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
21일 발인~장례행진~노제~영결식~하관식 진행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엄수됐다. 6000명의 참석자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하며 눈물로 떠나보냈다. 21일, 윤석열 정부의 정당한 노조활동 탄압에 분신으로 항거한 지 51일 만에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양회동 열사는 1973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2015년부터 건설현장 철근노동자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일반팀 철근팀장으로 일하다 임금 중간착취, 임금체불, 고용불안과 같은 전형적인 건설현장에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2019년 11월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에 가입했다. 그렇게 시작한 노동조합을 통해 조금씩 건설 현장이 바뀌는 데에서 희망을 찾았다. 2022년에는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을 역임했다. ‘누구보다 진실하게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그는 올해 건설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모범조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남 4녀중 막내로 태어난 양회동은 아버지로, 남편으로, 신자 미카엘(세례명)로, 건설노동자로, 그리고 노동조합 조합원으로 살았다. 2023년 5월 1일에는 그는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윤석열 정권의 건설노조 탄압에 항거하며 분신했다. 그의 자존심은 건설노조의 정당하고 자랑스러운 노조활동에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는 누명이 씌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5월 2일 숨을 거뒀다. 그렇게 열사가 됐다.

‘윤석열의 검찰 독재 정치, 노동자를 자기 앞길에 걸림돌로 생각하는 못된놈 꼭 퇴진 시키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 달라는 고인의 뜻을 따라 유족과 함께 노조(건설노조 장옥기 위원장)가 상주가 됐다. 5월 4일부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에 고인을 모시며 열사투쟁이 시작됐다. 건설노조는 ▲열사와 유족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진심어린 사과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 해체 등 5개 요구안을 내걸었다.

건설노조는 지난 14일 노동시민사회장으로 5일간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윤석열 정부로부터의 사과 등 명예회복 요구가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열사의 유언을 지지하고 이어가겠다는 사회적 명예회복이 일정부분 확산돼 감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발인에 앞서 미사가 진행됐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발인에 앞서 미사가 진행됐다. ⓒ 송승현 기자

6월 21일, 일년 중 해가 가장 오래 떠 있는 날, 부슬비가 내리던 날, 양회동 열사의 장례가 거행됐다. 오전 8시 발인미사를 마친 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행렬이 펼쳐졌다. 양회동 열사의 대형 명정(銘旌)을 모시고, 만장을 든 건설노동자들이 도열했다. 구슬픈 상여소리가 불리워지는 방송차가 천천히 향했다.

목적지는 윤석열 정권의 몽둥이를 자처하며 건설노조 탄압에 나선, 경찰의 심장부, 경찰청이었다. 노제(路祭)는 대개 장지로 옮겨지기 전 고인이 생전 추억이 깃든 곳, 인연이 깊은 곳, 또는 소중한 곳을 찾아가는 의식이다. 양회동 열사의 노제는 경찰청 앞에서 진행됐다. 부당한 탄압에 항거하며 산화한 양회동 열사의 노제는, 윤석열 정권과 정권의 하수인들을 향한 그의 마지막 일갈이었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광화문을 지날 무렵 경찰들이 열사 장례행렬을 방해하고 나서 충돌이 빚어졌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광화문을 지날 무렵 경찰들이 열사 장례행렬을 방해하고 나서 충돌이 빚어졌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경찰청 앞에서 장례행렬을 막아선 경찰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경찰청 앞에서 장례행렬을 막아선 경찰들. ⓒ 송승현 기자

경찰은 죽음 앞에서도 숙연해지지 않았다. 경찰은 오전 10시 14분부터 36분간 수차례 장례행렬을 방해하거나, 방해하려 했다.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경찰은 대형 영정을 들고 지나려는 건설노조 조합원을 막아섰다. 분노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길을 뚫었지만, 그 이후로도 경찰은 장례행렬을 차단하려 들었다.

경찰청 앞 70m까지 신고가 돼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집회 신고된 공간을 열어주지 않고 펜스를 치고 막아섰다. 민주노총은 이를 “경찰청장의 자존심 때문이다. 경찰청 정문이 막히는 건 두고볼 수 없는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오전 11시부터 열린 노제에서 김정배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장은 “우리는 동지를 너무도 몰랐다. 4월 30일 이제는 마음 편해졌다는 말 뒤에 그렇게 모진 마음이 있는줄, 노동절날 철근조합원 잘부탁한다는 말에 무슨 큰일 치르러가냐고 우스갯소리 하며 나눴던 악수가 작별의 악수가 될줄은 몰랐다”고 한 뒤 “이제는 당신을 우리 가슴에 새기려한다. 당신이 우리에게 쥐어준 사명을 기억하고, 부끄럽지 않고 당당히 싸우겠노라고 약속한다. 당신의 고귀한 뜻을 이어 투쟁하며 살아가겠다”고 가슴을 뜯으면서 약속했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 송승현 기자

노제가 끝나고 상여는 세종대로를 향했다 이어 영결식이 진행됐다. 장례위원회는 노동자, 시민의 참여로 진행되는 장례가 투쟁의 끝이 아니라 열사의 염원을 실현하는 새로운 약속과 결의의 장이라고 밝혔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양회동 동지는 자신과 동지들의 삶을 위해 노동조합에 자신의 생을 걸었다. 고용과 실업을 반복해야 하는 현장,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장, 임금을 떼이고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는 막장같은 현장을 사람답게 사는 현장으로 바꾸자고자 노동조합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며 “양회동 동지의 억울함을 푸는 길은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는 것이다. 양회동이 옳고, 윤석열이 틀렸다고 증명하자. 윤석열 정권을 끝내는 것에 멈추지 말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향해 달려가자”고 발언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를 기억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자신의 손으로 국민들의 살 집과 모든 사회기반 시설을 창조하면서도 늘 노가다라 천대받던 건설노동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믿었던 노동운동가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양회동 열사를 기억하고 함께 해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추모사를 전하며 투쟁을 외치고 있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추모사를 전하며 투쟁을 외치고 있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호상인사를 하고 있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호상인사를 하고 있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가 추모사를 전하고 있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가 추모사를 전하고 있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유족인사를 전하는 양회선 씨.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유족인사를 전하는 양회선 씨. ⓒ 송승현 기자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와, 야당 6개정당(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기본소득당·더불어민주당) 당대표도 무대에 올라 조사(弔辭)를 전했다. 함세웅 신부의 조사, 큰형 양회선 씨의 유족 인사와 헌화를 마치고 마무리됐다. 영결식을 마친 뒤 양회동 열사는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옮겨가 하관식을 치렀다. 사람들은 양회동 열사와 열사정신을 가슴에 새겼다.

유족 양회선 씨는 유족인사를 하면서 “동생의 명예 회복을 위해 많은 일이 남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주시길 부탁드린다. 양회동을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있도록 기억하는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먼저 떠난 열사들과 동생의 죽음의 고통을 상기하면서 계속 이어가야 할 남겨진 우리의 의무”라고 했다.

이어 “유례없는 이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똘똘 뭉쳐서 우리의 생존권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함께 나야 가만한 하는 이 현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인사를 마친 양회선 씨는 잠시 침묵 한 뒤, 꼭 기억해달라는 듯이 한마디를 더 했다. 어쩌면 만인 앞에서 동생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동생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 송승현 기자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 민주노총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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