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의 시민분향소가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 차려진 지 26분만에 경찰에 의해 강제철거 됐다.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무단설치물’이라고 규정하며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했지만, 경찰의 주장에는 어떠한 타당성도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회동 열사 투쟁 노동시민사회종교문화단체 공동행동’은 31일 오후 7시 서울 파이낸스빌딩 계단 앞에서 양회동 열사 추모 문화제를 예고하고 있었다. 문화제를 기다리며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오후 6시 31분 문화제 공간 바로 옆에 시민분향소 천막을 설치했고, 8분 뒤 분향소 제단까지 마련되며 분향소가 완성됐다.

건설노조를 향한 부당한 탄압을 멈추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 달라는 양회동 열사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염원을 시민들과 나누고, 함께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시민분향소였다. 설치를 끝낸 건설노조의 구슬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경찰들은 이들 조합원을 사방으로 둘러싸더니 강제철거를 시도했다.

건설노조 조합원 일부가 제단과 천막을 붙잡고 버텼고, 일부가 경찰과 대치하며 버텼다. 문화제 주최 측은 평화로운 문화제를 방해하지 말고, 위법 행위를 멈추라고 외쳤다. 그러나 끝없이 공급되는 경찰 병력에 결국 천막은 오후 7시 5분, 뼈대를 드러내고 산산조각났다. 분향소 설치완료부터 철거시점까지 26분이 걸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4명이 연행되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건설노조의 시민분향소를 ‘무단 설치물’이라고 규정하며 ‘행정대집행’을 실시하겠다고 경고 방송했다. 대치 상황에서는 조합원을 향해 차도가 아닌 인도로 올라가 질서를 유지하라고 했고, 대치상황이 끝나고 차도로 올라간 조합원들에게는 허가되지 않은 집회를 멈추고 해산하라고 주장했다.

우선 시민분향소는 ‘무단설치물’이 아니라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열사의 영정을 모신 분향소는 관혼상제로 신고의무가 없으며 문화제 관련 집회신고 물품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추모감정에서 비롯된 분향소는 ‘관혼상제’의 적용을 받으므로 옥외 집회 신고나 금지 시간, 금지 기간 등을 규정한 법률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시법 15조 ‘적용의 배제’에 따르면 관혼상제에 관한 집회는 집회 신고의 의무가 없다. 집회 시간, 집회 금지 장소 제한도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더해 서울시는 과거에 수차례 분향소의 설치가 규제대상이 아닌 ‘관혼상제’라는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같은 이유로 서울광장의 10.29이태원참사 시민분향소가 행정대집행 계고를 받았음에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경찰의 말에 따라 도로법상의 불법 노상적치물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필요하다면, 행정대집행법에 의거한 행정대집행의 주체는 ‘행정청’으로 이 경우 서울 중구청 직원이 된다. 이같은 법을 근거로 수많은 강제철거 현장에서 ‘구청 직원’이 조끼를 입고 철거 집행자로 나서게 되는 것이다.

또한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 철거를 한다 하더라도, 3조에 따라 상당하고 충분한 기간을 주고, 그 기간까지 이행(이 경우 철거)되지 않았을 때 대집행 할 것을 미리 알려(=계고)야 한다. 경찰은 애초에 행정대집행을 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닐뿐더러, 집행에 필요한 모든 절차도 무시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허가’되지 않은 집회를 해산하라는 경찰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우선 집회와 시위는 ‘허가’가 아닌 ‘신고’의 영역이며 문화제는 집시법 15조 예술, 체육, 오락 등에 관한 집회로 신고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집시법을 들추지 않더라도 해산의 이유를 ‘미허가 집회’라고 했다가 시민 안전 확보 라고 하는 등 계속해서 이유가 바뀌는 이른바 ‘답정너’식 주장만 잘 듣고있어도, 이성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판단이 충분히 가능한 대목이다.

결국 경찰의 이같은 폭력적 과잉 진압과, 법과 상식에 근거하지 않은 ‘경고’들은 같은 날 개최된 ‘민주노총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대한 대응 기조의 연장으로 풀이된다.

경찰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이 ‘노동자 집회를 불법화 하라’는 골자의 발언들을 토대로 이미 노숙집회와 야간집회를 금한다는 지침을 수립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집회의 자유를 부정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떠오른 ‘캡사이신’ 등을 또다시 진압 카드로 꺼내들기도 했다. 민주노총 서울대회를 기점으로 경찰은 집회의 자유를 본격적으로 막아서는 행보를 보였는데,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불법을 불사하는 모습을 이어간 것이다.

천막은 빼앗겼지만, 추모의 촛불은 더욱 번져나갔다. 이 사태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추모제에 참석하며 추모 공간은 발디딜틈이 모자라진 것이다. 어제(31일)부터는 매일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진행한다(평일 19시, 주말 18시 30분).

권영국 민변 노동위 변호사는 재개된 문화제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대통령이라는 저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거꾸러지고 있다.이 분노함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라면서도 “건설노조 여러분, 지쳐서는 안 된다. 저들이 노리고 있는 수에 우리가 휘말려서도 안 된다. 노동자들의 싸움을 더 이상 우리 시민들이 묵과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공동행동을 만든 것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니 건설노조 여러분,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라. 우리의 싸움은 진실이고, 정의다. 우리는 무도한 정권을 반드시 끌어 내리고 말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지치지 말자. 국가 폭력에 하수인으로 전락한 경찰에 우리가 굴복하지 않으면 된다. 함께 싸우자”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