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 다누비열차’ 안전원 김은정씨
“다누비 17년 달렸는데, 일하는 우린 1년짜리 파리목숨”

‘노동 보도도 서울 중심이다’. 오랜 서울살이 후 부산으로 이주하고서 느낀 점이다. 물론 수도권의 노동 보도 토양 또한 척박하지만, 이마저도 양반처럼 보이는 게 부산을 포함한 지역의 실정이었다. 40여 일간 직장폐쇄가 단행된 노동 현장이 고작 단신 2개로 기록될 뿐이었다. 지금도 어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싸움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고 의제화되지 못한 채 외따로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현장에서 싸우는 ‘2024년 부산 노동자들’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도록 인터뷰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야, 야, 열차 오겠다, 퍼뜩 묵자, 삼키고 가자.”

부산 태종대 ‘다누비열차’ 안전원 김은정(48)씨의 점심시간은 항상 ‘20분 컷’이다. 일한 지 햇수로 9년, 그동안 목구멍으로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지 않은 때가 없다. 사정이 나은 주중이나 비성수기에도 점심시간은 30분 정도다. 그래도 김씨는 숙명처럼 여겼다. “다누비열차를 움직이는 건 우리”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 자부심은 2년 전, 2022년 12월 ‘폭삭’ 주저앉았다. 매일 찾던 구내식당이 갑자기 사라졌다. 식당을 쓰던 직원 상당수는 다누비열차 노동자들이었다. 원청 부산관광공사에서 대여섯, ‘다누비열차 운영’ 하청업체 직원은 20여명이 식당을 이용했는데, 원청의 누구도 하청 직원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식당을 폐쇄했다. 유원지에서 외부 식당까지 나가는 데에만 최소 10분은 걸렸다. 점심시간이 ‘1시간’인 원청직원만 가능한 일이었다.

“밥 좀 먹자” “너네만 밥 먹는 사람이냐” “우리를 대체 뭘로 보는 거냐” 현장에선 그동안 쌓인 분통이 봇물 터지듯 터졌다. 그러고선 만들어진 게 노동조합이다. 바로 태종대 유원지 하청노동자들의 노조, ‘다누비열차 노조’(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김씨는 2023년 1월 만들어진 태종대지회의 초대 지회장이다. 김씨는 “‘밥 문제’는 시작일뿐, 다누비엔 그동안 말 못 한 애환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고 했다. 1년마다 새 하청업체와 계약하는 고용불안, 최저임금에 묶인 임금, 그리고 무엇보다 태종대 유원지의 동등한 노동자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설움이 십수 년 누적돼왔다는 것이다.

태종대 다누비열차는 노동자의 불안정을 먹고 산다
다누비열차는 태종대 해변언덕을 오르내리는 관광열차다. 전망대, 영도등대, 태종사 등의 관광지점을 지나치며 승객을 태우고 내린다. 배차시간은 유동적이다. 성수기엔 8분씩 배차되고, 승객이 많은 주말도 보통 8~12분씩 배차된다. 그러다 승객이 아주 적어지면 20~30분 터울을 둘 때도 있다. 배차 간격이 줄어들수록 열차 직원들의 노동강도가 세진다. 김씨가 마음 편히 밥을 먹어 본 적 없는 이유다.

부산시 관광사업의 최전선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서비스를 전달하는 일임에도 이들은 비정규직이다. 열차 기사, 안전원, 매표직원, 주차장 관리원 등 20여명 모두 ‘1년짜리 하청노동자’다. 다누비열차 수익을 관리하는 부산관광공사가 운영만 따로 떼어 내 하청업체에 위탁했고, 1년마다 입찰이 진행된다. 열차노동자들은 매년 새로 낙찰된 업체와 근로계약서를 쓴다. 즉 이들은 1년마다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신분이다.

