경북에서 최대의 외국인투자기업으로 LCD 유리기판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9년 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문자 한 통에 집단해고를 당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투쟁에 나서며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1심과 2심, 임금소송 1심과 형사재판 1심 네 번의 재판에서 모두 사측 아사히글라스가 불법파견을 저질렀다는 판결을 받아낸 바 있다. 이같이 불법파견이 자명한 상황에서 대구지법의 무죄선고는 재판부가 덮어놓고 막무가내로 ‘면죄부’를 준 셈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은 대구지법을 규탄하고 대법원에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다. 이번 판결은 제조업에 파견을 금지하는 파견법과 2010년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뒤엎는 법의 취지에 반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이번 재판부 배당 판사 중 아사히글라스 재판을 맡고 있는 태평양 로펌 변호사 출신의 판사가 함께 있어서 부당한 판결이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참여하고 있는 비정규직 당사자들을 비롯한 40여 명이 모여 법원의 편향성과 위법적 판결에 대해 규탄했다.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장은 최근 재판의 판결문을 언급하면서 “2017년, 아사히 파견법 위반 사건을 검사가 처음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을 때 썼던 불기소이유서와 내용이 똑같았다. ‘원청의 검수권과 지시권이 있다는 주장’은 재판장에서 김앤장, 태평양이 주구장창 사용하는 단어”라고 한 뒤 이 단어만 전면 허용된다면 모든 불법파견은 무력화 될것이라고 우려했다.

더해 “원청에서 검수권과 지시권으로 업무를 관리하고, 지시하면 제조업에도 파견이 합법화된다. 이 두 단어는 그냥 파견을 일상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도깨비 방망이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불법파견은 없는 것”이라며 “대구지방법원 이영화 판사가 아사히 파견법 위반을 인정한 앞선 4건의 재판에서 나온 판결문을 읽어보기나 한건지 의심스럽다. 그냥 사측 법률 대리인들의 주장을 받아쓰기 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분노했다.

판사가 법적 근거도 논리도 없이, 공판에서 있었던 증거를 다 무시한 판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전한 차 지회장은 “아무리 재판부가 독립된 사법기관이라도 판사 마음대로 재판할 수 있다는, 사법부의 심각성을 더 깨닫게 됐다. 판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직업적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건 그냥 ‘개소리’아니냐”고 일갈했다.

이번 판결에 대한 금속 법률원 장석우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증거에 기반해 판결해야 함에도 증거 검증도 소홀히 하고, 법리에 대한 해석이나 기존 판례에 대한 검토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잘라 말하면서 “불법파견의 최근 대법원 판례의 경향을 종합하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의 사내하청은 사실상 ‘불법파견’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이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한마디로 논평할 가치도 없다”며 판결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들은 이번 대구지법의 판결이 윤석열의 노동개악에 발맞춘 정치적 판결이자,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축소 시키는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재판부의 불법파견 무죄 선고는 제조업에서의 합법 파견을 확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해 중간착취를 무한대로 늘리겠다는 정부의 노동개악에 손을 들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는 것.

비정규직 이제그만은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노릇이다. 이번 아사히 무죄 판결로 국내 자본가들의 숱한 불법파견 범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면서 “아사히글라스에 대한 무죄 판결을 강력히 규탄하며, 비정규직 노예제도를 확대하고, 합법화하려는 자본가들과 국가 권력에 맞서서 끊임없이 싸워나갈 것이다. 불법파견과 비정규직체제 속에서 고통받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을 통해 불법파견 범죄를 엄단하고, 비정규직 철폐의 길을 함께 열어갈 것”이라고 외쳤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조정우 금속노조 기아차비규직지회장과 이상규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장,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이 아사히글라스지회 판결과 더불어 현재 재판부가 기업 중심의 판결을 연달아 내리고 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김용균재단의 김미숙 대표는 잇따른 경영진 무죄 선고에 대해 규탄하며 연대발언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은 불법파견 범죄자들에게‘면죄부’주는 자본의 하수인 사법부를 규탄한다며,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준 대구지법과 대형로펌의 결탁을 지적하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후에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첨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