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저항하는 3월 8일을 위해

사실 나는 내가 여자라는 데 딱히 관심이 없었습니다. 차별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울산의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중 ‘경력 무관’ 용접사를 구하는 곳에 문의했을 때, 답변은 ‘여성은 하루 일당 7만원, 남성은 9만원’이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받을 때마다 기분이 나빴지만, 회사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는 여자라는 이유로 제 월급은 깎아도, 제 작은 체구는 톡톡히 부려먹었습니다. 저는 어디든지 들어가 구석구석 먼지 구덩이를 기어서, 누워서, 매달려서 작업했고 하이바에 달린 랜턴에 의지한 채 어두운 데크안을 누비기도 했습니다. 한여름에는 바람이 전혀 통하지 않는 작업복에 방진마스크, 고무장갑, 고글을 끼고 일했습니다. 무거운 페인트통, 어지러운 신나 냄새, 또 근처에서는 그라인더 작업을 하는지 귀마개를 껴도 머리가 멍해지는 굉음이 들리고 쇳가루 속에서 녹초가 될 때까지 일했습니다. 그렇게 현대중공업이 생산하는 군함과 잠수함과 해경선을 비롯한 거대한 선박에는 제 땀이 배어 있지만, 회사는 20대 여성인 제겐 최저시급보다 딱 40원만 더 쥐어줄 뿐이었습니다. 일이 아무리 고되도 남성 노동자보다 임금이 낮은 건 어딜 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진에 다닐 때는 여성 탈의실도 없었습니다. 사측에 얘기하자 먼지와 버려진 물품이 가득한 폐사무실을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변주현

친구들은 제가 현대중공업에서 일한다고 하면, “이욜~ 변 대기업 다니네! 대단하다”라고 치켜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편의점이나 피시방, 카페 알바 등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전전하는 제 친구들처럼 그냥 최저임금 일자리에 다닐 뿐이었습니다. 2, 30대 여성 노동자의 임금이 일생에 걸쳐 가장 많은 임금이니 아마 지금 우리가 벌고 있는 최저임금은 우리 인생의 최고임금일 것입니다.

그래도 그게 맞는 줄 알았습니다. 노조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제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현대건설기계 하청에서 부당해고된 뒤 노동운동을 시작하며 노동자이자 여성 노동자라는 저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흘려들었던 ‘여자는 이래야지, 저래야지’ 하는 제약과 억압이 하나둘씩 머릿속을 스쳐 갔습니다. 그동안 여성으로 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차별’이었습니다. 아무도 여성 차별과 억압이 잘못됐다고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자 해고된 여성 노동자로서 차별과 억압을 투쟁하면서 알게 되고 목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차별이 줄었다지만 가부장적 인식과 성차별, 노동착취로 가득한 현장은 거의 변한 게 없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주변화된 여성 노동과 성별분업, 승진승급 제한, 임금 격차 등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성폭력과 성차별은 어느 한 사업장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만큼 여성 노동자들은 생산에서 소외되어 있고 노동의 가치는 구조적으로 저평가됩니다. 그 결과, 여성 2명 중 1명은 비정규직입니다. 여성 노동자 51.3%가 최저임금을 받으며, 시간당 임금은 남성 정규직 > 남성 비정규직 > 여성 정규직 > 여성 비정규직 순입니다. 여성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남성 정규직 노동자의 38.8%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올해 최저시급은 고작 240원밖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의 허리끈을 더 조른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 3명 중 1명이 일터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으며 비정규직일수록 그 비율은 증가합니다.

더구나 청년 여성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더 절박합니다. 지난 10년째 20대 성별임금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숏컷을 한 편의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페미는 맞아야 한다’는 2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하는 시대입니다. 며칠 전에도 남자친구로부터 상습적인 폭력 피해를 호소해 왔던 20대 여성이 오피스텔에서 추락해 숨졌습니다. 20대 여성 우울증은 전체의 12.1%로 가장 많고, 5년 전에 비교하면 2배 이상 급증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 현실입니다. 고립·은둔 청년 여성의 비율은 남성의 3배가 넘습니다.

지난 1월 12일 2024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건보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당신의 투쟁은 나의 투쟁,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오픈마이크를 진행했다. 사진=전병철
지난 1월 12일 2024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건보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당신의 투쟁은 나의 투쟁,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오픈마이크를 진행했다. 사진=전병철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악과 함께 그나마 있는 성평등 정책과 예산을 없애며 구조적 차별을 악화시켜 여성 노동자가 살기 더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지 4년이 지나도, 임신중지 시술비가 최저임금의 절반이 넘어도, 임신중지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데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정부는 그저 저출산을 외칠 뿐이고, 그들의 저출산 대책은 중산층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저출산 대책으로 결혼하고 출산할 때 3억원까지 증여세를 면제한다고 하는데, 과연 부모로부터 3억원이나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게 빚이라면 모르겠습니다. 정부는 오히려 공적 돌봄기관인 사회서비스원은 해체하고 가사돌봄제도도 더 민영화한다고 합니다. 사회 재생산 위기는 이주노동자들을 싼값에 부려 그들에게 전가하려고 합니다. 그마저도 이용할 수 없는 가정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의 ‘집안일’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모두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 여성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방식입니다. 자본가계급은 직장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집안에서는 그들의 노동을 무급으로 수탈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성 노동자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회사, 나아가 자본주의에 바로 민주노조가 저항해야 합니다. 민주노조가 사회의 차별과 탄압에 맞서 싸우며 문제를 알려내고 바꾸듯 여성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도 반드시 그러한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에 노동자를 성별로 이간질하고 경쟁시키는 자본주의에 맞서 전체 노동자의 단결도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3월 8일은 ‘국제여성의날’입니다. 30여 개의 단위와 개인들이 노동자의 무기인 ‘파업’으로 여성 차별과 억압에 맞서기 위해 ‘2024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저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조 동지들과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여성 노동자의 차별에 반대하며 권리를 함께 외치는 3월 8일을 만들고 싶습니다.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 정권에 맞서야 할 당사자는 바로 구조적인 성차별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우리 여성 노동자입니다. 민주노조가 노동자들의 힘으로 온갖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모든 날을 함께 만들어갑시다.

※조직위는 직장과 집안에서 여성 노동자의 이중굴레를 드러내고자 설문조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여성 조합원들과 주위에 지인들과 함께 설문조사에 참여해 한국 사회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담아주길 부탁드립니다.

[지금, 여기,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묻다 https://bit.ly/2024여성노동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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