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원통한 죽음이 없도록, 중대재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계속 싸워나갈 것!

지난해 7월 동양건설산업이 시공하는 청주 오송 파라곤 2차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안전조치 없이 갱폼(외벽 거푸집)에서 작업 중 갱폼이 추락하며 25층 높이에서 추락, 젊은 베트남 이주노동자 2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원청사인 동양건설산업은 책임회피와 외면으로 일관 해왔다. 이에 희생자 중 한명인 故 쿠안씨(당시 36세)의 유족인 아내 레티화 씨가 사건의 대응을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이하 본부)에 위임했다.

이에 본부와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충북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함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사측의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해 청주 지검에 원청인 동양건설산업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적용,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하며 지속적인 투쟁을 진행해 왔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입국한 레티화 씨와 함께 동양산업 앞 기자회견을 열고, 이 자리에서 레티화씨는 원청 동양건설산업에 대해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고인과 유족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요구하고, 이역 만리 한국에서 투쟁을 이어갔다. 이런 투쟁으로 1월 23일(화) 원청인 동양산업개발이 교섭에 나서, 4차례 교섭을 진행해왔다. 3월 14일(화) 마지막 5차 교섭을 통해 양측은 잠정합의를 도출하고, 최종합의서에 서명했다.

이 자리에는 원청인 (주)동양건설산업과 하청사인 (주)에이원산업개발 대표이사가 직접 참여 합의서에 서명날인하고, 책임통감과 더불어 故 쿠안씨의 분향소에 직접 분향하고, 그 자리에서 유족에게 사과를 했다.

합의서에는 “대표이사의 대면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제반 조치 이행, 그리고 중재대해 처벌법 상의 손해배상을 포함한 민사상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합의서 참조)

서명식 이후 본부와 운동본부, 레티화 씨는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지역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가 이주노동자 중대재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유족과 함께 싸워 마침내 결과를 이끌어 냈음을,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억울한 죽음이 너무나 많기에, 우리 지역의 일터에서 원통한 죽음이 없도록, 중대재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계속 싸워나갈 것”임을 밝혔다.

기자회견에 함께한 레티화 씨는 “제 남편의 문제로 민주노총과 많은 기관들이 도움을 주셨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결국 제가 혼자서 해내지 못했을 거다. 함께 응원해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특히 교섭을 함께 하셨던 교섭단원 분들 한분 한분 너무나 많이 고생하셨다. 진심으로 감사한다.”라며 깊은 감사를 전했다.

초기부터 이 투쟁을 전담하고 교섭단을 이끌었던 이주용 본부 조직부장은 “이번 합의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중대재해에 대해 원청 사업주가 책임지고 사과하는 결과를 이끌어냈고, 중대재해처벌법상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도 명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안전 사각지대에서 위험 속에 일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중대재해로 희생됐을 때조차 배상에서 차별받는 관행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모든 노동자가 차별 없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나갔으면 좋겠다.”라며 기나긴 투쟁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고 쿠안씨의 유족 레티화씨와 본부 수석부본부장, 원청인 동양건설산업, 에이원산업개발 대표이사가 합의서에 서명했다.
고 쿠안씨의 유족 레티화씨와 본부 수석부본부장, 원청인 동양건설산업, 에이원산업개발 대표이사가 합의서에 서명했다.
원청인 동양건설산업, 하청 에이원산업개발 대표이사가 고 쿠안씨의 영정에 분향하고 있다.
원청인 동양건설산업, 하청 에이원산업개발 대표이사가 고 쿠안씨의 영정에 분향하고 있다.
원청인 동양건설산업, 하청 에이원산업개발 대표이사가 레티화씨에게 직접 사과하고 있다.
원청인 동양건설산업, 하청 에이원산업개발 대표이사가 레티화씨에게 직접 사과하고 있다.
레티화 씨가 민주노총과 중대재해운동본부에 깊은 감사를 전했다.
레티화 씨가 민주노총과 중대재해운동본부에 깊은 감사를 전했다.
본부와 중대재해운동본부가 함께 동양건설산업 중대재해 사건 교섭결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본부와 중대재해운동본부가 함께 동양건설산업 중대재해 사건 교섭결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투쟁을 전담하고 교섭단을 이끌었던 이주용 본부 조직부장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투쟁을 전담하고 교섭단을 이끌었던 이주용 본부 조직부장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기자회견문]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주노동자가 차별받지 않도록 우리는 계속 싸워가겠습니다

