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장 보러 나가기가 무서운 시절이다. 밖에서 사먹는 밥은 더 무섭다. 이른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라는 짜장면 값이 지난 5년 사이 26.9%나 올랐다. 필수재인 전기, 가스, 수도 요금, 기름값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우리의 임금은 언제나 물가를 따라잡지 못한다. 생활은 점점 쪼그라들고, 우리는 점점 더 많이 일해야만 간신히 과거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해마다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시기가 되면 온갖 유언비어가 각종 언론을 통해 유포된다. 아래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첫째, 최저임금이 오르는 바람에 영세자영업자들은 죄다 망해 간다!!

둘째,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서 취약계층은 더 살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이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은 2021년 기준 한국의 자영업자는 551만 명이고, 그 중에서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30만 명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의 부담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사실 따위는 애써 모른 체 한다. 역대급으로 최저임금이 인상되어 마치 나라가 망할 것처럼 난리가 났던 2018년에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언론들은 정작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대기업의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절대로 얘기하지 않는다.

셋째, 최저임금 논의에서 시민들을 겁박하는 논리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물가가 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가장 높았던 2018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로 다른 해에 비해 오히려 낮았으며, 2019년 두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한 최저임금에도 불구하고 물가인상률은 0.4%로 사실상 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들은 영세사업주의 부담을 줄인답시고, 이제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열을 올린다. 상대적으로 영세업종인 이·미용업, 택시운송업, PC방, 편의점, 일반음식점업, 주유소, 경비업종 등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이다. 이는 영세한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그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겠다는 얘기다. 만일 정부와 기업이 정말로 영세 자영업자들을 보호하고 취약계층의 생활 안정을 원한다면,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적정 하도급 단가를 보장하며, 카드 수수료 인하, 건물 임대료 규제 등의 경제민주화 조치를 취할 일이다.

올해 전국여성노조가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1.3%의 여성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 그들의 경우 최저임금이 올라야 월급이 조금이라도 오른다. 또한, 노동인권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은 자기 생애 최고 임금이 최저임금인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말해 최저임금은 대다수의 여성노동자와 청소년노동자들에겐 인간 존엄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을 차등 적용하겠다고? 이건 대놓고 사회적 소수자들을 차별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최저임금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제도다. 또 이에 따르는 최저임금법은 이 법률의 목적으로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국민 경제 전체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왜 국가는 기업과 노동자의 임금 결정과정에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헌법으로까지 강제하는 것일까?

최저임금법 제1조를 뜯어서 살펴 보면 그 의미가 보인다. 첫째,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생활이 안정될 수 있을 만큼 하한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그 하한선은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최저임금이 너무 낮아서 생활 안정이 안 되면 노동력의 질적 향상도 도모하기 어렵단 뜻이다. 셋째, 그러면 결국 국민 경제 전체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없다는 것. 쉽게 말해 노동자들의 생활이 안정되어야 노동력의 실질적인 재생산이 가능하고, 그래야만 사회가 굴러간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은, 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도 지켜내야 할 마지노선이다. 그런데 그 최저선을 차등 적용하겠다고? 아니, 오히려 우리는 이제 그 최저선이 아니라 우리의 실질적인 존엄선을 요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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