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7다35588, 35595 판결
건설노조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인권침해적 과잉수사, 이제는 끝내야

※ 답답한 노동 현실을 풀어가려면 문제의 원인을 알고 해독할 방법도 찾아야 합니다. 노동법률 디톡스가 해독제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서른두 번째 디톡스는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지급된 월례비와 장시간 노동 조장하는 윤석열 정부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 –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의 문제점-에 대해 풀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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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노동자 동의 없이도 유효하다는 종래 판례의 폐기

종래 판례에서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집단적 동의가 없더라도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유효하다고 하였으나,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위와 같은 판례를 폐기하였습니다.

피고 회사는 간부사원에게만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추가로 제정하면서, 월차휴가의 폐지와 연차휴가 상한의 신설을 포함하였습니다. 이처럼 취업규칙을 불이익 변경할 경우,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은 과반수 노조가 있다면 그 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고 회사는 과반수 노조의 동의 없이, 기존 간부사원의 동의만으로 불이익 변경을 감행하였습니다.

이 사건에 관한 대법원에서는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은 유효’라는 기존 대법원 판례 법리가 타당한지를 주요하게 다루었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을 강조하는 관점에서,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따른 동의를 받지 못하였다면, 노조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하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권은 사용자의 일방적 취업규칙의 변경 권한에 한계를 설정하고 헌법 제32조 제3항의 취지와 근로기준법 제4조가 정한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을 실현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절차적 권리’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요식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 이상의 중요성을 갖는 유효요건이므로, 집단적 동의권을 새로운 취업규칙의 내용이 갖는 타당성이나 합리성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불확정적이어서 노동관계 당사자에게 끼치는 폐해가 적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집단적 동의권이 남용되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동의가 없더라도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이 유효하다고 판시하면서, 그 남용의 요건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될 것’ 등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또한 종전의 사회통념상 합리성과 마찬가지로 개념적으로 모호한 까닭에, 앞으로는 남용 여부에 관한 분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대법원은 집단적 동의권 남용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였고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권을 절차적 권리라고 보았으므로, 추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있어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 다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사회종교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노조탄압이 죽음을 불렀다, 건설노조 탄압 중단 촉구 제시민사회종교단체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민중행동
시민사회종교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노조탄압이 죽음을 불렀다, 건설노조 탄압 중단 촉구 제시민사회종교단체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민중행동

건설노조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인권침해적 과잉수사, 이제는 끝내야

건설노조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갈취” 등의 위법행위로 낙인찍고, 수사기관이 직접 나서서 고발 사주를 하고 있으며, 피의자의 방어권은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수사기관의 반인권적 수사 행태에 대해, 건설노조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 표명을 요청하는 진정을 제기하였습니다.

1. ‘표적 신고 종용’ 혹은 고발 ‘사주’
경찰이 민주노총 건설노조 교섭위원을 특정하여 수사기관에 고발할 것을 유도하는 문건을 건설사 현장소장들에게 배포한 사례, ‘노동조합이 불법행위를 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미리 작성해 가져와 건설사 현장소장으로 하여금 이에 억지로 서명하도록 한 사례, 건설사 현장소장에게 민형사상 각종 문제에 대하여 건설노조와 일체의 합의도 하지 말 것을 종용한 사례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수사기관이 앞장서 건설사 현장소장 등에게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겨냥한 고발 사주행위를 하고, 이를 근거로 내세워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2. 피의자의 실질적 방어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투망식 수사’
피의자가 피의자신문에 앞서 실질적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사전에 조사가 진행될 사항, 즉 구체적인 혐의사실(피의사실)에 대하여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헌법 제12조에 규정된 형사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의 사항입니다. 그런데, 최근 경찰이 건설노조 간부 및 조합원들에게 출석요구를 하며, 피의사실의 요지를 알려달라는 이들의 정당한 요구에 합리적 이유 없이 응하지 않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습니다. 수사의 단서가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른바 ’투망식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 상황입니다.

3. 노사관계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강압적 수사
무엇보다 가장 문제적인 것은, 건설노조 간부 및 조합원에 대한 공동공갈, 강요 등 혐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건설노조의 단체행동권 행사 예고는 ‘협박’, 조합비 납부는 ‘중간착취’, 노조 전임자의 활동은 ‘전임비 갈취’라는 프레임이 짜여 있고, 짜여진 프레임 내에서 조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라는 말을 남긴 고 양회동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열사는 분신 전 총 세 차례나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한 번 조사받을 때마다 8시간 이상씩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정당하게 사용자와 교섭한 것을 두고, 노사관계의 특수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공갈, 업무방해죄로 의율한 것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한 열사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울립니다. ‘건폭몰이’ 수사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윤석열 정부는 진정한 사과와 함께 지금 당장 건설노조에 대한 무리한 수사를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노총 무료노동상담은 ☎1577-2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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