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종열의 노동보도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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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앞두고 한국 신문들의 기업 편들기가 사실 왜곡 수준을 넘어섰다. 이들은 허위 보도를 통한 ‘공포 마켓팅’에 나서며 기본적인 언론 윤리조차 포기했다는 비판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제인총연합 등 경제단체들은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고 “이대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사업장 폐업과 근로자 실직 등 많은 우려가 현실화 할 것”이라며 ‘유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국회에 적용 유예 법안을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가 1월 1일부터 25일까지 13개 중앙일간지와 11개 경제신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제단체와 대통령·정부 관계자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을 유예할 것을 주문하는 기사와 칼럼, 사설은 모두 169개로 조사됐다. 이 기간에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주장한 사설이 33개인 반면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설명하고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촉구한 사설은 단 2개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 됐다.

이들 신문들이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며 꺼내든 새로운 키워드는 '대규모 줄폐업', '영세기업 존속 어려워', '일자리 감소', '근로자 대량 실직', '안전관리자 구하기도 어려워', '범법자 양산' 등이다. 이들 신문은 마치 83만 중소기업 전체가 당장이라도 폐업 위기에 놓인 것 처럼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고 나섰다. 매일경제는 24일 사설 <영세사업장에 중대재해법 강행, 결국 피해자는 근로자다>에서 "법 시행으로 영세 사업장이 경영난에 빠지거나 폐업에 이르면 결국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고 가족과 함께 길바닥에 나앉게 될 것이다"며 경제단체들의 '공포 마켓팅'을 거들었다. 하지만 생명과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직장이 어떻게 가능한가. 목숨을 잃고 나서 '일자리'가 무슨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특히 지난 1월 15일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현장 간담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확대되면 동네 빵집 사장님도 대상이 된다"고 발언 한 이유 대부분의 신문들은 이를 주요 키워드로 사용했다. 머니쿠데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면 "지나 가던 닭갈비 가게가 문을 닫고 집 근처 주유소가 갑작스럽게 사라진다"면서 "양돈농장의 폐업으로 지방 일자리와 지방 경제는 더욱 악화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문을 닫은 기업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머니투데이 지영호 산업2부 차장은 <치킨집이 중처법 피하는 비결>에서 "3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1명이 사망한 2021년 김밥집 집단식중독 사고는 당시 규정이 모호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았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해갈 '비결'까지 알려주고 있다. 얼토당토않은 사례로 '중처법'을 흠집내려는 의도도 나쁘지만,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성장'을 가로막는 거추장스런 규제에 불과한 것인가? 노동자의 생명과 존엄성은 노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매일경제는 22일 <"식당카페도 중대법 처벌? 나라가 가게 접으라고 조장">에서 "제조업뿐만 아니라 요식업 등 영세 자영업자가 많은 업종에서도 법 적용이 본격화되면 현장의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을 50인 미만 사업장에 확대 적용하면 다수의 개인사업자가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도 25일 1면 <동네 식당찜질방카페까지, 중대재해법에 떤다>를 통해 공포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 신문들의 주장은 기업들의 일방적 주장에 근거한 것이다. 실제 상황을 살펴보면 대부분 과장되거나 허위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반면에 경제단체의 주장에 대해 팩트체크한 기사는 24일 한국일보의 <전문가 “中企 부담 있겠지만 줄페업 공포는 과장”> 기사가 유일하다. 한국일보는 24일 전문가 취재를 통해 '줄폐업 공포'는 과장됐다고 보도했다. 산업안전ㆍ노동 법률 전문가들의 공통된 제안은 "예정대로 시행하면서 정부 지원을 함께 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기업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중소기업이 감당 못할 투자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는 전문가들의 입장을 충실히 소개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모호하고 주관적이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기업에 따라 개선 내용이 다른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합리적 수준에서 진행하면 다소 미흡해도 안전관리체계 구축 노력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중소기업은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실상과 부합하는지도 논란거리라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50인 미만 기업 1,053개 기업 조사 결과 94%가 '법에 대한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답했다며 '유예'를 주장하지만, 지난해 3월 고용부가 '중립적 기관'인 한국안전학회에 의뢰해 50인 미만 사업장 1,442곳을 조사한 결과 81%가 '안전보건 의무를 갖췄거나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 조사를 비공개 했고 이를 보도한 보도는 없다. 한국일보는 '줄페업 가능성'도 과장됐다고 보도했다. 중대재해법이 아니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으로도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받게 돼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중대재해법 시행 후 600여 곳이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31곳이 기소돼 1곳만 실형(한국제강)이 선고됐다"며 '사법부는 사업주 처벌에 신중한 편'이라고 전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범위도 제한적이다. 고용부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중대재해 사고 사망자는 644명으로, 이 가운데 388명(60%)이 중소기업에서 사망했다. 경제단체들이 주장하는 83만개 중소기업 중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사업장 비율은 0.046%에 불과하다. 김관우 율촌 수석전문위원은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중처법 시행으로 경제가 위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경식 고철연구소 소장 겸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네트워크 대표 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인 2022년 중대재해 사망자가 5.7% 줄었고 사망사고 건수도 8.1% 줄었다면서 경제계・보수언론의 "효과없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2023년 3분기까지 누적 사망자도 전년에 비해 10% 줄었으며 50인 미만 사업자의 사망자 비중도 2021년 63.7%에서 2022년 61%로 낮아졌다며 "언론이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가져다가 침소봉대하는 편향적인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한 언론 보도가 "가짜뉴스로 가득차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2일 <중대재해법 시행 5일 앞…"안전관리자 뽑으려 해도 사람이 없어">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직원 20~49명 규모 중소기업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최소 1명 이상 둬야 한다"면서 안전 전문가 채용에 따른 추가 인건비도 부담이지만 ‘사람이 없어' 2곳 중 1곳은 안전보건 업무를 수행할 인력조차 배치하지 못한 상태라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권영국 변호사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보건 전담조직,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둬야 하는 의무가 없으며, 20인 이상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둬야 하지만 안저관리전문기관 위탁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최근 언론에서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자주 거론되는 '동네 빵집 사장도 처벌' 등 중대시민재해와 관련해서는 "공중이용시설에서 소상공인과 영업장 바닥면적 1000제곱미터 미만 사업장은 모두 제외되고, 바닥 면적이 333평 이상이 아닌 일반 식당이나 설렁탕집은 처음부터 중대시민재해 대상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권영국 변호사는 "실제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의무는 위험성을 평가하고 종사자 의견 청취해 개선조치를 취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라며 이것은 산업안전보건법상으로 취해야 할 의무라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2021년 1월 19일 '언론윤리헌장'을 발표하며 윤리적 언론의 역할로 "사회가 갈등과 이질성을 조화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특정 집단, 세력, 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한 자세로 보도해야 한다"며 '공정한 보도 원칙'을 제시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한 한국 신문 보도에는 최소한의 기본적 언론윤리조차 찾아볼 수 없다. 자본의 이익 앞에 언론 윤리는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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