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의 영화직설]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2021년 한 편의 영화가 모스크바 국제영화제를 뒤흔들었다. 영화 상영을 중지해달라는 요청이 검찰청에 접수되고, ‘동성애 선전을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든 시위대가 극장 앞을 휘저었으며, 무려 92개의 러시아 언론들이 이 영화가 얼마나 끔찍하고 수치스러운지를 성토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결국 영화제 측은 모든 티켓 판매를 중단했고, 관객이 없는 상태로 영화가 상영됐다.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수십 차례 살해 협박이 가해지기도 했다. 영화 한 편을 둘러싼 졸렬한 야단법석과 극우적 맹동은 러시아에 드리워진 권위주의의 무게를 가늠하게 한다.

화제의 주인공은 <파이어버드Firebird>(2021). 러시아 배우 세르게이 페티소프의 ‘로만의 이야기 The Story of Roman’를 각색한 작품이다. 1977년 소련이 점령한 에스토니아의 공군기지에서 벌어진 실제 이야기를 배경 삼아, 전투기 조종사와 일반 사병간의 러브스토리를 그려냈다. 일각에서 ‘구 소련의 브로크백 마운틴’이라고 별명을 붙일 만큼, 시간차를 둔 흡사한 구성 속에서 두 남자의 애틋한 연정을 담아내고 있다. 러시아 우익과 언론들이 성난 이유는 영화 <파이어버드>가 규율과 기강으로 통제되어야 할 군대를 동성애와 비밀연애가 흐르는 공간으로 채색했기 때문이다. 

전투기 조종사와 사병의 사랑을 위협하는 건 ‘형법 121조’다. 동성간 성관계를 하면 5년간의 강제 노역형에 처해진다. 영화에선 자세히 다루지 않지만, 형법 121조는 1934년 스탈린 정부가 제정한 것이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직후 레닌과 혁명 세력은 모호한 태도로나마 동성애를 비범죄화했지만, 스탈린은 보기 좋게 이를 걷어찼다. 1993년 보리스 엘친이 이 법을 폐지하기 전까지 60년 동안 121조에 따라 38,000여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성소수자가 누린 봄은 20년이 채 되지 못했다. 2013년 푸틴 정부는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제정해 다시 성소수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이 법은 미디어와 인터넷은 물론 영화, 출판물, 광고 등의 매체에 성소수자 표현 일체를 금지한다. 존재 자체를 파문하는 악법이다. 최근에는 법적-의학적 성별 전환을 금지시키며 트랜스젠더들을 공격하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탄압의 기세가 날로 커지는 형국이다. 푸틴의 애완견으로 불리워지는 체첸의 카다로프는 러시아보다 한 술 더 떠 2017년부터 아예 ‘게이 사냥’에 나섰다. 수많은 게이들이 비밀수용소로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고, 레즈비언의 경우 명예살인을 당한다. 체첸의 많은 성소수자들이 이 끔찍한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파이어버드'
'파이어버드'

성소수자를 탄압하는 법이 존재하는 사회는 언제나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권위주의 체제였다. 나치의 ‘형법 제175조’야말로 이 악법의 이념형일 것이다. 원래 이 법은 19세기 독일 바이마르 시절에 제정되었는데, 나치 정권 이후 두 남성 사이의 신체적 접촉을 금지하며 이를 어길시 최대 10년형에 처하는 더 강력한 처벌 형태로 개정되었다. 게슈타포 공식 기록에 따르면, 175조 위반 혐의로 기소된 건수는 1933년 853건, 1935년 2,106건, 1938년에는 무려 8,562건으로 껑충 비약한다. 나치 정권 기간 대략 10만명이 체포되었고, 이중 53,40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렇게 대략 5만 명의 남성 동성애자들이 수용소로 끌려갔고, 이중 15,000여명이 그곳에서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치 친위대 SS의 수장이자 서열 2위였던 하인리히 히믈러는 동성애를 ‘공공의 재앙’이라고 주장하며, 밤낮으로 동성애자들을 색출했다. 동성애자들은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하다 죽거나, 탈출하다가 총살되거나, 가스실에서 죽었다. 이 조직적 학살을 피하기 위해 일부 동성애자들은 1943년의 새로운 법령을 따르기도 했다. 거세를 하면 수용소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그래봤자 전방 부대에 배치돼 연합군 총에 가장 먼저 죽어가는 수순이었다. 