지난 2023년 7월 6일, 동양건설산업이 시공하는 이곳 오송 파라곤 2차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베트남 출신의 36세 청년 이주노동자 쿠안 씨가 작업 중 추락해 동료 노동자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25층 높이에 매달린 건물 외벽 구조물에서 해야 하는 위험한 작업이었지만, 정작 추락을 방지할 안전조치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 어린 두 아이와 아내를 베트남에 남겨두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한국에 와서 고된 노동도 견뎌냈던 쿠안 씨는, 서른여섯 번째 생일을 불과 열흘 앞두고 끝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쿠안 씨가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은 지 253일째 되는 오늘, 고인의 아내 레티화 씨는 비로소 원청 동양건설산업과 합의서를 체결하고 대표이사의 공식 사과를 받았다. 레티화 씨와 민주노총, 이주민노동인권센터 등으로 구성된 유족 측 교섭단은 지난 1월 23일부터 이번 중대재해 사건에 대해 원하청 사측과 다섯 차례 교섭을 진행한 끝에 오늘 합의에 도달했다. 고인의 죽음으로부터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사측의 책임 있는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모쪼록 이 결과가 유족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권리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노동자 노동안전 실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이번 합의를 통해 우리는 건설현장의 이주노동자 중대재해에 대해 원청 기업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도록 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비롯한 전반적인 노동조건에 대해 원청의 책임회피가 만연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비단 건설현장만이 아니라, 하청 구조가 뿌리내린 일터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2023년 디엘이앤씨 고 강보경 노동자 중대재해 사건에서 원청 건설사가 사과한 데 이어 이번 동양건설산업 고 쿠안 씨 중대재해 사건에서도 원청 대표이사의 공식 사과가 이뤄졌다. 물론 두 사건 모두 원청의 사과가 저절로 나온 것은 아니었으며 유족과 연대단체들의 끈질긴 투쟁이 필요했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원청 기업이 책임지고 사죄해야 한다는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한편, 이번 합의에서는 중대재해 재발방지를 위해 표면적이고 기술적인 요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의 구조적인 위험요인에 대한 개선 역시 요구함으로써 원청이 그 대책을 제출하게 하는 성과도 있었다. 본 사건에 대한 사측의 자체 사고조사보고서와 안전작업계획을 비롯해, △이주노동자 안전대책 △다단계 하도급 및 그로 인해 파생하는 임금체불 근절 △무리한 공기단축 근절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 등에 관한 원청의 개선책을 제시하도록 한 것이다. 중대재해는 결코 ‘우연히’ ‘실수로’ 발생하거나 작업자의 잘못 떄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의 안전보건 시스템이 부실하거나 붕괴한 결과가 노동자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나라의 중대재해 절반 이상이 건설현장에서 벌어지는 만큼, 이러한 구조적인 위험을 제거해나가는 싸움이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번 동양건설산업 고 쿠안 씨 중대재해는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 사건이기도 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제15조에서 사측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규정함으로써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배상책임 역시 지도록 하고 있다. 이번 합의에서는 민사상 손해배상에 중대재해처벌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하도록 함으로써 그 책임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했다.

다만, 이주노동자 중대재해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에 있어 차별을 완전히 없애나가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일하다 목숨을 잃어도 손해배상 산정 기준이 다르게 적용되어 이른바 ‘목숨값’에서도 심각한 차별을 당한다. 이런 차별적 기준이 계속 유지된다면 이주노동자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싼 값에 부려먹고 내다 버리는’ 부품처럼 이주노동자를 사용하는 관행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의 교섭에서는 이 차별을 없애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 아쉬움은 남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차별에 맞서서 싸우는 우리 모두의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고 쿠안 씨의 아내 레티화 씨가 남편의 억울함을 풀고자 지난 12월 직접 한국에 입국한 지 97일이 지났다. 오늘의 합의와 원청의 사과를 끌어낸 것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유족이 끝까지 버티며 함께 싸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그 무엇으로도 희생된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으며, 유족에게 남은 아픔과 상처 역시 온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회사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한 점에 대해서는 응당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법에 따른 처벌 역시 뒤따라야 한다. 다만, 이번 합의를 통해 고인과 유족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내고 그 명예를 회복하며, 여전히 권리 사각지대에서 목숨을 내놓은 채 일해야 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다시금 환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지역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가 이주노동자 중대재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유족과 함께 싸워 마침내 결과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억울한 죽음이 너무나 많다. 우리 지역의 일터에서 원통한 죽음이 없도록, 중대재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중대재해로 희생된 노동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2024년 3월 14일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충북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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