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병원이다. 관련 자료로 두꺼운 녹취록과 함께 사직서 세 개를 가지고 오셨다. 해고라고 하셨는데 사직서? 그것도 한 개도 아닌 세 개라니.. 쉽지 않겠다는 생각보다 도대체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해고 관련 상담을 하게 되면 어떠한 경우라도 사직서는 절대 쓰면 안된다고 답변을 드린다. 해고와 사직을 간단하게 비교하면, 해고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근로계약을 종료하는 법률행위를 말하고, 사직은 사용자의 의사표시가 아니라 ‘노동자’의 의사표시 또는 합치에 따라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면 노동자에게 사직의 의사가 있다고 보아 해고에 해당하지 않게 되고, 부당해고라고 얘기하기조차 어려워진다.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해고에 해당되는 경우도 있다. 진의 아닌 의사표시, 즉 마음속의 진심과 표현이 달랐을 경우와 사기·강박에 의해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에는 무효가 된다. 법은 저렇다고 하지만 판례 등을 보았을 때 위의 경우가 인정되어 사직의 의사표시가 무효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굉장히 적다. 결국 직장을 계속 다니고 싶음에도 사직서를 쓰고 그만두면 돌아가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걸음으로 사무실에 찾아오셨고 사직서와 녹취록을 꼼꼼하게 검토해보니 역시 다른 문제가 있었다. 간호업계에 고질적인 ‘태움’문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교육을 명목으로 가하는 정신적·육체적 괴롭힘을 의미한다. 2018년 고 박선욱 간호사와 2019년 고 서지윤 간호사의 죽음으로 병원 내 ‘태움’문화가 알려졌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졌지만 아직 병원 내 이러한 문화는 여전히 근절되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다.

이 분도 피해가지는 못했다. 간호사 경력도 많았지만 계속해서 신입 간호사의 대우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과거 부당한 부서이동 명령을 거부하고 병원의 규정과 문화에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꼬리표를 달게 되었고. 결국 “넌 앞으로 남들보다 더 노력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거야” 라는 이야기까지 들으며 몇 년 동안 온갖 수모를 겪으며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세 번의 사직서를 작성하게 된 것이다.

지난 27일, 2005년 최초 발의된 지 약 20년만에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의사들은 이를 반대하기 위한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고 한의사협회는 의사들이 총파업에 들어가면 본인들이 공백을 메우겠다는 등 의료계가 혼란스럽다. 우리나라는 현재 간호사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가 모두 ‘의료법’ 하나로 묶여있는데 주되게 의사와 의료기관에 대한 내용이다. 이번에 직역 중 유일하게 간호인력에 관한 내용을 ‘의료법’으로부터 독립시켜 ‘간호법’을 제정한 것이다. 주된 내용은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간호사의 평균 근로기간이 7년 5개월이라고 한다. 인구 천 명당 간호사는 OECD 평균 8.9명인데 우리나라는 3.8명이다. 게다가 대부분 30대 전후로 사직을 한다고 한다. 이처럼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한 간호사 인력부족과 과도한 업무량 등의 구조적 문제가 ‘태움’ 문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궁극적으로 돌봄에 대한 권리보장을 위한 간호법 제정에 동의한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최선이라고 판단할 수는 있었겠지만, 진정으로 마음 속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괴롭힘과 태움의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직서의 내용을 더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사직서 쓴 진의에 따라 해고여부가 판단될 것이다. 상담을 하면서 마음은 이미 함께 싸우자고 결의를 다지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머리가 따라오지를 못했다.

자료를 더 가지고 계시다길래 준비되는대로 다시 뵙기로 했다. 꼭 다시 찾아오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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