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2024. 1. 24. 선고 2023누34646 판결>

※ 답답한 노동 현실을 풀어가려면 문제의 원인을 알고 해독할 방법도 찾아야 합니다. 노동법률 디톡스가 해독제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마흔 번째 디톡스는 실질적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교섭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판결에 대해 풀어드리겠습니다.

디톡스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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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은 2024. 1. 24. 원고 씨제이대한통운 주식회사(이하 ‘씨제이’라고만 함)의 항소를 기각함으로써, 씨제이가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의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전국택배노동조합의 교섭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고, 이를 거절한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서울행정법원 제1심 판결의 결론을 유지하였습니다.

1. 사건의 개요
- CJ대한통운은 택배 대리점(집배점)과 택배 배송에 관한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고, 각 대리점들은 이 사건 택배기사들과 이를 재위탁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 CJ대한통운-대리점-택배기사 계약관계
△ CJ대한통운-대리점-택배기사 계약관계

참고로 중노위 판정 당시 CJ대한통운은 전국에 약 2,100여개의 집배대리점이 있고 대리점과 재위탁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택배기사는 약 17,000여명이 있습니다.

- 전국택배노조는 대리점과 재위탁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택배기사들이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는데, 2020. 3. 12. CJ대한통운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였습니다.

- 그런데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은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하고 있고 CJ대한통운과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단체교섭을 거부하였습니다.

- 전국택배노조는 이를 단체교섭 거부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하였고, 중노위가 이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자 씨제이가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서울행정법원(제1심)에서도 중노위의 재심판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자 씨제이는 항소하였고, 1년여 변론을 거쳐 이번 항소심 판결이 선고된 것입니다.

2. 판결의 요지
이번 판결은, 제1심 판결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법 제81조 제1항 제3호(교섭거부의 부당노동행위)의 사용자에는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 및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근로조건 등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본 다음, 씨제이가 택배노조의 교섭의제에 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이므로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 CJ대한통운 택배기사 배송 구조
△ CJ대한통운 택배기사 배송 구조

구체적인 교섭의제와 관련하여, ▲ 택배노조가 씨제이에 대하여 교섭을 요구하는 의제인 근로시간 단축(배송상품 인수시간, 집화상품 인도시간 단축)의 경우 씨제이가 구축한 서브터미널 시설 및 업무지침 등 유·무형의 택배시스템의 운영방식에 수정을 가하거나 원고가 마련한 위수탁계약의 내용, 매뉴얼, 지침 등의 변경을 필요로 하는 점, ▲ 주5일 근무제 실시 의제의 경우 씨제이가 집배점과 체결한 부속계약서가 주6일제 근무를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집배점주가 택배기사와 체결하는 위수탁계약도 대부분 주6일제 근무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점, ▲ 수수료 인상 등 급지체계 개편 의제의 경우 씨제이가 사전에 정해둔 배송급지 기준표 및 집배점과 체결한 부속계약서에 따라 택배기사들의 배송수수료가 정해지는 점, ▲ 사고부책 제도 개선 의제의 경우 택배사고 발생 시 씨제이가 정한 과실비율과 씨제이가 게시한 손해배상금액이 기준으로 작용하는 등 지배·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 교섭의제
① 서브터미널에서 택배기사의 배송상품 인수시간 단축
② 서브터미널에서 택배기사의 집화상품 인도시간 단축
③ 택배기사 1인당 1주차장 보장 등 서브터미널의 작업환경 개선
④ 주5일제 및 휴일·휴가 실시
⑤ 수수료 인상 등 급지체계 개편
⑥ 사고부책 개선

3. 판결의 의의
본 사건은 원청사가 하청사 소속 근로자들의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에 응하여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의 당부를 주된 쟁점으로 하는 사건으로서, 서울고등법원도 1심 법원인 서울행정법원과 마찬가지로 CJ대한통운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입니다.

특히 이 사건은 원청사가 하청사 소속 근로자들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요구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 지위에 있는지 여부를 법원 단계에서 ‘정면으로’ 판단하여 인정한 최초의 사건인데,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은 직접 계약관계 존재라는 형식적인 사정이 아니라 기본적 노동조건 등을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지에 따라 실질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헌법상 노동3권 보장취지에 부합한다고 보았습니다.

2010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사건에서 이미 대법원은 노조법상 사용자는 근로계약 내지 노무제공계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은 원청 사업주도 노조법상 사용자(지배, 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고 판단을 한 바 있고, 종래 위 판례 법리는 단체교섭 상대방인 사용자성 판단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노동법학계의 통설이었는데, 이러한 상식을 서울행정법원이 1심 판결을 통해 인정한 데 이어 서울고등법원도 다시금 확인한 것입니다. 

△ 택배노조 약식 기자회견
△ 택배노조 약식 기자회견

특히, 씨제이 측은 근로계약관계도 없는 원청에게 하청노동자와의 단체교섭의무를 인정할 수 없고, 만일 원청에게 하청노동자와의 단체교섭의무를 인정한다면 현행 노조법상 교섭창구단일화 등 절차적인 규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교섭의무 있는 사용자 개념을 해석할 때에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는 취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관점에서 파악하여야 할 것인데, 단체교섭의 대상인 근로조건 등을 지배·결정하는 자와 단체교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집단적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 등을 결정·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단체교섭권이 실질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는 관점을 분명하게 밝힌 것입니다.

이번 판결은, '자신의 의사대로 노동자를 사용하고 그 이익을 누리는 자가 노동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라'는 당연한 상식을 재확인한 판결입니다.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진짜 사장인 원청사업주가 나와서 대화하고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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