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학대범으로 낙인 찍힌 요양보호사, CCTV로 재발 방지하겠다는 정부
실상은 노동자 감시, 과잉 징계...오히려 돌봄서비스 질 후퇴
해결법은 CCTV감시가 아니라 인력충원, 돌봄노조 토론회 개최

보건복지부가 장기요양기관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모든 요양기관이 12월 21일까지 설치를 완료하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요양시설 내 노인학대를 방지해 더 안전한 장기요양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돌봄노동자들은 CCTV 설치 마감인 21일이 가까워올수록 요양기관 현장은 쑥대밭이 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전국돌봄서비스노조가 장기요양기관 CCTV 설치 의무화 문제점 및 인권 보호 개선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전국돌봄서비스노조가 장기요양기관 CCTV 설치 의무화 문제점 및 인권 보호 개선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이하 돌봄노조)는 요양기관 CCTV 설치 의무화가 빚은 문제를 짚고 어르신과 돌봄노동자 모두의 인권을 보호할 방안을 찾는 토론회를 국회에서 진행했다.

이번 토론회는 돌봄노조와 최종윤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강성희 국회의원 (진보당) 공동 주최로 14일 오전 10시 30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 간담회실에서 열렸다.

노우정 돌봄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노우정 돌봄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노우정 돌봄노조 위원장은 “요양기관에서 벌어지는 노인 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CCTV 설치 의무화보다 돌봄노동자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양기관 노인 학대는 돌봄노동자 인력 부족으로 인해 일어나는 구조적 문제이지 돌봄노동자를 감시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노 위원장은 “CCTV 의무 설치가 다 완료되지도 않았는데 “CCTV가 어르신 사고 예방보다 노동자의 행동을 하나하나 감시하는 역할로 둔갑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이런 부작용은 “돌봄노동자의 목소리를 배제한 행정 진행 탓”이라며 “필수노동자인 돌봄노동자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더욱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다짐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돌봄노동자들이 노 위원장의 주장을 증명할 다양한 사례를 전했다.

인천에서 요양보호사 활동을 하는 이미경 조합원이 현장 사례를 전하고 있다.
인천에서 요양보호사 활동을 하는 이미경 조합원이 현장 사례를 전하고 있다.

“(CCTV 추가 설치로) 시설 안에 사각지대가 단 한 군데도 없으니 숨 한 번 마음대로 못 쉬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숨 쉴 곳이 칸막이 화장실밖에 없어요.”

인천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 중인 이미경 조합원은 “저희 시설은 기존에 CCTV가 설치돼 잘 운영되고 있었는데도 이번 CCTV 설치 의무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원장이 CCTV를 계속 감시하다 환자 보호를 위해 손목을 잡는 행동까지도 노인학대라고 지적하니 큰 압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 관리자가 노동조합 조합원에 대해 과잉 감시를 하고 있다는 의심도 전했다. “노동조합 조합원만 골라 예전 근무 영상까지 돌려보며 지적하고 경위서를 쓰게 하는 상황”이라며 시설관리자들이 노동자 감시를 넘어 노동조합 탄압에까지 CCTV 영상을 악용하고 있다고 알렸다.

박영천 돌봄노조 서울지부 사무국장이 현장사례를 발언하고 있다.
박영천 돌봄노조 서울지부 사무국장이 현장사례를 발언하고 있다.

박영천 돌봄노조 서울지부 사무국장은 CCTV 설치로 돌봄서비스 질이 후퇴한 서울 강서구 요양시설의 실제 사례를 전했다. 해당 요양시설은 11월 중순 CCTV를 확대 설치하면서 치매 때문에 양손이 억제된 어르신에게 새벽 내내 두 시간 간격으로 마사지를 하라고 지시했다. 노인학대로 의심받지 않기 위해 내린 과잉 지시였다.

“(마사지 때문에) 새벽 두 시간마다 한 번씩 불을 켜면 어르신은 큰 소리로 항의도 하고 밥을 달라는 요구도 하십니다. 관리자는 들어주는 척만 하라는데, 그랬다가 나중에 문제 되면 그것도 요양보호사 개인 책임입니다.”

