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국제노동기구(ILO)는 ‘모든 인간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돌봄에 의존하므로 돌봄노동은 인류의 핵심’(2018.5)이라며 돌봄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돌봄노동은 필수노동의 영역으로 떠올랐고 우리는 돌봄노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크게 느꼈다. 영·유아, 초등, 노인, 장애인 등 모든 사회구성원이 생애주기에 따라 적절하게 돌봄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돌봄의 책임을 사회가 분담하자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작년 6월, 돌봄노동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사노동자들은 68년만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았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그림자 노동’을 도맡앗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이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도 적용받아 구직급여나 산업재해보상혜택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법안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21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당명을 충실하게 이행하려는 듯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한시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월70~100만원 정도의 월급을 주면서 청년세대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도울 수 있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놓고 착취하겠다는 선언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떠들고 있다.

2022년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단순기능인력, 전문인력을 포함한 취업자격 체류외국인은 449.402명으로 전년 대비 16.3% 증가하였고, 이 후 계속적으로 코로나 이전 50만명 수준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통계상으로 확인되는 숫자이며, 미등록 이민자(약 25%정도로 추산)를 포함하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없으면 우리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정도로 중소기업이나 농어촌의 부족한 노동력 공급과 소비 경제에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열악한 노동환경, 인권침해 등의 차별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9년 국가인권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받은 차별이 심각한데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 관련 업무를 하는 노동청, 고용센터,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의 공공기관에서조차 차별, 무시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만연하다보니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까지 앞장서서 차별하자고 주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주로 가정에서 이뤄지는 무급 돌봄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성역할 인식으로 노동시장으로 뻗어나간 유급돌봄은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은 가사돌봄노동의 가치를 깍아내리는 것 뿐만 아니라, 성불평등한 인식에 기반한 노동시장의 구조적 성차별 문제와도 연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이주노동자의 노동 여건 및 정책 과제’ 보고서(2021.5.12.)에 의하면 외국인 노동자 1천427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20.7%가 주 노동시간이 60시간을 넘는다고 답했는데, 그 중 남성 노동자는 19.3%에 반해 여성 노동자는 24.1%에 달했다고 한다. 또한 월별 소득에서도 성별 격차가 나타났는데 남성의 월 평균 임금은 218만1천원이었지만 여성의 임금은 195만2천원에 불과했다. 또한 여성 노동자 가운데 2.3%는 성희롱,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2022년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에서 월드컵 개최권을 획득하고 최근 10년 동안 대형 건설현장에서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5개국 출신 노동자 중 6751여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로 큰 논란이 됐었다.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는 카타르월드컵의 외국인 노동 착취에 대하여 ‘아름다운 경기의 추한 단면’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노동착취를 통해 저출산을 극복하라는 대한민국 정부의 대책을 보면 어떤 제목의 보고서가 나올지 궁금할 지경이다. 왜 이런 류의 부끄러움은 항상 우리 몫이어야 할까.

사실 이번 법안 개정은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 도우미는 양육에 초점을 맞춘정책으로 경제적 이유나 도우미의 공급 부족 대문에 고용을 꺼려왔던 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것”이라며 외국인 노가사노동자 도입을 제안했었다. 심지어 국민의 힘 정책위원회는 20대에 자녀 셋을 낳은 아빠의 병역의무를 면제하자는 정책을 검토했다고 한다. 이정도면 현재 청년세대가 저출산과 노동문제에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현 정부의 정책방향에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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