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어쩌다 보니 이른바 운동 조직에서 20년 넘게 성평등 교육, 성폭력 대책위원, 피해자 대리인, 가해자 대리인 같은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왔다. 내가 경험한 사건들 중에는 피해의 정도가 극심하여 가해자를 운동 사회에서 퇴출시켜야 할 정도로 죄질이 나쁜 사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건들도 없지 않다. 다시 말해 최초의 사건은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로 해결될 수 있는 경우들도 꽤 많다는 뜻이다. 가령, 물리적인 폭력을 동반하지 않은 언어 성폭력 등이 그렇다.

그런데 그런 사건을 키우는 건 대개 최초의 잘못보다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의 태도이다. 대체 왜 가해자들은 그런 지적을 받았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부터 하지 않는 걸까? 가해자들을 많이 만나본 경험에 따르면 이런 이유들이 아닐까 싶다. 첫째, 자기가 한 행위가 왜 문제인지 정말 모르는 경우, 둘째,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전부를 부정당한다는 착각, 셋째, 잘못을 인정하면, 자기가 잘못한 것보다 더 큰 불이익이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그것이다.

첫째의 경우, 가해 당사자의 인권 감수성이 문제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사건에서 가해자의 의도는 2차적인 문제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 싸움에서조차 상대방이 상처를 입었다고 할 때, 내 의도를 설명하느라 진을 빼는 것보다는 최대한 빨리 깔끔하게 사과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내가 어떤 의도로 어떤 행위를 했으므로 이것은 성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입었을 상처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거다. 한편, 이 문제는 조직 문화가 얼마나 인권친화적이냐에 따라 사건의 해결 흐름이 아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가령, 교사가 학생을 대걸레로 패는 폭력이 당연한 교실에서는 교사의 체벌이 당연시되지만, 사람은 꽃으로라도 때려선 안 된다는 감수성이 당연한 교실에서는 교사든 학생이든 사소한 폭력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해 당사자의 인권 감수성이 매우 낮은 수준일 때라도 조직 내 다수 구성원들의 인권감수성이 높은 분위기에서는 가해자 역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의 기회를 얻기가 쉬운 것이다.

둘째의 경우, 전적으로 착각일 때가 많다. 우리는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고, 또한 잘못을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운동 조직 아니라 무엇에 속한 사람이라도, 심지어 페미니스트조차도 실수할 수 있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따라서 내가 완벽한 사람이라는 망상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든 잘못할 수 있고 잘못을 돌이켜야 한다. 내 잘못은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 인격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돌이킬수록 내 인격엔 손상이 적고, 나는 보다 더 성숙해질 수 있다. 따라서 운동 조직 역시, 그 조직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느냐보다는 그 조직이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실력을 드러낸다. 우리는 모두 내가 피해자일 때는 물론,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조차 기댈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셋째의 경우는 조직 구성원들의 신뢰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시시때대로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며 살지만, 내가 잘못한 만큼만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면 잘못을 인정하기가 훨씬 쉽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교통사고를 내고도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도 안되는 말이 통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은 자신이 속한 운동 조직을 신뢰할 수 있을까? 그것은 펑소 조직 내 구성원들이 적확한 절차에 따라 신중하게 사건의 해결을 함께 도모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우리는 누군가를 응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거라는 성숙한 합의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조직 구성원들이 공적인 해결을 도모하되 결코 사건을 가십 거리로 삼지 않고,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며, 피해자에 대해서든 가해자에 대해서든 편견을 생산하고 유포하지 않는 신중한 태도가 필수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호미로 막을 일은 호미로 막아야 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호미로 막지 못하면, 가래로도 못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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