175조는 나치 군대에도 엄격히 적용됐다. 히틀러는 정적들에게 동성애자라는 누명을 씌워 제거했고, 히믈러는 군대 내 동성애자들을 색출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SS에서만 1년에 대략 8~10명이 색출했는데, 1940년이 넘어가면서 그 수가 증가하게 된다. 나치 통치 기간, 뒤셀도르프에서 동성애 혐의로 체포된 사람의 57%가 나치 조직에 속해 있었다. 히믈러는 “동성애자들의 에로틱한 사랑은 군인들의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동성애자가 군대의 위계적 관계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1930년대 스탈린의 ‘형법 121조’와 히틀러의 ‘형법 175조’는 권력의 기틀을 닦고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성소수자들에게 사회적 증오를 투사하게끔 고안된 끔찍한 혐오 장치였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루에서부터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에 이르기까지 최근에 부흥하는 유사파시즘적인 권위주의 정부들도 어김없이 성소수자에 대해 강박적으로 증오를 발산하고 관련 법령을 제정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 한국은 어떤가? 여봐란 듯 유사한 법이 존재한다. ‘군형법 92조의6’. 동성 군인끼리 장소, 시간, 계급에 상관없이 성관계를 하면 징역 2년 이하에 처한다. 유럽과 미국의 식민 지배를 겪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듯, 군형법 92조의6의 경우에도 애초에 미국의 낡은 소도미법을 그 무늬만 베낀 것이고, 기소와 처벌 내역도 미미할 정도로 그렇게 실효적이지 않은 터였다. 

그런데 2006년, 전역을 시켜준다며 중대장이 한 동성애자 군인에게 동성과의 성관계 사진을 찍어오라고 요구한 야만적인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국방부가 처음으로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을 마련하는 등 이 법의 위헌성 문제가 공론장에 등장했다. 급기야 2017년, 동성애자 군인들을 대대적으로 색출한 ‘게이 군인 마녀사냥’이 일어났다.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명령 하에, 육군 중앙수사단이 강압적 진술, 아웃팅, 심지어는 함정 수사를 통해 28명의 게이 군인들을 색출했다. 데이팅 앱에 피의자를 강제로 잠입시키고, 성관계를 유도한 함정 수사를 벌여 세상을 아연케했다. 육군참모총장이 나치의 히믈러와 똑같은 짓을 벌인 것이다. 

군형법 92조의6항은 요컨대, 재발명된 것이다.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나치가 기존의 바이마르 형법을 고쳐 사용했듯이, 성소수자들은 점차 가시화되는데 한국 사회와 정치는 점차 보수화됨에 따라 그 힘의 관계를 역전시키고 사회적 통제와 규율을 강화하기 위한 권력장치의 하나로 활용한 것이었다. 장준규의 욕망은 곧 한국 지배세력의 욕망이다. 다시 말해, 군형법 92조의6항의 존속과 강화는 한국 민주주의의 실패와 위기를 반영한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92조의6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무려 20년간 4차례 헌법재판에 올랐지만, 또다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동성 군인간의 성관계가 ‘전투력 보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성 군인간의 성관계는 전혀 무해한데, 유독 동성 군인의 성관계는 전투력을 상실케하는 흑마술을 부린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이 제대로 된 이성을 갖고 있다면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나치 친위대 SS의 히믈러도, 스탈린도 똑같은 주장을 펼쳤다. 

평등을 질식시키고 성소수자들을 규율의 재단에 희생양으로 넙죽 갖다 바치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오늘날, 여기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인지를 단번에 적시한다. 사랑을 파문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