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이제 그만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너무 지치고 힘들고 피곤하네요.”

직장 내 괴롭힘 교육을 하러 여러 곳을 다니다보면,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아니 왜 괴롭힘을 당한다고 자살을 하는거에요..?”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는 질문일 것이라 믿고 싶지만, 사실 괴롭힘을 당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루 중 집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니 어쩌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매일 누군가에게 인격을 모욕하는 폭언과 욕설을 듣거나,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 것이다. 그러면 또 누군가는 그만두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직장을 옮기는 것도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외롭게 견디다가 우울증에 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상실당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이렇게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되었고, 계속적으로 개정·보완해야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얼마 전 인천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하여 한 노동자가 또 목숨을 끊었다.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하는 중개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로 일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사무실이 위치하고 있는 건물 8층에서 투신해서 사망했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대표와 상사의 괴롭힘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대표는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향한 고성은 기본이고, 술자리에서 직원의 뒤통수를 가격하기도 했다. 또한 직원의 실수나 잘못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모든 대화를 녹음하고, 약점을 잡아 이사회를 이용해 퇴사를 종용하는 등의 각종 협박을 이어나갔다. 초반까지는 이러한 대표의 행동에 항의도 하고 나름 싸워보았지만, 결국 직원들까지 대표편에 가세하게 되면서 견디지 못하고 추석 연휴가 끝난 후 사무실에 출근해서 마지막 외침을 남기고 떠났다.

이에 대한 대표의 반응은 가관이다. 고인의 유서내용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 평소에 우울증이 있었다는 등 자살의 책임을 모두 고인 개인에게 돌렸다. 대표와 함께 근무했던 퇴사자들의 증언들도 모두 부인하고 본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태도를 일관하고 있다. 사업주로서 잠시나마 함께 근무한 노동자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도 못 느끼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긴 고인이 사망한 직후에도 하루종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계속 사업장을 운영하였고, 사망한 다음 날 신규 직원 채용공고를 내는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인천지역의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모여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지자체와 노동청 등 관계기관에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유족은 시신의 화장까지 미루면서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며 지난 16일부터 사무실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하고 책임자처벌을 넘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자체 차원에서 대책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기관장의 갑질은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어왔다. 특히 더 화가 나는 것은, 이번 사건이 일어난 시설 역시 기관장의 비민주적인 운영에 대한 몇 번의 신고와 민원이 있었음에도 관계기관들은 법적 테두리에 갇혀 어떠한 조치를 내리지 못하고 흐지부지됐었다. 결국 누군가가 목숨을 던져 호소를 하니 부랴부랴 조사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그 당시에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면, 소중한 한 노동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지난 1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청년, 근로감독관 등과의 청년간담회를 열고 일터에서의 법치 확립을 위해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기준을 명확히 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을 추진해가겠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2019년 2천여 건에서 지난해 약 9천 건으로 빠르게 늘고 있지만, 실제 기소나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적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후구제를 위한 강력한 보호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직장 내에서 누군가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당연한 문화, 사회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사전 예방적 차원의 모색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시는 나의 삶의 터전이자 일터에서, 누군가의 괴롭힘으로 인해 고귀한 목숨이 희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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