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대변인 브리핑
민주노총 대변인 브리핑

의사 파업 속에 의료수가 인상과 의료 민영화가 숨어 있다.

의사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이 한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의대 정원을 2천 명 늘리겠다는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의사집단 간의 다툼엔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의사 집단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과 징계에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ILO 제소 등으로 맞서고 있다. 이 갈등이 빚어낸 의료 공백에 애꿎은 국민들이 고통받는다. 

의사집단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것에 사회적 지탄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정부가 이토록 강경하게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의도에 대해선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3월 5일 정부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이하 건정심) 소위원회에서 제시한 ‘의사 집단행동 대비 비상진료 건강보험 추가지원 방안’에서 그 의도가 드러났다. 방안의 주요 내용은 중증 수술의 수가인상, 입원환자 진료공백 방지를 위한 정책수가 신설 등으로 매달 약 1,882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 2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 1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은 ‘의사 증원’보다는 ‘의료 수가 인상’인 셈이다. 의사 정원 확대는 의료 수가 인상을 끌어내기 위한 표면적 이유에 가깝다. 

문제는 건강보험 재정이 수가 인상과 10조 이상의 추가 투입을 버텨낼 수 있을만큼 튼튼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의료 수가를 인상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면 건강보험의 재정파탄이 불가피하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의·약·정 대타협의 결과로 한 해에 4차례의 수가 인상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2001년엔 건강보험 급여지급이 41.5% 급증했고, 건강보험 재정은 2조 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 정부의 정책 방향대로 의료 수가가 인상되면 당시처럼 건강보험 재정의 파탄이 불가피해진다. 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건강보험 보장률 감소로 이어진다. 그리고 줄어든 건강보험의 자리는 민간 의료보험이 차지하게 된다. 

더구나 정부는 향후 건강보험 재정 전망을 지나치게 과소추계하고 있다. 2015년 이후부터 코로나 19 사태 전까지 건강보험 급여비는 연평균 9~10% 증가했다. 문재인 케어가 시행된 2019년엔 14%까지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든 2022년에도 9.6% 증가했다. 해마다 10%에 가까운 급여비 증가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노인인구 비율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급여비 증가폭은 해마다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2월 발표한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 급여비 증가가 연 6~7% 가량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고령화가 급속한 한국사회에서 의료비 증가가 비약적일 것이란 전망이 상식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증가율이 둔화할 것으로 과소추계하고 있다. 학계에선 2030년 경상의료비를 약 400조 원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부의 2차 종합계획에선 2030년의 경상의료비를 150조 원 미만으로 추산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65%에서 답보하는 현실에서 급여와 수가는 늘리고, 재정은 과소추계하면 자연히 보장률은 현재보다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건강보험공단은 2차 종합계획에서 보장률목표도 밝히지 않고 있다. 공단의 계획대로 수가인상과 급여 증가, 재정 감소가 이뤄지면 보장률은 60% 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국민 전체의 의료비 부담이 증가한다는 의미고, 많은 국민이 민간 보험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본격적인 의료민영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의료의 핵심은 공공성이다. 누구나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그 의료의 공공성을 지킬 수 있는 기초체력이다. 이 정부가 정말 의료 공백을 우려하고 의료 공급을 확대하려 한다면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고 건강보험 보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이다. 화려하게 말만 덧씌운 의대 증원으로 의료 민영화에 대한 꿍꿍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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