“‘내년에는 누가 나가지?’ ‘걔야?’ ‘쟤야?’ 급기야 코로나를 지나면서 이런 말이 뒤에서 마구 돌아다닌거죠. 원래도 1년이 지나면 한 사람씩 없어지긴 했는데, 코로나 지나면서 인원이 감축돼 6인 1조가 4~5인 1조로 바뀌더니 인원 회복이 안됐어요. 불안함이 점점 확산되죠. 그럼 결국 현장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줄서기’가 나와요. 원청 관리자에게 잘 보이려고 같이 술도 마시고, 친해지려고 하고 입바른 소리 못 하고, 편이 나뉘고... 이게 일하는 현장에 엄청 나쁜 겁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사발면, 떡, 햇반으로 점심 ‘때운다’
‘1년짜리 하청노동자’에게 처우개선이란 하늘의 별 따기다. 김씨의 기본급은 법정최저임금을 벗어나 본 적이 없고, 연차휴가는 신입사원 수준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매해 새 회사에 입사하면서 근속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9년 일한 베테랑이지만 김씨는 “1월마다 최저임금 신입사원이 된다”고 했다.

퇴직한 적은 없지만 퇴직금은 7번이나 받았다. 1년 치 노동만 계산한, 딱 한 달 월급만큼의 퇴직금이 연말마다 나왔다. 김씨는 “10년을 일했으면 10년치 기여를 다 인정한 퇴직금을 받아야지, 이게 다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며 “그런데 지난해엔 이마저도 안 나왔다”라고 말했다.

2022년, 부산관광공사는 입찰 계약을 1년 터울에 맞게 진행하지 못하고 4개월을 더 넘겨버렸다. 즉 2021년 업체가 1년 4개월을, 2022년 업체가 8개월을 위탁했다. 이때 계약서 명목상 ‘8개월’ 위탁이기에 노동자들에게 2022년 퇴직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원·하청의 일관된 입장이다. 김씨는 “공사는 부산시가 주지 말라 했단 식으로 답했고, 부산시는 ‘신규사업장의 계약기간이 1년이 되지 않으면 퇴직금을 줄 필요 없다’는 이유로 예산 책정을 안했다”며 “웃긴 건 똑같은 일이 2019년에도 있었는데, 그땐 퇴직금을 줬다. 다 지들(원청) 맘대로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 이런 식이에요. 아무도 책임 안집니다. 사실 책임 안질 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하청 쓰는 거잖아요? 하청업체는 어차피 1년 계약인데 노동자 얘길 들어줄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원청(부산관광공사)은 책임없다고 하청에 미루면 되고요. 부산관광공사는 다시 부산시랑 서로 책임을 미루면 되고요. 하청노동자 처우가 바뀌겠습니까?”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동등한 노동자’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설움은 휴게실만 봐도 느낀다고 김씨는 말했다.

“우리 공간이라곤 소파 큰 거 네 개 놓여있는 휴게실 딱 하나 있는데, 개인 책상도 없고 탕비실도, 개수대도 없어요. 하도 불편하니 우리가 정수기 뒤에 달린 호스를 하나 빼서 간이 개수대를 직접 만들었다니깐요. 거기에 그냥 물통 하나 받쳐놓고 써요. 휴게실 천장이랑 벽엔 물이 새서 곰팡이도 여기저기 폈고요. 업무 외투는 전임자 것 물려받아요. 어떨 땐 수량이 부족해서 못 입는 사람이 생기기도 해요.

근데 인제 식당이 없어져서 휴게실에서 점심까지 먹게 됐습니다. 휴게실 소파에서 도시락 까먹어요. 근데 어디 나이든 기사분들은 도시락을 싸오시나요. 사발면, 햇반, 즉석밥, 떡 이런 걸로 끼니를 때워요. 이게 다 뭡니까?”

김씨는 그래도 일에서만큼은 깊은 보람을 느껴왔다. 관광객을 가장 가까이서 맞이하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태종대 유원지의 지킴이’라고 스스로를 느꼈다. 열차에 탄 관광객들과 대화할 때면 매번 신이 났다. 관광객들 질문을 정리해서 유원지 내 지질환경해설사, 문화해설사에게 물어보고 미리 공부를 하곤 했다. 시민들의 건의사항을 들으면 틈틈이 메모도 하고, 어떻게 하면 열차 운영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하고 상부에 아이디어도 제안했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몰랐는데, 들어줘서 고맙다”는 관광객의 대답을 들으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셨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하청노동자의 분노어린 편지 “노비 다루듯, 머슴 취급하듯”
그렇기에 김씨는 이곳을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으로 바꿔내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표적해고라는 보복이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올해 1월 업체가 바뀌며 총 6명이 고용승계가 되지 않았는데, 그중 4명이 태종대지회 조합원이었다. 나머지 2명은 단기계약직이었다.

