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시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사회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면, 가장 기본이 되는 규칙 중 하나가 노동시간 규제
한국 사회는 유연화가 아니라 더 적절한 ‘노동시간 규제’가 필요한 사회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주당 69시간까지도 수개월 간 일할 수 있게 하려던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이 여론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MZ세대 노조의 반대, 언론의 집중 포화, 과로사 유가족이나 장시간 노동을 했던 노동자들의 반대 등 연일 쏟아지는 반대 의견으로, 정부가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실과 고용노동부가 엇박자를 내고, 69시간에서 60시간으로 낮추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핵심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바로 불규칙한 노동과 그로 인해 피폐해지는 노동자의 몸과 삶이다.

장시간 노동을 포함하는 노동시간 유연화

고용노동부가 ‘시간 주권’이라는 말을 괴이하게 갖다 쓰며, 지금의 노동시간 개편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간 유연화는 불규칙한 노동시간이라는 문제와 장시간 노동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실 한국은 이미 20년 넘게 주 40시간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주 52시간 상한제마저도 제대로 시행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간 유연화는 주당 법정노동시간인 40시간을 기준으로 주당 52시간도 할 수 있고, 일이 적은 주는 주 28시간도 일하는 방식의 유연화가 아니라, 주당 상한 노동시간인 주당 52시간을 기준으로 이보다 더 길게 일하는 주를 분기, 반기, 연단위로 늘리겠다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추진은 어떤 미사여구를 쓰더라도 장시간 노동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미 주당 52시간이 짧은 노동시간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노동기구가 2021년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전세계적인 건강 부담을 연구했는데, 당시 연구의 과로 기준이 주 55시간 넘게 일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기준’처럼 생각하는 52시간이 노동시간의 기준으로 삼기에 얼마나 부적절한지 알 수 있다. 

장시간 노동만 문제가 아니다, 불규칙 노동이 문제다

오랜 시간 과로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장시간 노동의 건강 영향이야 워낙 널리 알려져 있으니, 여기서는 더 얘기하지는 말자. 하지만 정부가 주장하는대로 만일 평균 노동시간이 더 짧아진다 하더라도, 이는 기업과 자본이 원하는 시간에 일을 많이 하고, 기업과 자본이 필요 없는 시간에 일을 덜 하는 방식이다. 노동자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노동조합 조직율이 15% 근처를 맴돌고, 법으로 보장된 연차 휴가를 쓰는 데에도 눈치를 보아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간 유연화로 시간 주권을 갖게 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이다. 얼마 전에는 강력한 노동조합이 있는 철도노조 기관사 노동자들마저, 진급과 전보 등 인사 상 불이익 압력 때문에 연차나 병가 사용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심지어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있는 기관사에게 운전을 강요한 일도 있다고 한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이런 상황을 전 사회적으로 확대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 건강과 관련한 가장 큰 국제 학회인 국제산업보건학회 내 노동시간위원회의 전문가 패널은 표준 노동시간을 ‘월요일~금요일, 8시~17시 혹은 18시 사이에 일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외의 근무들, 예를 들어 교대근무, 저녁 근무, 연장근무, 불규칙 근무, 주말 근무, 대기 근무 등을 비표준적인 노동시간이라고 보며, 이들은 모두 노동자, 그 가족, 공동체에 모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장시간 노동만 문제가 아닌 것이다. 또한, 근무 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적절한 '통제'는 일과 삶 또는 일과 가정의 갈등을 줄이는 데 중요한 보호 요소가 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자본과 기업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내내 돌아가는 사회가 ‘정상’적이라는 인식을 퍼트리려 애쓰고 있지만, 노동자들에게 밤에 제대로 자는 것, 저녁과 주말 활동으로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를 돌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노동자들의 이런 신체적, 사회적 리듬에 야간 근무, 저녁 근무, 연장 근무, 불규칙한 근무, 주말 근무는 모두 맞지 않는다. 야간 근무와 교대근무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귀중한 수면시간을 잠식한다면, 저녁근무나 주말 근무, 언제 쉴지 모르는 불규칙한 근무는 사회적 관계와 가족 관계를 위해 가장 소중한 시간, 여가와 가족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갉아 먹는다. 

대표적인 교대근무 노동자 중 병원노동자들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근무 스케줄이 나오는 병원 노동자들은, 스케줄이 나오기 전에는 다음 달 일정을 미리 계획할 수가 없다. 월말에는 당장 다음 주 약속도 잡기 어렵다. 다음 달 스케줄이 아직 안 나왔기 때문이다. 한 달이면 양반이다. 매주 업무 시간표가 바뀌는 마트 노동자들, 며칠 단위로 출퇴근 시간이 결정되는 스타벅스 노동자들은 어떤 규칙적인 여가, 사회, 가족 생활을 계획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노동시간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심지어, 백번 양보해서, 노동자가 스스로 결정해서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쉰다 하더라도, 건강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월단위, 주단위 평균 노동시간이 동일하더라도 하루에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생체 리듬을 깨뜨린다. 졸음이나 집중력 저하로 사고 위험도 높아지고, 장기적으로는 뇌심혈관질환이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한국에서 일단위, 주단위로 노동시간이 다르거나 출퇴근 시간이 바뀌는 등 불규칙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노동시간이 장시간이 아닌 상태에서도 불규칙 노동만으로 불안장애 심화된다는 연구가 있다. 미국에서는 똑같이 주 40시간을 일하더라도, 하루 13시간 20분씩 3일 일하는 경찰과 하루 10시간씩 4일 일하는 경찰을 비교했을 때, 13시간 20분 일하는 경찰들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수면 시간이 줄고, 수면의 질이 떨어졌으며 집중력도 악화되고, 삶의 질이 나빠졌다는 보고가 있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먹이며 노동시간 유연화를 주장하지만, 국제적인 기준에 비추어도 우리는 오히려 노동시간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 근로기준법에는 야간 노동 관련 규제가 아예 없다. 그래서 쿠팡에서 월 26일씩 야간만 하는 노동도 법적으로 문제가 전혀 안 된다. 그렇게 일하다 20대 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이다. 불필요한 야간 노동을 줄이고, 야간 노동 시간은 더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근로기준법 상 노동시간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도 너무 많다. 4인 미만 노동자들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주 40시간 제도 적용도 받지 않는다. 1차 산업 노동자들, 감시단속적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래서 젊은 이주노동자들이 농촌에서 어마어마한 장시간 노동을 하다가 쓰러지고, 한 해 20여명의 경비 노동자가 과로사로 산재 승인을 받는다. 택배노동자처럼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시간과 관련한 사회적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도 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노동하며 보낸다. 노동시간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시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구성원의 삶을 돌보기 위해  ‘사회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면, 가장 기본이 되는 규칙 중 하나가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다. 한국 사회는 유연화가 아니라 더 적절한 ‘노동시간 규제’가 필요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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