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톡의 노동자 마음건강
통통톡의 노동자 마음건강

연애를 시작한 지 6개월 지난 사람들의 뇌를 촬영해 보았더니 알콜중독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패턴이 나왔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연애는 그런 것이다. 채워지지 않은 갈망을 누군가가 채워줄 것이란 환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드라마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실생활에서 절대 볼 수 없지만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늘 차갑다.

하늘을 나는 조종사가 되기만 하면 멋지고 행복한 삶에 성큼 다가갈 것이란 나의 희망은 비행훈련원에 입소하던 날 바로 깨졌다. 입소 동기들을 모은 관리자의 첫 질문이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한 사람 손들어’였다. 동기 대표를 뽑는 자리였는데, 반장이 왜 장교 출신이어야 하는지 물을 틈도 없었다. 그는 군대 경험이 몸에 밴 사람이었고, 정식 조종사도 아니고 이제 훈련소에 입소한 신병에 불과했던 우리는 입도 뻥끗할 수 없었다. 언제 퇴소당할지 모를 훈련생을 탈출해 정규직 조종사가 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나는 우여곡절 끝에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었다. 조종사로 안전하게 비행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꾸리고 싶다는 내 진짜 소망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생긴 것이다.

심리치료는 환상과의 화해이다. 환상은 연애를 시작하게 만들기에 현실적인 사랑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다. 다만 환상이 깨지기 시작할 때가 문제이다. 냉정하게 다가오는 현실을 건강하게 받아내기가 쉽지 않다. 관계가 끝나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불안이 착취를 낳고 착취가 더 큰 불안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지켜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친구의 관심과 애정 어린 시선이나 가족의 현실적인 사랑이 필요하다. 환상이 깨져도 별일 없을 거고 오히려 환상이 깨져야 진짜를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줄 동료가 필요하다. 상담자는 그 역할을 하는 잘 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전문가들이다. 환상이 깨어지며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고 또 다른 일상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에게 상담자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일상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제도적인 착취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준다. 불안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자가 진짜 현실을 만날 가능성이 높고, 환상이 안전하게 깨어지고 진짜 현실을 만나야만 자신의 진짜 삶과 만날 수 있다. 그래야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에서 일하는 상담자들은 제도적인 착취와 불평등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사람들이다. 착취와 불평등이 만연하여 무심코 지나치거나, 너무 힘들어서 도망쳤던 문제들이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상처를 주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상담자들이다. 상처받은 마음에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다친 분들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활동가들이다.

연애가 끝나고 사랑이 시작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갈망이 아닌 상대에 대한 존중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환상이 아닌 현실이 드러나는 시점이다. 그때 쯤이면 진짜 현실을 만날 기회를 제공해주는 환상을 우리는 꿈이라 부를 수 있고, 꿈은 불행을 통해 행복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준다.

이제 동료들을 믿고 열심히 꿈을 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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