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만의 NOT TODAY]
[홍석만의 NOT TODAY]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빅3 자동차업체인 GM, 포드, 스텔란티스(구 크라이슬러)와 파업을 통해 큰 폭의 임금인상 잠정 합의를 이끌어 냈다.

먼저 합의한 포드의 경우 2024년도 11%의 임금인상을 포함하여 앞으로 4년 반 동안 임금 25%를 기본 인상한다. 이에 따라 최고 시급을 받는 시니어 노동자의 경우 시간당 32달러에서 40달러로 25% 인상된다.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초임 신규 노동자, 비정규직, 최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시급을 28달러로 인상한다. 이에 따라 연방 최저임금을 받는 계약직, 하청 노동자 임금은 150% 인상되며, 일부 하청 사업장은 잠정합의안 비준 즉시 85% 인상된다.

또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폐지했던 ‘인플레이션 연동 생활비조정제도’(COLA)를 복원했다. 25% 임금인상 외에 콜라(COLA)의 생활비 조정으로 8% 가량 추가 인상된다. 그렇게 되면 기본 임금인상 25%에서 최소 33% 이상 임금이 인상될 전망이다. 스텔란티스와 GM의 임금인상률과 합의 조건도 포드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임금인상 합의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이른바 경영권에 속하는 주요 의사 결정의 일부 권한이 노동조합으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이번 합의에서 UAW는 전기차 전환에 따른 공장 폐쇄에 대한 파업권을 획득하여 산업 전환에 대한 본격적 대응이 가능해 졌고, 미국 현지 생산 확대(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바이든의 IRA법)에 따른 투자에 대한 결정력도 가져올 수 있었다.

UAW는 포드와의 (잠정)합의에서 내연 기관 및 전기 자동차 공장에 모두 81억 달러(약 11조원)를 투자하겠다는 사측의 약속을 받아냈다. 다음날 이어진 스텔란티스와의 합의에서는 지난해 말 노동자 1350명을 해고하고 올 3월부터 무기한 휴업 상태에 들어간 벨비디어(Belvidere) 공장의 재개와 인접한 배터리 제조 공장의 재가동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숀 페인 UAW 위원장은 스텔란티스와 잠정합의를 발표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투자하게 만들었다”라고 강조했다. 이로써 UAW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이 주도해 왔던 기업 의사 결정을 뚫고 들어가 투자와 현지 생산에 대한 결정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이번 합의가 갖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 높은 임금인상을 어떻게 회사가 수용하고 노동조합은 어떻게 이를 관철시킬 수 있었을까? 최고 시급 정규직 노동자의 4년 반 동안의 임금인상율이 최소 25%에서 30%에 이를 전망이다. 수십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사측은 이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길래 이런 합의를 봐줬다는 말인가?

먼저, 미국의 자동차 시장은 호황이다. 전기차의 성장은 물론 내연기관차도 시장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보다는 다소 둔화했지만 올해 상반기 미국의 전기차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했고 내연기관차 판매는 10%를 유지했다. 특히 미국 자동차 업체의 성장은 괄목할만한데, GM은 도요타에 빼앗겼던 자동차 판매 1위 자리를 돼 찾았다. 그러나 이번 합의로 GM은 향후 4년 동안 지출할 인건비만 70억 달러(약 9.4조원)로 예상했다. 그러면 과연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4년 간 최소 33% 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자동차 시장의 호황을 바탕으로 증가한 임금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고 보았을까? 아니면, 생산성이나 이윤에 대한 고려 없이 노동자의 생활보장을 위해 자본의 희생을 감수하고 그렇게 인상했다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임금이 오르면 기업은 수익을 더 내야하기 때문에 제품 원가 인상으로 임금비용 증가를 상쇄하려고 한다. 포드는 이번 합의에 따른 임금인상으로 차량 원가가 대당 850~900달러(약 114~121만 원)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차량 원가 인상은 (경쟁 시장이라) 자동차 판매의 감소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윤을 급격히 감소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임금 비용을 충당하지 못해 적자를 심화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방식의 제품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에 거시경제 차원에서도 차량 원가 인상을 쉽게 용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UAW도 이런 가격 상승 전망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완성차 노동자들의 임금이 동결돼 있는 동안에도 신차 가격은 30% 올랐으니 임금 인상과 연관 짓지 말라는 것이며, 임금인상을 자동차 가격 인상에 반영하는 것도 반대한다. 결국 자동차 가격 인상과 이를 통한 수익 확대가 이번 임금인상 합의는 주요한 조건이나 기준이 된 것은 아니다.

높은 임금인상을 사측이 수용할 수 있었던 배경은 차량 원가 인상 보다 전기자동차 신차 구매에 대한 정부 보조금 정책에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미국에서 최종 조립한 새 전기차를 구매하면 최고 7500달러(약 1천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1년 전 5.4%에서 7.2%(상반기 기준)로 늘어 전체 보조금 지급 규모도 늘어난다. 앞서 임금인상으로 차량 당 900달러(120만원) 정도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는 주장을 감안하면 전기차 세액공제 보조금 또는 가격 할인에 따른 판매 증가 수익금으로 전체 자동차 노동자의 인금인상 비용을 충당할 정도가 된다.