태종대지회는 지난해 1월 17명이 노조에 가입하며 활동을 시작했지만, 9개월 후 한국노총 산하의 복수노조가 생기면서 분열됐다. 여기에 더해 지난 1월, 조합원 4명이 해고되면서 태종대지회는 현재 3명의 조합원이 남아 노조를 꾸려가고 있다.

“웃긴 게 뭔지 아세요? 30년 무사고로 표창을 받거나, 관리소장을 역임해 일머리에 밝은 직원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쫓아냈어요. 몇 차례 열차 사고 전력이 있는 직원은 고용하면서요. 교통사고 때문에 몇 개월째 병가로 회사로 못 나오고 있는 사람도 계속 고용하면서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현재 김씨는 조합원 2명, 해고자 4명과 함께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부산 범천동에 있는 부산관광공사를 찾아간다. 공사가 입주한 건물 앞에서 집회를 열고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맘 같아선 매일 소리치고 싶지만 열차 휴무일이 월요일이기에 월요일에만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해고자 박춘열(62)씨는 분노를 토해내듯 말했다. “이 사람들(부산관광공사)은 ‘우리가 너네와 왜 대화해야 하는데? 너네가 뭔데?’ ‘우리가 나가라면 나가라는 거지 뭔 말이 많아’ 이런 태돕니다. 우린 한 번 쓰고 버리는 파리목숨? 그런 거죠. 그러다 해고시키면서 이런 말 하는 거 아닙니까? ‘쟤들 봤지? 우리 건들면 너네도 다쳐. 조심해.’”

또 다른 해고자 정상수씨(64)는 난생 처음 집회 발언을 글로 써봤다. 지난 1월15일 집회에서 만난 정씨는 14층 공사 사무실을 쳐다보며 있는 힘껏 외쳤다.

“노비 다루듯, 머슴 취급하듯, 자기네들이 하늘의 대왕인 듯 (다누비열차를) 운영하는 공사는 정말 무섭고 겁이 나지만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온다. 잘못된 운영과 행동과 생각에, 그저 자기만 살아남겠다는 것에 정말 웃음이 나온다.“

김씨는 ”우리도 똑같은 노동자고 사람이다. 노조탄압과 차별을 일삼는 부산관광공사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정말 ‘밥 좀 먹자’는 분통으로 노조를 시작했다. 10년간 육아로 일을 쉰 후, 다시 찾은 내 직장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 겪고 있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태종대지회 리포트

 


① 민주일반노조 태종대지회 : 노동자들의 불안정을 먹고 사는 태종대 관광열차, 1년 단위 하청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
② 금속노조 아이리지회 : 수술 칼·침을 만드는 사람들. 지역 언론 외면 속 직장폐쇄와 싸워 낸 여성 노동자들의 지난 겨울 이야기
③ 민주일반노조 부산본부 외국어교육지회 : 대표적 노동법 사각지대. 부산 외국어 교육 강사들의 이야기
④ 부산대 기숙사 : “1,000여 명 묶는 기숙사를 노동자 3명이 청소하고 있어요” 2023년 부산대학교 기숙사 투쟁이야기
⑤ 사상구 대형 상가 : 임금체불 밥 먹듯, 강제 용역전환까지. 상가 노동자들이 회장집 앞까지 찾아가는 이유
⑥ 울산시설공단체육강사지회 : 우리 동네 수영장, 정규직 수영강사는 없다. ‘가짜 프리랜서’ 수영강사의 노동 이야기. 코로나 동안 노동법 사각지대에서 더 힘겨운 시기 겪은, 3년 전부터 싸워 온 수영강사들 인터뷰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