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영(직환의) "의심하고 질문하자, 객관적 숫자의 ‘탈’을 쓴 차별에 대해서" 

『일하다 아픈 여자들 – 왜 여성의 산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가?』  양문영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일하다 아픈 여자들 – 왜 여성의 산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가?』  양문영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객관적 숫자들, 그건 현실일까?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는 진폐증 환자들이 오신다. 이들은 고령의 나이, 진폐증으로 인한 호흡곤란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성이라는 점이다. 광산에서 일했던 여성인 선탄부 역시 존재했다는 것은 인터넷을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다. 어떤 날은 20대 여성 환자의 직업력을 조사하다가 건설현장에서 현장직으로 일하신다는 답변에 내심 놀랐던 적도 있다. 남성이 대부분인 산업 분야에 여성노동자는 분명 존재하지만 자주 만나기 어렵다. 한편, 선탄부는 갱내에서 일하지 않았고, 그만큼 유해인자 노출량이 적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소는 주로 남성의 일이지만 붓으로 도장을 하는 터치업 도장은 여성이 맡았는데, 에어스프레이 도장 방식에 비하여 역시 유해인자 노출량이 적다고 이해하게 된다. 정말 그것이 과학적 사실의 전부일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여성의 몸에는 표준 노동자를 대상으로 제작된 보호구가 잘 맞지 않았을 것이고, 그로 인해 유해요인 노출이 보다 심각했을지도 모른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로 대사과정에 차이가 있으므로, 페인트에 포함된 유기용제 영향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했을 것이다. 노동현장에서의 질병과 사고를 안는 산재라는 국가 제도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 것 같지만, 밝혀진 통계는 성별에 따라 선명한 대조를 보인다. 제도가 작동하는 현실에 의해, 이 제도가 기능하는 과정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통념에 의해 차별을 내포한다.

이 책은 1부 <여성 노동자가 말하는 산업재해> 와 2부 <산재 보상 제도와 젠더 공백>, 소중한 부록인 <노동안전보건의 관점으로 여성 노동운동 살펴보기>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가려진 여성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어떤 이야기들은 더 말해져야 하며, 더 적극적으로 듣고자 애써야 한다. 우리가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숨쉬고 있는 한 이러한 이야기를 외면하기 쉽기 때문이다. 때로 어떤 말들은 말해지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자신의 정체성을 가리는 것이 급선무인” 폭력적인 조건에서 이러한 증언은 무척이나 값지다. 이 책에는 인터뷰를 통해 온몸을 기울여 ‘들어-냄으로써’ ‘함께 드러내고자’ 하는 노력과, 말들을 소중히 엮어 기저의 차별을 섬세하게 분석해내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 

2부는 제도 내에 깃든 차별을 젠더적 관점으로 읽어낸다. 산재 보상 제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렵고 난해하다. 신청, 요양, 복귀 무엇하나 쉽지 않은 데 반해 실손보험은 가깝다. 이 와중에 어떤 사람들에게 산재는 더 장벽이 높다. 유해한 노동환경 자체는 몰성적으로 보이지만, 여성이 많은 경우에 산재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이 책은 통계로 드러낸다. 여성의 (승인된) 산재가 적다는 것을 얄팍하게 바라보면 여성이 더 안전하고 건강한 일에 종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6장의 제목은 “여성은 더 안전하게 일하는가”라는 제목인데, 어떤 독자들에겐 평이하게, 또는 다소 도발적이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없어 나의 질병이 산재라는 것을 인식하기도 어렵고, 신청 과정을 도와줄 사람도 없는 경우가 있다. 병가도 없고 고용도 불안정해 늦어지는 산재 승인을 기다리며 치료 및 고용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러한 많은 불리한 조건들에 여성이 흔히 해당되며, 그만큼 산재의 허들은 높다. 이는 그만큼 위험이 덜 알려진다는 것이고, 안전해질 기회가 성긴 제도의 틈새로 빠져나가버린다는 뜻이다. 저자들은 그 고리를 섬세하고 친절하게 보여준다. 이를 저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근골격계 질환의 추정 원칙인데, 그간 근골격계 질환이 많이 신청된 직종에서 승인도 많이 된 직종이 추정의 원칙에 포함되어, 여성이 많이 종사하리라 기대되는 직종들은 현재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직종 중 손에 꼽힌다는 것이다.

사실 신청과 인정 외에도 요양과 복귀, 그리고 현장을 보다 안전하게 바꾸는 과정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비단 여성에게뿐 아니라, 모두에게 지닌 약점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대다수의 노동자에게 산재 제도가 어려운 지점을 설명하면서도 젠더적 관점에서의 해설을 놓치지 않는다. 예컨대 가사노동을 병행하는 여성은 집에서도 요양을 통해 충분히 쉬고 회복하기 어렵고, 동시에 일터 바깥으로 더 떠밀리게 된다.

젠더적 관점으로, 더 건강한 일터로

이 책을 훑고 나면, 다시금 우리 사회에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가 있기라도 했는지 의문스럽다. 그나마 안전보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는 노동조합이다. 이 책에서도 노동조합을 통해 산재를 신청하고, 동료들이 있는, 그리고 자신이 돌아갈 일터를 보다 안전하게 바꾸어낸 사례들이 실려 있다. 결국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가리워져 있는 수많은 위험들은 드러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노동조합에서 더욱더 안전보건에 대해, 젠더적 관점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마지막에 수록된 부록은 여성 노동운동과 여성 노동자 건강권이 만났던 지점들을 연결해준다. 그간 우리가 걸어온 투쟁에 대한 기록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의 참고서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오로지 노동자가 최대한의 이윤을 낼 수 있는 몸일 때 그 가치를 인정하고 대가를 지급한다.”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한 대안은 표준이 아닌 모든 몸을 위한 제언이 된다.”  

너무나 만연한, 그럼에도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산재들을 하나하나 비추고, 이들을 가리는 제도를 섬세하게 비판하는 이 책은 각각의 사례들이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어떤 제도를 젠더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훈련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든든한 길잡이다. 이 책을 책장에 두고 다짐해본다. 건강과 위험, 안전한 일터를 사고할 때 익숙한 습관에 한번 더 질문을 던지기로. 그리고 함께 나아가기로.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약칭 젠더센터)는 2024년 1월27일에 공식 출범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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