고율의 임금인상 합의의 배경에는 정부의 보조금(국가의 산업 개입)이 있다. 지난 9월 UAW가 파업을 시작했을 때,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바이든 대통령이 미시간 주 파업 현장을 방문하여 노동자들의 피켓 시위에 동참해 “당신들이 받는 급여와 혜택은 상당히 올라야 한다”며 “포기하지 말라”고 파업 지지를 밝혔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UAW의 협상 타결 소식에 “기록적 임금 인상, 더 많은 유급휴가, 더 큰 퇴직 후 보장”이 담긴 “역사적 합의”라며 반겼다.

이렇듯 미국의 21세기 산업정책, ‘뉴 워싱턴컨센서스 질서’의 구축은 임금인상과 노동조합의 강화로 귀결된다. 대공황 직후 1930년대 강력한 국가개입과 반독점 노선을 통해 민주당의 지지지반을 노동자-흑인-도시민 중심으로 뒤바꿔 놓은 ‘뉴딜연합’과 같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골디락스를 기반으로 국가 개입을 통해 노동자의 임금상승과 자본의 생산성 증가를 맞바꾼 ”케인스적 타협체제“와 같이 현재 미국의 산업정책은 노동조합의 강화와 확대를 통해 완성된다.

그러나 이런 ‘노동-생산성’ 타협체제, 미국식 산업정책이 노동자 친화적인 정책은 결코 아니다. 미국식 산업정책을 통한 생산성의 증가는 다른 나라, 주로 중국과 한국 등 신흥국의 성장과 생산성을 갉아먹는(대체하는) 방식이며, 미국 사회 발전전망에서 자본주도적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는 생산성에 기댄 전략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산업정책은 노동자 생활보장이 목표가 아니라 국가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자본의 이윤율 회복 전략이다. 동시에 초기에는 고임금으로 물질적 풍요와 성장의 고물을 나눌 수 있지만 공급망 또는 시장 재편이 정리되면 이런 식의 성장도 더 구가 할 수 없고, 부채 증가 속에 다시 인플레이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으며 후퇴가 예정된 성장전략이라는 점도 문제이다.

또한, 이러한 타협체제가 실제 구현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인 상황이다. 앞서 지난 8월 팀스터스(Teamsters) 노조 소속 UPS 노동자들은 30만 명 이상이 단체 행동을 결의하고 파업을 예고한 것만으로 사측의 양보를 얻어내 실제 파업 없이 임단협이 타결됐다. 할리우드 작가들의 파업과 새로운 단체협상이 타결됐고 지난해에는 아마존 물류창고나 스타벅스 매장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했다. 이번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파업투쟁의 승리까지 미국 노동운동이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 간 듯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지지가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 조직율이 다소 증가했어도 6, 70년대의 1/3도 되지 않고 노조의 영향력도 아직 그리 크지 않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10.1%(민간부문 6%)로 14.2%인 한국과 함께 OECD 최하위 수준이다.

다른 한편, 현재의 미국의 호황, 이윤율 확대 국면이 일반적인 호황국면의 조건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코로나19 경기침체에서 벗어났지만 재정·통화 완화정책의 확대로 시중 통화량이 팽창해 부채가 위험 수준으로 증가해 있고, 공급망 교란 등으로 인한 제품의 원가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속에 맞이한 호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고금리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해외국가로 수출하고 공급망 재편으로 공급 조건과 비용을 상승시켜 유럽과 신흥국의 수출을 악화시켰다. 즉, 미국은 유럽과 신흥국의 경기침체, 둔화에 기초해 (선진국 경제 중) 단일 국가로는 거의 유일하게 호황을 맞고 있는 시장이다.

미국의 산업정책, 생산성 타협체제가 여하히 작동할지와는 무관하게, 미국 노동자의 투쟁과 노동조합의 확대 강화는 그 자체로 사회의 진보적인 의미를 가진다. 미국 주류지배세력이 생산성 타협체제를 구성하려는 시도조차 미국 노동자 투쟁의 결과이자 그 영향 때문인데, 이는 미국 노동자와 미국 사회의 정치적 전망과도 관련이 있다. 미국 노동자들이 뉴딜연합에 안주하지 않고 더 전진된 사회, 정치적 전망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산업정책의 완성을 노동조합의 강화로 귀결시켜야 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조건 변화를 더 세밀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한편, 미국과는 다른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시장의 경쟁조건 속에서 시종일관 재벌과 독점자본 중심의 성장-노동포위 전략을 여전히 구가하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졌다기보다 한국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조건, 자본축적과 경쟁 조건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점과 노동자의 투쟁이 그 조건을 변화시킬 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가 한창이다. 무엇보다 자본 스스로 축적조건과 동맹전략을 바꿀 생각을 품게 할 노동조합 운동의 거시적인 흐름을 만들어가는 선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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