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게 나쁜 노동환경은 노동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라 사용자가 바꿔야 할 위험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지난 31일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며 북토크를 열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이 책은 “왜 여성의 산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6명의 글쓴이가 만난 19명의 여성, 장애여성, 성소수자 노동자들과 산재 피해 가족들이 솔직하게 꺼내 놓은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더불어 산업재해 예방•보상 제도와 정책 시스템의 밑바탕이 되는 산재 관련 통계가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담지 못한 반쪽의 통계는 아닌지 살펴보았다고 한다.

글쓴이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는 여성 노동자의 산업재해가 아픈 몸이라는 자책과 쓸모없는 노동력이라는 사회의 낙인으로 구성되었음을 확인했고, 앞으로 바꿔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건네받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자본과 국가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묻는 일이 우리의 몫이라고 정의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인터뷰에 참여한 항공사 승무원 노동자는 여러 가지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동료들의 피해를 전했다.

"승무원이라고 하면 보통 산재와 연결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직업이라고 인식되어 있지만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건강상의 문제가 많다. 특히 비행준비 과정에서 승객들의 케리어등 중량물을 취급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밀고 다니는 무거운 카트와 승객 서비스 과정에서 허리를 수백 번씩 숙이고 펴기를 반복해야 하는 일 때문에 사고도 많고 부상도 많다. 그리고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비행 중 노출되는 ‘우주방사선’ 때문에 암 발병률이 많고 이것으로 인해 산재승인을 받는 케이스가 많다. 그 외에도 감정노동으로 고충이 증가되고 있지만 막상 산재신청을 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글쓴이로 참여한 송윤정 노무사는 왜 산재가 중요한지, 공상(사업주와의 합의) 보다 왜 산재 보상 제도를 강조하는지, 그리고 왜 필요하고 무슨 의미인지 이야기했다.

"재해 피해 노동자가 비공식적인 사업주와의 합의를 통해 치료 또는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을 보통 ‘공상’이라고 한다. 산재는 여전히 문턱이 높다는 인식과 업무 관련성 입증에 대한 책임이 재해자에게 있어 부담이 크기 때문에 사업주와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는 공상처리의 유혹이 크다. 그러나 공상처리는 산재보험 제도의 근본적인 취지인 치료와 휴업, 재활 과정을 통해 재해 피해자가 원래 직장으로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근본적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다친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덧붙여서 "산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일터와 사회와 국가에게 책임을 지어지게 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류한소 사회학연구자는 산업별/성별 통계에서 '왜 여성의 산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가?'에 대해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전달했다.

정부에서 발간하는 산재 통계를 보면 남성이 80%, 여성이 20% 정도이다. 산재가입자 수는 여성이 55% 남성은 45%이다. 산재 통계가 3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결과를 토대로 '여성의 산재는 왜 통계에서 드러나기 어려울까?'라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여성의 산재보험 가입자 수 자체가 적어서일까? 여성은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업무상 재해에 대해 산재를 신청하기 어려울까? 여성의 일은 ‘기타’로 뭉뚱그려지기 때문일까? 여성은 산재를 신청해도 승인이 잘 안 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성이 정말 안전한 일터에서 일하기 때문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며 통계를 분석했다. 결론은 여성노동자들의 위험과 재해 피해들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제대로 포착된 산재 데이터가 온전하게 산재 보상 데이터로 연결되고 이를 기반으로 예방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근거로서 제대로 작동하는데 현재로선 그렇지 못하다는 결론이다.

아울러 복귀 후에도 일터가 바뀐 게 없거나 가사와 돌봄 노동의 부담도 있고 동료들이 일을 나눠야 하는 문제로 눈치를 보거나 조기에 복귀하거나 회사에서 낙인이 찍혀 결국 일을 포기해야 하는 사례가 많아 ‘산재 우울증’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재 이후 복귀의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한노보연 이나래 상임활동가는 이 책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과 출판된 이후에 평가되는 점을 전했다.

지난 20여년간의 노동안전보건운동, 노동운동이 누구의 입장에서 해 왔느냐 하는 성찰이었다. 망가지는 노동자의 몸과 삶에 가부장적 위계권력이 결탁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정면에서 부딪히는 계기이기도 했다. 여성들이 더 열악하다거나 남녀평등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여성의 노동을 통해서 남성들이 하는 과로와 위험 노동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모든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하는 것이다. 결론은 통제되고 있는 노동의 과정에서 모두가 해방되는 운동에 같이 함께 가자고 하는 제안으로 이해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과 함께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 사진=백승호

마지막으로 이번 북토크 준비와 진행을 맡은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박슬기 센터장은 “노동자에게 나쁜 노동환경은 노동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라 사용자가 바꿔야 할 위험이다.”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안전한 일터와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와 함께 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 사진=백승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 사진=백승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이하 센터)는 2024년 1월 27일에 출범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노동자에게 높은 생산성·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 정상가족이라는 표상에 맞추도록 강요하고 이러한 억압적/차별적 사회질서는 임금착취와 더불어 돌봄 가사와 같은 사회적 재생산영역에서의 수탈도 자행한다며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계와 젠더화된 위계질서 속에서 위험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노동자 분할이 전체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지 원인을 밝히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의 과제를 제안하고 이를 발판 삼아 일터와 사회를 바꿔나가는 역할을 지향하는 센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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