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나는 언젠가부터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SNS에 ‘병 자랑’을 쓴다. 갱년기 증상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덕담을 대체 왜 꺼리며, 아픈 게 어떻게 자랑일까?

갱년기가 시작되자 내 몸은 예측을 불허하는 변화무쌍한 장소가 됐다. 남들 다 겪는 아는 병이라기엔 그 주기와 강도, 버라이어티함이 나날이 갱신되어서 늘 당혹스러웠다. 밤새 잠 못 들게 하는 열감 따위야 그나마 아는 증상이라고 참을 만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 오늘은 괜찮다가도 내일은 어디가 어떻게 아플는지 알 수 없고, 어제는 보람과 감사로 가득한 하루였는데 오늘은 지옥도가 펼쳐지는 마음을 살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이 대책 없이 널뛰는 감정의 기복이 성격으로 굳어지진 않을까, 이럴 때 내가 하는 일이나 결정을 내가 믿어도 될까,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신뢰할 수 있을까. 이런 불안이 커지면 사람 만나는 일 자체를 피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일을 쉴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병 자랑을 시작한 것은 뜻밖에 우리가 여성의 몸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가령, 나는 여성이 나이 들면 생리 양도 기간도 점점 줄다가 어느 달부터 안 하기 시작해서 폐경에 이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경우, 어느 달엔 양이 늘고, 어느 달엔 두 번도 하고, 심지어 어느 달엔 찔끔찔끔 한 달 내내 하기도 하고, 그러더니 넉 달을 안 하길래 끝났나보다 좋아했더니 또 시작되기도 하고. 도대체 폐경은 언제 오는 거야?

원래는 한자로 닫을 폐(閉) 자를 쓰는 폐경은 그 자체로 나쁜 말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폐경은 버릴 폐(廢) 자를 쓰는 폐차, 폐광처럼 ‘여성으로서 끝났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어감을 가진 단어라서 완성되었다는 의미를 담은 완경(完經)이라고 바꿔 부를 줄은 알았어도 폐경이든 완경이든 나는 도무지 그 시점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명색이 페미니스트라면서 어떻게 이런 것도 몰랐지? 이런 건 왜 교과서에 안 나오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거야? 1년 동안 한 번도 생리를 하지 않았을 때 폐경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야 처음 알았다. SNS에 병 자랑을 쓰면 유독 댓글이 많이 달린다. 각기 다른 여성의 몸을 통과하고 있는 무수한 증상들과 불안감, 답답함, 고통, 우울감 등을 나누는 동안 특히 현대의학조차도 도외시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정보를 나누면서 사람들은 적어도 고립감이 덜어진다고 말한다.

내가 아픈 걸 자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고립감의 정체 때문이다.

아픈 게 아니라 건강한 게 기본값인 사회라서 아픈 사람은 고립된다. 아픈 사람은 쉬어야 한다, 돌봄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긴 쉽지만 사실상 아플 때 쉴 수 있거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병가조차도 현대의학이라는 막강한 권력이 명확한 진단명을 준 질병일 때 가능하고, 그나마도 보장받기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도 허다하다. 아픈 것은 가족과 동료에게 민폐일 뿐이다.

건강한 것은 그 자체로 능력이 되지 않지만, 아픈 것은 자기 몸 관리 하나 못하는 무능력이 된다. 심지어 내가 먹는 것, 습관, 체중, 운동 정도, 자세까지도 검열과 잔소리의 대상이 된다. 이럴 때 아픈 시간은 극복의 시간일 뿐이다. 아픈 시간은 인생의 낭비이며, 하루빨리 건강한 상태, 다시 말해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오오력해야 하는 시간일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아픈 사람 자신조차도 아픈 나는 자신이 아닌 것처럼 여기게 된다. 결국 아픈 사람은 자기 혐오 속에 살게 된다.

그런데 과연 이런 사회가 정상인 걸까? 우리는 사는 동안, 누구나 크고 작은 질병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양한 몸들이 다양한 속도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할까? 왜 아무도 우리에게 그런 건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아픈 채로 함께 살고 함께 놀고 함께 쉴 수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조한진희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우리에겐 건강할 권리뿐 아니라 ‘아플 권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병 자랑을 한다. 마음 편히 아픈 것이 기본값인 사회일 때라야 건강한 사람도 아픈 사람도 장애인도 더불어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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