박 사무국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CCTV 설치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어르신을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 인력 충원,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지현 돌봄노조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전지현 돌봄노조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전지현 돌봄노조 사무국장은 전국의 CCTV 부작용 사례, 나아가 돌봄노동자에 대한 과잉 감시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노인학대 영상’이 공개되면 언론은 앞다투어 보도하고 돌봄노동자는 수십 명 무더기 징계를 받는 일이 반복되는데 문제의 근본 원인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전 사무국장은 돌봄노동자도 CCTV 설치를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전했다. 치매를 앓는 어르신의 돌발행동 파악, 돌봄노동자들이 자주 시달리는 ‘도둑 누명’을 벗는데도 CCTV를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노동자 실시간 감시였다.

전 사무국장은 노동자를 CCTV 설치 관련, 영상 열람에서 배제시키는 것이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돌봄노조가 10월 4일부터 6일 사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가한 돌봄노동자 중 84%가 CCTV 설치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CCTV를 통해 감시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53.7%에 이르렀다. 현재 CCTV 설치에 노동자 의견은 배제되고 있다는 증거다.

반면 관리자가 녹화된 영상을 빌미로 노동자를 ‘노인학대범’으로 고발하는 사례는 급증하고 있다. 전 사무국장은 “근무 영상 한 달 어치 중 단 한 건 문제가 보였다고 (노동자에게는 영상 열람을 허락하지 않은 채) 노인학대로 고발한 사례도 있습니다. 다짜고짜 고발할 게 아니라 요양보호사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 요양보호사도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조지훈 변호사가 개인정보 보호법안 관점에서 장기요양기관 CCTV 설치 의무화 문제를 발제하고 있다.
조지훈 변호사가 개인정보 보호법안 관점에서 장기요양기관 CCTV 설치 의무화 문제를 발제하고 있다.

이후 조지훈 변호사가 장기요양기관 CCTV 설치를 개인정보 보호법안 관점에서 살폈다. 조 변호사는 “영상 정보는 당연히 개인 정보이고 노동자 개인에게 열람권이 있다”고 알렸다. 또 현재 노인 장기요양법이 폐쇄형 CCTV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노동자 실시간 감시에 주로 사용되는 네트워크 카메라 관련 규정이 없는 취약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시행규칙이 기존 개인정보보호법 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토론회에는 조윤경 보건복지부 요양보험운영과 사무관, 고낙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신기술개인정보과장이 관련 부처 담당자로서 참석했다.

조윤경 보건복지부 요양보험운영과 사무관이 복지부 가이드라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윤경 보건복지부 요양보험운영과 사무관이 복지부 가이드라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 사무관은 특히 보건복지부 가이드라인과 노동자들이 제기한 현장 문제가 맞지 않는 점을 확인했다. 보건복지부 가이드라인에 “장기요양기관 CCTV는 폐쇄형을 사용하며 60일 후 폐기가 기본, 탕비실 등 노동자들만 사용하는 공간에는 CCTV 설치 금지, CCTV 설치에 대해 어르신의 의사를 우선할 것”등이 이미 명시돼 있다는 것이다. 조 사무관은 “21일까지 CCTV 설치를 완료하면 이후 운영 점검을 통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지희 돌봄노조 경기지부장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한지희 돌봄노조 경기지부장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후 토론회 참가자들의 다양한 질문과 의견이 제시됐다. 한지희 돌봄노조 경기지부장은 “나쁜 민간업체 몇의 일탈행동으로 볼 게 아니다, 결국 돌봄 국가책임제가 실현되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돌봄기관 대부분이 민간업체다보니 정부가 CCTV 설치가 만들 부작용을 예상하고도 적극적인 해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돌봄노조는 오늘 토론회 이후 꾸준히 관련 부처에 노동자 의견을 전할 예정이다. CCTV 설치 의무화로 현장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에 맞는 제도 변경, CCTV 설치에 맞는 구체적 업무 매뉴얼과 대면교육, 나아가 새로운 시행령에 적응할 유예기간을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고낙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신기술개인정보과장이 발언하고 있다.
고낙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신기술개인정보과장이 발언하고 있다.
전국돌봄서비스노조가 장기요양기관 CCTV 설치 의무화 문제점 및 인권 보호 개선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참가자가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토론회 참가자가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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