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2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에 부동산 강제경매 결정문이 왔다. 처음으로 받은 건 이희은 조합원이었다. 이희은 조합원의 아들이 집에 있다가 결정문을 받았고 온 가족이 알게 되었다. 이후 다른 조합원의 집에도 부동산 강제경매 결정문이 왔고 다른 조합원들의 통장이 줄줄이 압류되었다. 당사자는 이 상황을 어떻게 버티어내고 있을까? 가장 처음 결정문을 받은 이희은 조합원을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했다.

김천지법에서 발언중인 이희은 조합원
김천지법에서 발언중인 이희은 조합원

우리 같이 이겨내자
약 2년 전 투쟁을 시작할 때, 설명을 많이 들었어요. 어떤 투쟁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회사는 어떻게 할 건지. 나중엔 회사가 집을 강제경매에 넘겨서 빨간 딱지가 붙거나 통장이 압류될 수 있다는 얘기도 듣긴 했어요. 그래도 워낙 극한 상황이니까 투쟁하면서도 ‘설마 거기까지 가겠나...’라고 생각했어요.

받고 나니까 짜증이 나더라고요. 회사가 이렇게까지 하는 게. 남편이 제 투쟁을 지지해주는 편은 아닌데, 이번엔 회사 욕을 하더라고요. 가족한테까지 왜 이러냐고요. 저는 남편한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우리 같이 조금만 이겨내보자고 했어요. 남편은 속는 셈 치고 믿어주기로 했어요.

며칠 지나서 조합원 회의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나영 조합원이 갑자기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방금 이게 왔어요’라고 하더라고요. 보니까 통장이 압류되었다고 은행이 보낸 내용이었어요. 통장 압류는 그렇게 시작됐어요. 둘이 앉아서 얘기하는데, 나영이한테 ‘너랑 내가 제일 만만한가보다. 우리 둘한테 제일 먼저 한 거 보니까’라고 하면서 속 얘기도 좀 했어요.

만만하게 보지 마세요
일할 때 정말 열심히 했어요. 부당한 걸 알아도, 일이 너무 힘들어도 다 시키는 대로 했어요. 일이 힘들어도 회사에 고마움도 있었어요. 회사가 우리 가족을 먹고 살게 해준 거니까요. 그리고 회사에 자부심도 컸어요. 어디 가서 사람들이 자기는 삼성 다닌다고, LG 다닌다고 자랑하면 저도 ‘저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다녀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어요. 우리 회사만큼 좋은 회사 없다고 했어요. 제가 예전에 살던 집에선 공장이 다 보였어요. 가끔 퇴근하고 집에 가느라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3층 창문으로 공장이 보였어요. 거기 서서 혼자 자랑스러워하고 그랬어요. ‘저기가 내 직장이야. 우리 회사 정말 최고야’라고요.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회사 입장에선 제가 제일 만만했을 거 같아요. 시키는 대로만 일하던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사측한테 말하고 싶어요. 저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무시당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고.

고공농성장 앞 약식집회에서 발언하는 이희은 조합원
고공농성장 앞 약식집회에서 발언하는 이희은 조합원

끝을 볼 거에요
저는 정말 끝을 보고 싶어요. 얼마 전에 엄마랑 얘기하는데, 조심스레 물으시더라고요. 언제까지 할 거냐고. 가족을 위해서 조금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저는 “나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많았지만, 이건 정말 후회할 일이 되지 않게 하고 싶어. 엄마도 알잖아. 내가 이걸 왜 하는지.”라고 대답했어요. 남편도 그때 제가 하는 말을 들었대요. 나중에 저한테 말하더라고요. 제가 당차게 말하더래요. ‘얘 고집 못 꺾겠구나’ 생각했대요.

얼마 전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모금을 결의해줬어요. 금속노조는 조합원 한 명당 2천원, 민주노총은 1천원을요. 인당 금액은 작아 보일 수도 있지만, 다 모으면 금액이 상당히 커요. 저희가 지금 금전적인 공격을 사측한테 받고 있으니까 어려운 결정을 해줬어요. 든든하고 책임감도 들어요. 이 투쟁이 나만의 투쟁, 우리만의 투쟁이 아니라는 게 정말로 느껴져요. 솔직히 ‘이걸 어떻게 갚나’ 부담스러운 느낌도 있지만요. 노동조합의 울타리가 저희를 지키는 걸 느껴요. 이런 보호가 느껴지니까 이제 좀 큰 생각도 들어요. 외투기업 먹튀 폐업 투쟁에서 온전히 승리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어요. 나중에 ‘내가 이런 일을 한 사람’이란 자부심도 느끼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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